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직 묵상] “내 고통에 빠져 이웃에 눈을 감지 않겠습니다”

십자가의 길은 고난의 길. 그러나 영광의 길이다. 우리의 고통은 어떤가?


함께 기도할 제목

1. 말씀 안에서
-고통 당한 이웃에게 해결사가 되기보다 잠잠히 공감하는 위로자가 되게 하소서
-인생의 고난 속에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묵상하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2. 나라와 민족
-두려움과 실패로 낙심한 청년들을 주의 말씀으로 일으켜 세워 주옵소서
-병들어 신음하는 가정들을 돌보아주시고 진정한 사랑을 경험하는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3. 교회와 선교
-세상의 이슈를 따라가기 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게 하소서
-이 땅의 교회가 많은 일을 하기보다 힘써 서로 사랑하는 능력을 갖게 하소서

조정민 목사의 12줄 멘트

욥기 6:1-13 “비교할 수 없는 고통”
2-3 나의 괴로움을 달아 보며 나의 파멸을 저울 위에 모두 놓을 수 있다면 바다의 모래보다도 무거울 것이라

1. 우리는 본다고 하나 보지 못하고 듣는다고 하나 듣지 못합니다. 기껏해야 내가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내가 듣고 싶은 대로 듣습니다.

2. 우리는 또 사물이나 사건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내 사고의 틀이나 감정의 여과장치를 거쳐 수용하기에 늘 주관적입니다.

3. 아무리 객관적이라고 고집해도 주관을 벗어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사실 이 모든 것이 타락이 불러온 뜻하지 않은 결과입니다.

4. 죄와 타락은 거울을 렌즈로 만듭니다. 오목하거나 볼록한 렌즈가 되면 무엇을 비추건 왜곡됩니다. 언제나 실제보다 크거나 작습니다.

5. 따라서 죄인의 말은 진실이 아니라 주장에 불과합니다. 그런 주장들이 난무하다가 부딪치면 소리만 요란할 뿐 사실 규명 불가입니다.

6. 욥의 탄식이나 엘리바스의 충고는 그 나름대로 이유가 있고 일단의 사실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쪽도 의로움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7. 엘리바스는 욥에게 결국 죄를 인정하고 속히 회개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주장합니다. 욥은 엘리바스에게 서운함을 토로하고 맙니다.

8. “내 괴로움을 저울로 달 수 있다면 바다의 모래보다 무거울 것이다.” 누가 바다 모래의 무게를 저울로 달 수 있습니까? 본인의 느낌입니다.

9. 그러나 그 표현을 놓고 따지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고, 과장하지 말라고 나무라는 것도 부질없는 짓입니다. 느낌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10. 원래 사람의 고통은 비교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은 비판의 대상이 아니라 위로의 대상일 따름입니다.

11. 엘리바스는 자신이 경험해보지 못한 욥의 고통을 작게 여겼습니다. 욥은 난생 처음 겪는 자신의 고통이 너무 커서 감당을 못 합니다.

12. 이 두 사람이 친구로 남아 있는 길은 고통의 원인을 규명하는 것도 아니고 고통의 크기를 측정하는 것도 아니고 단지 공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다 아프고 힘듭니다. 그러나 제 고통에 빠져 이웃에 눈을 감지 않겠습니다. 또 제가 좀 편하다고 남의 비탄에 귀를 막지 않겠습니다.

베이직교회 아침예배(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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