[배일동 명창의 렌즈 판소리] “음은 우주의 기운을 품은 씨앗”

배일동 명창, 정은혜씨, 메리 랩씨(왼쪽부터)

소우주의 인간이 대우주의 호흡을 마셔 토해내는 음악가의 한 음은 바로 우주의 기운이며 씨앗이다.

나는 요즘 두 분에 공부인을 만나서 참 기쁘다. 한 분은 미국 보스턴 버클리 음대에서 공부한 피아니스트 정은혜씨이고 다른 한 분은 호주 사람으로 시드니 음대에서 첼로를 전공한 메리(Mary)씨이다. 두 분은 자신들이 뿌려놓는 음들의 씨앗이 어떻게 뿌려내려 자라고 열매를 맺으며 시공간에 율동하는가를 진실되게 공부하려는 뮤지션이다.

정은혜씨는 나에게 판소리를 다년간 배우면서 자신의 음악세계에 새로운 경계를 세우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녀는 이번에 귀국해서 나와 함께 여러 가지 음악적 개념에 담긴 실기적인 내용과 미학과 철학 같은 경계를 문답 형식으로 논하면서 책을 쓰고 있다.

실기의 충실한 내공과 이론적인 지성이 풍부해서인지 그 결과물이 빨라 벌써 책 한 권 분량이 완성되었다. 서양음악과 한국음악의 실기 속에 내재된 음악적인 담론들을 통해 고대로부터 음악을 만들어오며 발전시켜온 그 배경과 철학들을 자세히 살펴보고 상상해 보는 작업은 매우 유익하고 신나는 일이었다.

서로 배우고 익히는 가운데 새로운 발견들을 통해 지적 경계가 확장되며 음악적 표현도 한층 시원해진 것 같다. 그녀는 젊은 뮤지션 같지 않은 지적경계가 분명하게 서있었다. 아마도 그녀가 어려서부터 고민하고 의심해오던 화두를 풀어내보려고 노심초사해온 정성으로 음악적 지성 수준이 남달랐지 않나 싶다. 나는 이번 문답을 통해 그녀에게 오히려 크게 배웠다. 그녀가 출판할 책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시드니 음대에서 박사 코스를 밟고 있는 첼리스트 메리(Mary)씨는 박사논문을 쓰기 위해 이번에 서울에 왔다. 6개월간 머물 예정이란다. 그녀는 나와 원광디지털대학교에 있는 김동원 교수와 함께 연구할 것이다. 악기 분야가 서로 다르지만 연주하는 철학과 이치는 서로 상통하므로 한국음악의 원리와 미학을 실기를 통해 익혀보고 자신의 음악과 연계해서 관계성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연구하기 위해서 온 것이다.

메리씨와 인연은 그녀가 시드니 음악대학 2학년 때부터인가 싶다. 벌써 세월이 십 년을 훌쩍 넘었다. 호주에 공연 갈 때마다 나에게 개인 레슨을 하면서부터 우린 음악적인 공감을 확인하면서 많은 이해를 가져왔다. 이 험한 시절에 멀리서 이렇게 찾아오니 반가운 기운으로 마치 고목에 새순이 돋는 것이 새롭다.

이번에 메리씨가 한국에 와서 내가 깜짝 놀란 것이 있다. 메리씨의 논문을 지도하는 교수가 두 사람인데, 한 분은 전공실기 교수이고, 다른 한 분은 음악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교수라고 한다. 신기한 것은 오늘 공부한 것을 가지고 시드니에 있는 그 교수들과 함께 영상으로 다시 점검 학습을 한다는 것이다.

지도교수가 단순하게 논문의 대강을 지도하는 차원이 아닌 함께 분석하고 연구하며 학생의 연구방향이 옳게 가도록 심도 있게 조력하는 것을 보고 난 감동했고, 또 한편으로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정말 아름답고 아름다운 교학상장의 진면목을 보았다. 이런 교학상장의 모습이 진정한 학문 지성일 것이다.

이런 공부를 옛사람들은 진절 공부(?切功扶)라 했다. 격물치지하기 위해서 온 정성을 다해 간절하고 진실되게 공부한다는 뜻이다. 공부는 그렇게 해야 우주와 자연의 진리와 진실에 가찹게 갈 수 있으리라고 본다. 일정한 성과를 위해 형식적으로 마련하는 논문으로는 진실한 지적경계로 진입하기가 어렵다. 메리씨가 한국에서 소중한 진실을 많이 캐어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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