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멕시코한인회, 이민자 정체성과 풀뿌리운동
[아시아엔=주동완 코리안리서치센터 원장] 미국 중남부 멕시코와 국경을 대하고 있는 뉴멕시코주의 ‘뉴멕시코한인회’(회장 윤태자)는 지난 몇년간 풀뿌리 운동을 위한 강연회를 연속적으로 개최해왔다.
한인들도 별로 많지 않은데다가 넓은 지역에 퍼져 살고 있어서 한인회 활동이 쉽지 않을 텐데도, 뉴멕시코한인회는 벌써 오래 전에 한인회관도 마련하고 청년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금년도 풀뿌리운동 강연회에 강연자로 초청받아 지난 10월 중순, 3박4일간의 일정으로 뉴멕시코한인회가 위치한 앨버커키를 다녀왔다. 필자 강연제목은 ‘풀뿌리운동과 정체성’이었다.
‘풀뿌리 운동’이란 ‘풀뿌리 민주주의’라는 의미로 사용되어져 왔다. 풀뿌리 민주주의는 미국에서 1912년 공화당에서 갈라져 나온 진보당이 창당되면서 처음 사용됐다가, 1935년 공화당의 전당대회 이후 그 의미가 일반화되었다. 풀뿌리 민주주의란 국민 개개인이 정치에 직접 참여하는 직접민주주의의 한 형태로서, 지역주민들이 직접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주민들이 스스로 의사결정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타운 홀 미팅’과 같은 주민자치회의를 통한다. 타운 홀 미팅의 결과를 실행하기 위하여 시민권을 가진 주민들이 유권자등록을 하고 투표에 적극 참여함으로써 커뮤니티 파워를 형성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리고 그 파워로 주민을 대변할 수 있는 정치가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직접 그러한 정치가를 배출하는 것이 일반적인 풀뿌리 운동의 과정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주민들의 공통적인 이익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사람들마다 자신의 관심사와 이익이 다르기 때문에 많은 주민들의 공통적인 의견을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 공통적인 의견을 모으는데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은 주민들이 갖고 있는 기본적인 인식과 공동체 의식이다. 즉, 평소에 주민들이 공통적으로 느끼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관이 정립되어 있으면 그 커뮤니티의 의사결정은 보다 쉽고, 신속하고, 일관되게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공통적인 인식과 의식 그리고 가치관은 그 커뮤니티의 정체성(Identity)을 형성한다. 그 커뮤니티의 정체성이 풀뿌리 운동의 성격과 방향을 결정한다. 그리고 그러한 정체성은 커뮤니티가 필요로 하는 공통의 관심사를 이끌어 낸다. 어느 단계가 되면 이렇듯 풀뿌리운동과 정체성은 서로 상호작용 하여 커뮤니티의 이익과 발전을 도모한다.
미국의 주요 대도시들에는 한인 인구가 집중되어 있는 코리아타운이 발달해있고, 중소도시에도 한인회를 중심으로 한인들 활동이 활발하다. 이러한 코리아타운 또는 한인회를 중심으로 한 한인들 활동에는 무엇보다 정체성 확립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한인들의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 실질적인 문제가 된다.
먼저 재미한인들은 한민족으로서 그리고 미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갖는 것이 당연하다. 여기에 더하여 이민자인 ‘코리안 아메리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녀야 한다. 코리안 아메리칸의 정체성을 지니기 위해서는 재미한인의 이민역사를 알아야 한다.
1883년 조선 최초의 서구사절단인 △보빙사報聘使의 이야기로부터 △1903년 갤릭호, △하와이 사탕수수밭 농장의 조선인 노동자들과 이른바 ‘사진신부들’, △6.25전쟁으로 인한 미군 신부들과 미국으로 입양된 한국 고아들 그리고 △1965년 미국의 이민법이 개정되어 물밀듯 들어와 미국 곳곳에 자리잡은 각 지역 한인들의 이야기와 역사를 배우고 익혀야 한다. 그리고 한인이민사에서 기억되고 있는 장소와 공간과 기록을 보존하고 이야기를 발굴해야 한다.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면 이러한 기록들은 복구하기 힘들게 될 거다.
한인이민 역사를 기록하고 보존하고 공부함으로써 내가 누구인가를 알게 될 뿐만 아니라 우리가 누구인가에 대한 정체성을 가질 수 있다. 이렇게 정체성을 갖는 것이 풀뿌리 운동의 기본이다. 이렇게 될 때 우리 공동체의 요구와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고, 커뮤니티 구성원들의 자발적이고도 적극적인 참여와 지원으로 풀뿌리 운동, 나아가 풀뿌리 민주주의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