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산책] 한국에 없는 소설 <뉴욕좀비>···’아웃싸’ 출신 ‘핵인싸’

유순호 작가가 저서 <뉴욕좀비>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아시아엔=김형근 서울셀렉션 대표] <뉴욕좀비>는 한국문학의 여느 소설들과 여러 면에서 다른 특징이 있다. 따라서 이종, 변종소설이라고 불릴 수 있겠다. 요즘말로 하면 ‘인싸’가 아닌 것이다.

대체로 ‘아웃싸’는 비판의식 과잉으로 재미와 격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뉴욕좀비>는 그러나 문학의 전통적인 미덕인 사회비판이라는 관점을 견지하면서도 재밌고 흥미롭다. 아웃싸 출신 핵인싸인 셈이다. 개인적 바람으로는 이 소설이 이러한 주류, 비주류를 가르는 우리 사회의 전근대적 시각을 척결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작가 유순호(중국명 슌하오 리우)는 스스로를 ‘코리안 어메리칸 차이니즈’라고 말한다. 중국동포 출신으로 뉴욕에서 살고 있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설명이다. 유 작가는 중국에서 문학단체 결성 문제로 정부와 마찰을 빚어 40대 초반인 2002년 미국으로 망명했다.

한글로 글을 쓰고 있는 작가 중 이렇게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작가는 드물 것이다. 한글로 쓰여진 ‘한글문학’-한국문학이란 말과는 개념이 다르다-을 ‘한민족 문학’이라고 한다면, 유순호의 작품은 ‘한민족 디아스포라 문학’이다. 한민족이라는 말도 이제는 어폐가 있는 말이 되긴 했지만 말이다.

교포들의 생활에 대해 그동안 단편소설들이 꾸준히 발표돼 왔으며, 고단한 이민생활 같은 소재에 대한 장편소설도 쓰여진 적이 있지만, <뉴욕좀비>처럼 외국 현지에서 그 나라의 사회.문화적 현상을 주요 소재로 활용하면서 쓰여진 글로벌 시각의 한민족 문학 작품은 많지 않다.

내용도 작가의 특이한 이력만큼이나 독특하다. 이 소설은 주인공 리우와 세 여인의 연애담이다. 한 여자는 미국인(루시)이고, 나머지 두 여자 중 하나는 중국동포(채희), 하나는 중국인(샹샹)이다. 이야기는 주인공과 세 여자 사이에서 각각 또는 동시에 진행되는 ‘애정행각’을 큰 틀로 해서 전개된다. 하지만 소설의 방점은 연애보다는 등장인물의 처지와 그들이 처해있는 사회적 상황에 찍혀 있다.

사회적 상황을 묘사하기 위한 일종의 설정 샷인 셈인데, 그 설정 내용이 사회문화적 풍성함과 흥미로운 읽을거리를 제공한다. 사실 작가는 이걸 본인의 의도적인 설정이라기보다는 체험적 상황이라며 이 소설에 자전적 요소가 많음을 숨기지 않는다.

미술을 전공한 뉴요커 루시를 통해서는 현대미술의 경박함과 모순을, 주인공이 파트타이머로 일하는 뉴욕 소호의 액자가게를 중심으로 펼쳐놓는다. 중국동포 채희는 미국에 밀입국하면서 빚을 지는 바람에 이 빚을 갚기 위해 몸을 판다. 채희는 주인공의 다락방에 트렁크를 맡겨둔 채 뉴욕의 인근 도시를 전전하며 손님들의 변태적 행위와 과도한 요구를 참아가며 달러를 번다.

작가는 채희를 통해 좀비형 인간을 양산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지적한다. 종국에는 좀비를 양산하는 무리(성을 사는 미국인)가 진정한 좀비가 아닌가고 되묻는다. 좀비와 뱀파이어 문학의 형성에 큰 영향을 끼친 미국인 소설가 리차드 매더슨의 <나는 전설이다>(I Am Legend)가 생각나는 대목이다.

부모와 함께 국경을 넘다가 이국땅에서 졸지에 고아가 된 샹샹은 의지할 곳을 찾기 위해 주인공에게 자신을 밥만 먹여주고 “사라”고 한다. 나중에 영주권을 얻기 위해 다른 남자와 위장결혼도 한다. 주인공 리우는 중국계 신문사에서 일하면서 생계를 해결한다. 쥐꼬리 만한 봉급 탓에 쥐가 득시글거리는 빈민가 다락방에 거주하며 말 그대로 생계만을 해결한다.

소설의 장점은 이야기의 리얼리티에 있다. 예를 들면 채희가 몸을 팔아 번 돈으로 중국에 있는 남편에게 차를 사주었는데 그 남편이 차에 젊은 여자를 태우고 다닌다는 말을 고향사람들로부터 전해들은 채희가 뉴욕의 길거리에서 목놓아 우는 장면은 압권이다.

프랑스어나 영어로 쓰인 외국 문학작품을 많이 읽은 한국의 소설 독자는 이 작품의 도입부에서부터 지역적 배경 때문에 신선함을 느낄 가능성이 많다. 미국의 상황이 한글을 사용하는 작가의 눈으로 설명되기 때문이다. 소설의 배경은 뉴욕주 일대와 캐나다 온타리오호 주변, 뉴욕시 인근 캣스킬 마운틴 등이다. 뉴욕메트로폴리탄뮤지엄이나 뉴욕 뒷골목의 피자가게 등 미국 주류사회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미국에 이민 온 중국동포 사회와 한국 교민사회의 이야기들과 교직돼 있다.

뉴욕의 주류문화가 내뿜는 문화적 향취는 사탕수수의 첫맛처럼 달달하다. 주류사회가 올라타고 있는 ‘소셜 언더독스’에게는 그러나 단맛이 빠지고 입안 가득 남은 사탕수수의 섬유질 덩어리를 삼켜야하는 고통스러운 삶이 주어진다.

살기 위해서는 이걸 삼키고 좀비가 되어야 한다. 먹고 살기 위해 몸을 팔고, 위장결혼을 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뉴욕, 아니 미국사회의 삶은 시작부터 신산하고 고달플 뿐이다.

마지막으로 작가의 스토리텔링 능력은 빼놓을 수 없는 이 소설의 매력이다. <뉴욕좀비>는 이야기와 이야기로만 구성된 이야기 소설이다. 한 이야기가 다른 이야기를 불러내고, 그 다른 이야기는 더 많은 이야기들을 불러낸다. 작가의 해석이나 설명은 조금 있거나 없다. 그래서 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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