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룡의 엑스포 이야기①] “모든 것은 엑스포에서 시작되었다”

<상상력의 전시장 엑스포> 개정증보판  표지 <연합뉴스>


개정증보판 ‘상상력의 전시장 엑스포’…인류진보의 역사, 170년 현대문명 한눈에

지금 아랍에미리트에선 두바이엑스포가 열리고 있다. 한국은 2030년 부산엑스포 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다. 엑스포에 대한 지구촌의 시선은 금세기 이상 계속될 전망이다. 왜 그럴까? 인류문명의 쇼케이스가 돼온 사실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기 때문 아닐까. 때마침 엑스포 역사 170년을 미시·거시 관점에서 총정리한 책이 나왔다. <상상력의 전시장 엑스포> 개정증보판(다우출판사)이 바로 그것이다. 한겨레신문 창간 기자, 아시아엔 편집이사, 아시아기자협회 사무총장을 역임한 오룡 저자는 “엑스포의 힘을 이해하면 앞으로 다가올 세상도 내다보일 거라 믿게 되었다”고 했다. <아시아엔>은 <상상력의 전시장 엑스포>를 통해 본 엑스포 170년사를 독자들께 몇차례 나누어 소개한다. <편집자>

[아시아엔=이상기 기자] “시카고에서 열린 ‘진보의 세기’ 박람회에 가봤어요?······ 대단한 박람회였지요. 가장 인상 깊은 곳은 과학관이었어요. 미국의 미래가 어떤 모습일지를 한눈에 보여주더군요. 지금보다 훨씬 멋진 세계를 말이지요!” (<유리 동물원>, 1944년, 테네시 윌리엄스)

<상상력의 전시장 엑스포> 개정증보판(다우출판사, 2021년 10월15일) 부제는 ‘인간의 꿈을 현실로 만든 인류문명사 170년’이다. 말 그대로 지금부터 역산해 최근 200년 가까운 기간 동안 인류의 지식과 기술 진보의 궤적을 총체적으로 담은 세계박람회 백과사전이자 탐구서다.

이 책은 올림픽, 월드컵과 함께 글로벌 3대 메가 이벤트로 불리는 엑스포의 연원을 거슬러 올라 1851년 런던 수정궁박람회 이래 70개 등록 및 인정 박람회의 특징과 의미를 짚어나간다.

책은 박람회장에 직접 안 가고도 엑스포 현장으로 여행을 떠날 수 있도록 섬세하게 안내하고 있다. 책은 방대한 양의 시설과 정보, 전시물이 집결된 대규모 이벤트를 한눈에 보여준다. 또 인간 생활의 온갖 주제가 망라된 잡학의 보고寶庫다. 엑스포는 인간의 과학적·혁신적 활동상과 그것이 몰고 온 세상의 변화를 낱낱이 드러낸다. ‘지상 최대의 쇼’라 불리는 까닭이다.

<상상력의 전시장 엑스포> 개정증보판은 역대 주요 박람회의 내용과 특징, 흥밋거리를 소개하면서 엑스포의 역사적 흐름도 놓치지 않는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1년 미뤄진 두바이박람회가 열리고 있는 가운데 170년 엑스포 역사를 인문학적, 문명사적 관점에서 들여다본 <상상력의 전시장 엑스포> 개정증보판은 2012년 여수박람회를 앞두고 출간한 초판에다 여수박람회와 이후 열린 2015년 밀라노박람회, 2017년 아스타나박람회, 2020년 두바이박람회, 그리고 개최가 확정된 2025년 오사카·간사이박람회 내용을 추가했다.

특히 한국이 유치 추진 중인 2030년 부산엑스포 개최 의의와 준비 현황을 자세히 소개했다. 세계규모의 대회 유치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부산시와 관계당국이 참고하면 큰 보탬이 될 것 같다.

이 책에 따르면 엑스포 역사는 한마디로 현대문명을 만든 온갖 문물의 미시사微示史와 같다. 재봉틀과 전화, 텔레비전처럼 역대 박람회를 거치며 진화를 거듭한 발명품에서부터 증기 엔진과 대포, 디젤 엔진, 컴퓨터, 로봇 달 착륙 로켓에 이르는 첨단 기계류의 발전상이 담겨 있다. 그런가 하면 솜사탕, 피넛버터 등의 가공식품, 페리스휠이나 놀이공원, 스트립쇼류의 오락물 등장이 가져온 대중화·상업화로 휩쓸려간 시대상도 엑스포 역사를 통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 책은 또 세계 경제의 무게중심과 함께 움직인 엑스포의 흐름이 연대기별로 정리했다. 영국에서 열린 세계박람회를 필두로 19세기는 프랑스 파리가 국제도시로 명성을 날리며 유럽이 활짝 꽃을 피운 시기. 밖으로 국력을 과시하고 안으로 국민 통합을 꾀하려는 양면적 동력으로 세계박람회가 이용되던 시대이기도 했다.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세계박람회를 주도한 건 미국이다. 신흥경제권으로 일어선 미국의 박람회는 국가주의에 기반을 두던 유럽과 달리 상업주의와 이윤 동기가 깊숙이 작용했고, 그만큼 대중성과 오락성이 두드러졌다. 정치 이데올로기가 첨예하게 대립하기도 했다. 2차세계대전 직전 열린 1937년 파리박람회에서는 에펠탑을 사이에 두고 정면으로 마주선 소련과 독일의 전시관이 극단적 좌우이념 대결 이미지로 세계인들에게 각인되었다.

냉전시대에 돌입한 이후 열린 1958년 브뤼셀박람회에서는 소련 우주선과 미국 아이스크림이 대결을 펼치기도 했다. 박람회 직전 스푸트니크를 쏘아올리고 소련관에 버젓이 모형을 설치하여 미국을 자극한 결과로 미국항공우주국이 창설되었고, 미국 과학기술의 우수성을 홍보하는 데 시애틀박람회가 이용되었다.

한편 1970년 오사카박람회는 세계경제의 기운이 마침내 동아시아로 넘어왔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일본이 개최한 네 차례의 세계박람회와 1993년 대전박람회, 2010년 상하이박람회, 2012년 여수박람회로 이어지는 한·중·일 3국의 부흥이 그것을 증명한다. 이렇듯 다양한 자양분을 흡수한 현대 엑스포는 이후 환경문제 같은 인류 공통과제를 논의하고 인간의 창의력을 실험하는 공간으로 계속해서 진화하며 새 역사를 쓰고 있다. 이토록 다양한 모양의 역사가 밀도 있게 담겨 있는 곳이 바로 엑스포다.

이 책은 국내 최초로 인문적 시선을 담아낸 색다른 엑스포 리포트로 불러도 될 것이다. 그동안 매뉴얼과 화보집에 그치던 엑스포 소개 책자와는 확연히 다른 구성과 집필이 눈에 띈다.

역사 속에서 엑스포는 산업과 풍물의 시대사를 아우르는 인문ㆍ사회학적 관점의 연구나 통찰이 상대적으로 미흡했다. 특히 엑스포의 역사 분야는 각 학문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감이 있으며, 엑스포 예술사나 건축사로 그 연구가 한정되었는가 하면, 문명사적 관점은 통사적이기보다 특정 박람회 소개에 그쳤다. 바꿔 말하면 무궁무진한 미답의 연구 과제가 ‘엑스포의 역사’에 압축되어 있다는 의미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그간 국가 행사 혹은 국제적 비즈니스 행사의 하나로만 바라보던 엑스포를 인문학적으로 들여다보는 거의 최초의 시도라 봐도 좋을 것이다. 엑스포의 사적(史的) 흐름을 놓치지 않으면서 엑스포에 얽힌 당대의 문화와 시대 담론, 풍습, 예술 사조, 당대인들의 생각까지 담아내려 노력했다.

그밖에도 이 책은 평화를 내세우는 박람회장에 전시된 대포가 3년 뒤인 1870년에 터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 활약했던 이야기와 국가전시관에 ‘검둥이촌’이라 불린 인간 동물원이 버젓이 자리했던 인권 굴욕의 역사 등도 담고 있다. 과거 제국주의 식민지 개척사 중 ‘가장 혹독하고 비인간적인’ 수탈로 세워진 콩고자유국 40주년을 엑스포 주제로 내세운 사건 등 아이러니한 에피소드나 특별한 일화, 팁, 이미지가 풍성한 볼거리와 읽을거리를 제공한다.(계속)

                  

■ 지은이 오룡은?

서강대학교와 동 대학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다. 한겨레신문사 기자로 10년간 근무한 뒤 캐나다에 거주하며 에어캐나다 직원, 게이트웨이밴쿠버 편집장, 연합뉴스 밴쿠버 통신원으로 일했다. 이후 (사)아시아기자협회 사무총장, 아시아엔 편집이사, (재)국제평화재단 사무국장, 제주평화연구원 제주포럼사무국장 등을 지냈다. 현재 전남 여수에 거주하며 프리랜서 번역·집필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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