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여왕 부군 故 필립공의 삶 되돌아보니

1953년 즉위식 당시 엘리자베스 2세와 부군 필립공

평소 몸이 아픈 아내를 바라보면 평생을 여왕 외조에 바친 영국의 필립공의 희생이 떠오르곤 한다. 지난 봄 그가 세상을 떠난 지 계절이 두 번 바뀌고 있다. 그의 삶의 궤적이 우리 대선 후보들 배우자의 그것과 오버랩 되는 것은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필자는 오래 전 영국의 버킹검궁 광장에서 필립공과 엘리자베스 2세 여왕 부부 모습을 본 일이 있다. 여왕 부부를 보려고 구름 관중이 모였었다. 그때 필립공이 무척 정정했는데 지난 4월 9일 99세를 일기로 서거했다.

영국 왕실 버킹엄궁은 “여왕 폐하의 부군이셨던 ‘에딘버러 공작 필립공’께서 별세하셨습니다. 이날 아침 윈저성에서 평화롭게 세상을 떠나셨습니다”라는 공식발표를 했다. 버킹엄궁은 당일 곧바로 조기를 계양했고, 필립공의 별세 소식을 들은 영국 시민들은 버킹엄궁을 찾아와 눈물로 헌화하며 애도를 표했다.

영국의 총리 보리스 존슨도 애도 성명을 통해 “무엇보다도 여왕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과 지원을 보낸 든든했던 부군 필립공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부군으로서 여왕의 곁에서 70년이란 세월 든든한 버팀목으로 함께 버텨온 거목 같은 존재였다”고 했다.

필립공은 1921년 그리스 ‘코르푸섬에서 그리스 앤듀류 왕자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그리스와 덴마크 왕자 신분이었지만, 부친이 군부 쿠데타로 권력을 빼앗겨 그리스를 떠나야했다. 그리스의 몰락한 왕가의 일원으로 괴로움과 시련을 겪으며 여러 나라를 떠돌다 1939년 영국 다트머스 소재 영국왕립 해군학교에 입학했다.

거기서 5살 연하 엘리자베스 공주와 처음 만난다. 영국 해군으로 2차 세계대전에도 참전했던 필립공은 군 복무를 마친 후 엘리자베스 공주와 결혼식을 올렸다. 엘리자베스의 아버지 조지6세의 갑작스러운 서거로 아내인 엘리자베스 2세가 1952년 여왕으로 즉위한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필립공 두 사람의 사이에는 찰스 왕자를 비롯한 4명의 자녀를 뒀고, 윌리엄 왕세손의 자녀 8명과 증손자 10명이 있다. 필립공은 영국 역사상 가장 오래 재위(在位)하고 있는 엘리자베스 여왕을 곁에서 보좌하면서 2만2000건의 왕실 공무를 수행했다. 1999년 여왕의 방한에도 동행했다.

2017년 96세 고령 나이가 돼서야 공무에서 은퇴한 필립공은 여왕과 함께 코로나19 바이러스를 피해 2020년부터 윈저성에서 여생을 보냈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공주 시절 필립공과 결혼식을 올릴 때, 신랑 쪽에는 가족이 아무도 없었다. 필립공의 아버지인 그리스 왕자 안드레아스는 쿠데타로 쫓겨난 뒤 오랜 망명생활 끝에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는 신경쇠약에 시달리는 중환자였다.

여왕의 부군이 되면서 필립공은 많은 것을 버렸다. 먼저 그리스 왕자 신분을 포기했다. 영국으로 귀화하고 성(姓)을 ‘바텐베르크’에서 영국식 ‘마운트배튼’으로 바꿨다. 이름도 그리스어 ‘필리포스’에서 영어 ‘필립’으로 개명했다. 종교도 그리스 동방정교회에서 영국 성공회로 개종했고, 해군 장교로서의 미래도 내려놨다.

아내가 여왕에 오른 뒤에는 대관식에서 무릎을 꿇고 충성맹세를 한 첫번째 신하가 됐다. 여왕의 남편이지만 왕실 후손에게 자신의 성을 물려줄 수도 없었다. 그는 친구들에게 “나는 자식에게 성을 물려줄 수 없는 유일한 남자”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고 한다.

그는 타고난 쾌활함으로 여왕을 잘 보필한 ‘외조의 왕’이었다. 소탈한 성정으로 평소 가방을 옮길 때에도 왕실 직원에게 맡기지 않았다. 직원들 편의를 위해 버킹엄궁에 내부 통신용 전화를 설치했다. 평소 전기 프라이팬으로 음식을 만들어 아내와 함께 먹는 걸 즐겼다.

연간 수백번의 여왕 행사에 그림자처럼 동행하는 틈틈이 독자적인 사회활동도 펼쳤다. 세계 야생동물기금 초대 회장을 비롯해 그가 인연을 맺은 단체는 780여개에 이른다. 워낙 행사를 많이 해서 “여러분은 이제 세상에서 가장 경험이 풍부한 ‘현판 제막 기계’(plaque-unveiler)를 보게 될 것”이라는 농담으로 좌중을 웃기곤 했다.

여왕에게 직언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도 필립공이었다. 여왕을 ‘양배추’(cabbage)란 애칭으로 부르는 자상한 남편인 동시에 왕실의 안전과 현대화를 위해 각별한 노력을 기울였다. 또한 어릴 때 그리스 왕실의 몰락을 직접 겪었기에 역사를 보는 시각이 남달랐다.

그를 빅토리아 여왕의 남편 앨버트공과 비교하기도 하지만, 앨버트가 42세에 타계한 것과 달리 그는 99세까지 살다 서거했다. 공주와 결혼한 지 74년, ‘여왕의 남자’로 산 지 69년만이니 역대 영국왕의 배우자로 가장 오래 산 사람이 필립공이다.

언제나 아내의 세 발짝 뒤에 서있어야 했던 일생을 생각하면, 그보다 더 많은 사연을 품고 세상을 떠난 남자도 쉽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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