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하필 지금’ 로마황제 4인에 주목하는 까닭···”그들은 로마를 만들었고, 로마는 역사가 되었다”
[아시아엔=김칠성 백영고 교사, 교육학박사(역사학)] 독일의 역사학자 랑케는 서양문명사에 로마가 남긴 독특한 역할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모든 고대사는 호수로 흘러 들어가는 강물처럼 로마의 역사 속으로 흘러 들어갔으며, 모든 근대의 역사는 로마의 역사로부터 다시 흘러나왔다.”
다시 말해 로마는 고대 지중해 세계의 문화를 종합하고 중세 이후의 새로운 유럽은 이런 로마의 역사로부터 다시 흘러나왔다. 로마사 연구와 교육에 힘써온 서울대 김덕수 교수가 <그들은 로마를 만들었고, 로마는 역사가 되었다>(21세기북스, 2021)를 냈다. 필자는 책을 처음 보고 의아해 했다. 얇고 가벼운 수필집 같아 보였는데 읽을수록 무심결에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전공자로서의 내공이 녹아 있다. 간결하고 쉽고 분명하다. <삼국지>를 읽는 듯하다.
E.H.카아의 불후의 명저 는 방송강연을 정리하여 낸 것이라고 한다. 김덕수 교수의 <그들은 로마를 만들었고, 로마는 역사가 되었다>는 ‘서가명강’(서울대를 가지 않아도 들을 수 있는 명강의) 시리즈 20번째 강의를 편집해 단행본으로 나왔다. 요컨대, 전문성과 대중성에서 성공한 노작이라 할 수 있겠다.
이 책은 “왜 로마사인가?”라는 질문과 함께 “우리에게 로마사는 어떠한가”(p.12)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지중해 제국으로서의 로마의 성장은 로마 인민 전체의 업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탁월한 리더십으로 로마를 이끈 리더들의 역할과 중요성을 부인할 수 없다. 이 책에서 많은 로마 지도자들 중 네명에 대해 집중적으로 살펴볼 것이다…(중략)…그들이 이룬 업적의 일부는 그대로 우리에게도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pp.12-13) 저자가 많은 로마 리더 중 4명의 카이사르를 골라서 로마사의 단면을 보여 준 것은 적절하고 탁월한 안목 덕택이다.
4부로 된 이 책은 우선 읽기 편하다. 각부마다 먼저 핵심을 제시하고 끝에 ‘Q 묻고’ ‘A 답하기’, 즉 Q&A를 통해 독자들의 이해를 높이도록 했다.
‘1부 카이사르, 불멸의 영웅이 되다’ 편에서 저자는 모두에 이런 화두를 던진다. “쿠데타를 일으켜 공화정의 전통을 파괴하고 권력을 독점해 자유를 압살한 독재자이자 명예와 권력에 도취되어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카이사르. 그러나 갈리아를 정복해 로마 영토를 확장한 영웅이자 정적까지도 포용하는 관용을 베푼 탁월한 지도자 카이사르. 어느 쪽이 진짜 그의 얼굴일까?”
저자는 이 질문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달할 메시지를 암시하고 챕터 끝에서 다음 두 질문을 통해 독자들의 관심을 환기시킨다. “카이사르는 빛나는 업적 못지않게 쿠데타를 일으키고 공화정의 전통을 파괴하고 권력을 독점해 자유를 압살한 독재자로 평가받기도 한다. 현대 정치사에도 카이사르와 같은 인물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로서는 카이사르를 모살한 보루투스와 카이사우스 롱기우스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p.72)” “카이사르를 비롯해 많은 황제나 장군들이 자신들의 업적이나 신의 모습을 함께 새겨 넣은 여러 주화들을 발행했는데, 그것은 화폐로서의 가치 외에 어떤 목적이 있었을까?(p.74)”
‘2부 아우구스투스, 로마의 평화 시대를 열다’에서 저자는 아우구스투스를 “‘천천히 서둘러라’는 자신의 좌우명처럼 그는 정책 반감을 최소화하면서 통치권을 유지하는 탁월함을 보이면서 ‘아우구스투스의 평화’ 즉 팍스 로마나를 이끌었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저자는 Q&A를 통해 “과연 한 사람의 탁월한 리더십만으로 그와 같은 평화로운 황금시대가 가능할 수 있었을까? 아니라면 어떤 다른 요건들이 갖춰져야 가능할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저자는 동시에 앞장에서 다룬 카이사르의 제1차 삼두정치와 아우구스투스의 제2차 삼두정치의 특징과 성패를 독자들로 하여금 비교해 볼 것을 넌지시 제안한다.(p.126)
3부는 일반에게 다소 생소한 디오클레티아누스를 소개한다. 저자에 따르면 “누군가는 디오클레티아누스를 위기에 처한 3세기 로마제국의 구원투수로 평가하고,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교를 탄압한 폭군으로 기록한다. 비천한 출신으로 황제 자리에까지 오른 그는 살아생전에 스스로 퇴위를 선한 최초의 황제이기도 하다. 퇴위 후 그는 고향에서 채소를 키우며 노후를 보냈다. 혼란한 정국을 바로 잡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제의에 그는 채소를 키우면 사는 게 얼마나 좋은지 아느냐고 답했다”고 한다.
요즘 말로 ‘논쟁적 인물’에 해당하는 디오클레티아누스에 대해 저자는 ‘Q&A’를 통해 “디오클레티아누스가 황제 2명과 부황제 2명이 통치하는 4제 통치 체제를 수립해 로마의 안정을 꾀한 반면 화폐와 조세의 강제개혁에도 불구하고 그의 통치기간인 3세기 로마가 심각한 경제위기를 피하지 못한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 되묻는다.(p.181) 이와 함께 저자는 로마 전통종교를 회복하는 과정에서 황제가 그리스도교를 극력 탄압한 이유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하는데, 이는 4부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등장 및 업적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저자는 4부의 제목을 ‘콘스탄티누스, 종교의 자유를 선포하다’로 뽑고 이렇게 요약했다. “어떤 역사가는 콘스탄티누스를 ‘만사를 바꾸고 뒤집어 놓은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로마의 전통 종교를 무시하고 그리스도교화를 정책으로 삼았다는 부정적인 해석이다. 하지만 콘스탄티누스는 로마제국을 하나로 통일시켰고, 밀라노 칙령과 니케아 공의회를 통해 그리스도교를 로마의 종교로 공인했으며, 새로운 수로 콘스탄티노폴리스를 건설했다. 로마제국의 그리스도교 국가로의 출범은 이후 서양 중세의 그리스도교 천년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토대가 되었다. 이 모든 것이 만사를 바꾸고 뒤집어 놓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p.186)콘스탄티누스 대제에 대한 가장 적확한 소개 아닐까 한다.
자, 여기까지 읽으신 <아시아엔> 독자께선 저자를 대신해 콘스탄티누스 챕터에서 어떤 질문과 해답을 내놓으실까 궁금하다. 참고로 이 책 <그들은 로마를 만들었고, 로마는 역사가 되었다>의 김덕수 교수의 질의응답은 239~241쪽에서 확인할 수 있으니 살짝 비교해보는 맛도 있지 않을까 싶다.
책을 덮기 전 다음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국가 공동체의 경우 리더는 소수이고, 대부분은 보통사람의 삶을 산다. 국가를 책임진 리더의 생각과 판단, 역할은 아주 중요하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후대에까지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p.242) 필자의 멘토이자 스승인 저자 김덕수 교수님께서 독자들께 던지는 메시지가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