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농축의 정성과 관심과 우정, 사랑, 게다가 성원과 격려까지 빼곡이

민영 시인이 이동순 시인에게 쓴 편지. 만년필 글씨가 곳곳에 번진 흔적이 보인다

[아시아엔=이동순 시인, 영남대 명예교수] 새로 발간된 시집을 여기저기 지인들께 보내면 대개 잘 받았다는 답신들이 어김없이 오곤 했다. 하지만 그 답신이란 게 거의 천편일률로 의례적인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짧은 엽서 한 장에도 고농축의 정성과 관심과 우정, 사랑까지 게다가 성원과 격려까지도 빼곡이 담아낸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민영(閔暎, 1934~ ) 시인이 보내온 엽신을 읽으며 그런 모범적 글쓰기를 다시 느끼게 된다.

시집이 아주 즐겁게 읽힌다는 점, 특히 자신의 어린 시절 중국에서의 추억들이 내 작품으로 놀랍게 재생된다는 점, 구체적 작품제목까지 본보기로 들면서 그 곡진했던 소감을 담아보내는 점. 이런 여러가지 요소를 엮어 극히 제한된 지면인 엽서라는 비좁은 공간에 석류알처럼 빼곡히 담아내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이런 부분에서 노시인의 비범한 관록, 사람과 사물에 대한 사랑, 모든 것을 정중하고 겸손하고 극진하게 대하는 관점과 태도, 습관까지 읽어낼 수 있다.

바로 그러한 점에서 우리는 민영 시인의 엽서 글귀를 높이 평가하게 된다. 이젠 엽서나 손편지가 사라진 시대, 시집을 받아도 스마트폰의 문자로 짧게 두어 줄로 대신하는 경우가 일반이다. 아니면 페이스북에 포스팅이란 방법으로 글과 사진을 찍어 올려서 받은 이의 정성을 표시하는 경우가 많다.
삶의 스타일이나 패러다임이 그만큼 바뀐 시대를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이다. 변화의 내용이 어떻든 간에 사람과 사람이 서로 정을 주고받는 따뜻한 교감이란 것이 단절되지 않고 계속 이어져 가야 할 텐데 그것마저도 사실 엷어지고 겨우 유지되는 듯해서 기분이 그리 흔쾌하지는 않다. 탈도 많고 소란도 많았던 한 해가 간다. 새해라고 뭐가 특별히 달라지랴만 우리의 따뜻하고 다정한 품성이라도 그저 잘 이어져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아슬아슬하고 조마조마한 무엇보다도 마음이 춥고 시린 세밑이다.

민영 시인. <사진 2005년 3월 14일자 전북일보>

 

李兄,

보내주신 시집
“가시연꽃” 잘 받았습니다.
거침없이 잘 읽히는,
그러고도 재미있는 시편들이었습니다.
내게는 특히 ‘곡부(曲阜)에서’를 비롯,
중국에서의 일들을 쓴 시가
아주 감명 깊게 읽혔습니다.
내가 그곳에서 자란 것 알고 계시죠?
‘고향집’, ‘중국동포’를 읽고는
가슴이 에이는 것 같았습니다.
이제 새로운 세기가 밝아옵니다.
건강하시길……

1999년 12월

민 영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