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 부부 스웨덴 명총리 ‘타게 엘란데르’한테 많이 부끄러울 듯
삼성 이건희 회장은 1995년 중국 베이징에서 한국 특파원들과 간담회를 갖고, 정치 행태를 강하게 비판했다. 이 회장은 “한국 기업은 2류, 행정은 3류, 정치는 4류” 라고 일갈했다.
그로부터 28년이 흘렀다. 얼마나 바뀌었을까? 한국기업은 반도체를 비롯해 자동차와 조선, 전기차 배터리, 가전제품 부문에서 세계 최고수준에 올랐다. 그런데 여전히 한국정치는 4류를 벗어나지 못하고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
정치마저 일류로 만드는 방법은 없을까? 그것은 정치지도자의 경청, 겸손, 공감, 봉사의 삶 등이 아닐까 한다. 이럴 진대 우리도 일류국가로 진입할 수 있을 것이 틀림없다.
스웨덴에는 타게 엘란데르(1901~1985)라는 명총리가 있었다. 지금 스웨덴은 1인 당 국민소득이 5만 달러가 넘을 뿐더러 세계 최고 복지국가다. 스웨덴은 전 세계에서 국민행복 지수, 국가청렴도 지수(반부패 지수)는 최상의 순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80여년 전만 해도 스웨덴은 가난, 실업, 빈부 격차, 좌우 갈등, 극심한 노사 분쟁으로 그야말로 절망의 나라였으며, 특히 노동 손실 일수가 세계에서 가장 높을 정도로 노사 분규가 극심했다.
그런 스웨덴을 오늘의 모습으로 일구어내는데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타게 엘란데르였다. 1946년 45세부터 23년간 총리를 지낸 엘란데르는 재임 중 11번의 선거를 모두 승리로 이끌었다. 특히 마지막 선거에서는 스웨덴 선거 사상 처음으로 과반을 넘는 득표율로 재집권한 후 후계자에게 자리를 넘겨주고 떠났다.
20여년 장기 집권이 가능하도록 스웨덴 국민들이 그에게 신뢰를 보낸 이유가 무엇일까?
첫째, 대화와 타협.
타게 엘란데르가 총리로 선출되었을 때, 왕과 국민들은 많은 걱정을 했고, 특히 노사분규로 힘들어 하던 경영자들의 거부감은 대단했다. 그러나 취임 후 그의 행보는 전혀 달랐다.
야당 인사를 내각에 참여시키고, 경영자에게 손을 내밀어 대화한 후, 노조 대표와 함께 3자 회의로 노사 문제를 해결했다. 매주 목요일 스톡홀름에서 차로 2시간 거리에 있는 총리 별장에 정·재계, 노조 인사를 초대해 저녁 식사를 하며 대화를 나눴다.
보여주기식 대화가 아닌 상대 의견을 경청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진정성이 이를 가능케 했다. 복지제도도 대화 정치 덕분에 가능했다.
둘째, 검소한 삶.
타게 엘란데르는 최고 권력자였지만 매우 검소하게 살았다. 총리 시절에도 20년이 넘는 외투를 입고, 신발도 구두 밑창을 갈아가며 오래도록 신었다. 검소함은 부인도 똑같았다. 집권 23년 동안 국회 개원식에 참석하기 위해 입던 옷은 단 한벌이었다.
셋째, 특권 없는 삶.
자식들은 “부모님은 총리 시절에도 관저 대신 임대주택에서 월세를 내고 살았다. 출퇴근도 관용차 대신 어머니가 직접 운전하는 차를 이용했다”고 했다. 그는 특권을 버리고 국민의 삶 속으로 들어와 친구처럼, 다정한 이웃처럼 지냈다. 1968년 국민들은 다시 한번 깜짝 놀랬다. 타게 엘란데르가 총리를 그만둔 후, 거처 할 집이 없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넷째, 정직한 삶.
타게 엘란데르가 퇴임한 후 어느 날, 부인이 정부 부처 장관을 찾아갔다. 그녀의 손에는 한 뭉치의 볼펜 자루가 들려 있었다. 장관이 반갑게 인사하며 방문 이유를 묻자 볼펜 자루를 건넸다. 볼펜에는 ‘정부 부처’ 이름이 쓰여 있었다. “남편이 총리 시절 쓰던 볼펜인데, 총리를 그만두었으니, 이제는 정부에 돌려주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타게 엘란데르는 떠났지만, 23년 동안 국민을 위한 그의 헌신은 스웨덴 정치의 교과서로 자리잡고, 세계 최고의 행복한 나라로 만든 원동력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