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위안부할머니들이 쓴 책 ‘나비 날다’
“우리가 바로 독립군이고 아이들의 미래와 순분이들의 현재입니다”
[아시아엔=이상기 기자] 8월 11일은 일본 <아사히신문>이 1991년 종군위안부 사건을 처음 보도한 날이다. 자국의 범죄를 용기있게 보도한 기자는 우에무라 다카시기자는 훗날 한국에서 언론상을 받기도 했다.
한국에선 상황이 정반대로 피해자들을 다룬 소설이 지각 출판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늦게나마 나온 것을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까마는.
은미희 소설가의 <나비, 날다>는 일본 제국에서 식민지 조선 처녀들을 거짓으로 꾀어 강제로 공출하여 위안부로 살게 했던 참담한 기록이다. <Flutter, Flutter, Butterfly>라는 표제로 미국에서 영문판이 먼저 2016년 출판되었다. 그후 5년이 지나서야 최근 많은이의 모금으로 한글판이 나오게 되었다.
작가의 결단과 미국에서 영역을 맡은 안영숙씨, 미 연방공무원 이상원 박사, 김정기 선생 등 많은 분들의 노고가 컸다.
일본은 2차대전 패망 이후 자신들을 피해자로 둔갑시킨 <요꼬이야기> 등을 미국 내에서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도서관과 학교에 무상으로 살포하였다. <요꼬이야기>는 일본이 패망 뒤 귀국하는 일본인 여성들을 조선인들이 무자비하게 폭행하였다는 내용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일본은 <요꼬이야기>뿐 아니라 2차대전 당시 동원된 위안부가 돈 잘 버는 매춘부였다는 그릇된 내용을 미국 교과서에 실어줄 것을 청원하는 서명을 벌이기도 했다.
“하루코. 춘자. 봄의 여인이란 뜻의 이름 하루코. 생명의 기운으로 가득 찬 세상, 봄. 따뜻하고 생동감 넘치고 아름답고 환희에 넘쳐 나는 봄. 그 봄의 세상은 하루코라는 이름으로 나에게는 어둠이 되었고, 지옥이 되었다. 그 시절의 이름, 하루코. 지우개로 지우듯 그렇게 지나간 내 생을 지우고, 나를 소거하고 싶다. 하지만 하루코, 그 이름은 내가 살아가는 동안 짊어지고 가야 할 형벌이었고, 나는 끝내 그 이름을 내 생에서 떨쳐내지 못했다.”
소설 <나비, 날다>는 이렇게 시작한다. 순분이라는 열다섯 조선의 처녀는 일본 군인의 꼬임에 빠져 버마의 위안소로 끌려간다. 소설은 순분과 같은 조선의 처녀들이 하루 수십명의 일제 군인들에게 처참하게 강간당하고 성병 걸리고 임신하는 사실적 이야기를 담고 있다.
위안소의 위안부들은 일본제국의 군인에게 주는 선물이었고 이 소녀들은 그야말로 성노예였다고 작가는 말한다.
은미희 작가는 “소설의 이야기들은 사실이며, 사실을 알리고 진실을 기록하기 위해 나 자신의 견해는 최대한 배제했다”며 “생존하는 할머니들의 증언을 소설의 형식과 구성을 빌어 엮어낸 사실의 기록이며 또 다른 증언”이라고 했다.
은 작가는 “거대한 폭력 앞에 한 소녀의 삶이 어떻게 망가지고, 국가가 보호해 주지 못하는 소녀의 삶은 얼마나 피폐해지는지 생각해 보자고 집필을 시작했다”고 한다.
은미희 작가는 “이 책은 내가 쓴 책이 아니라 할머니들이 쓴 책”이라고 했다.
은미희 작가를 붙들어 세운 아래의 역사왜곡도 이 책 출판에 역설적으로 큰 역할을 했다.
“강제연행은 없었다, 위안부 20만명은 근거 없다, 성노예가 아니다, 자유의지로 가난의 굴레에 돈 벌려 간 매춘이다.”
이 책은 2권으로 계획됐었다. 1권은 할머니들이 위안부로 가게 된 과정과 그곳에서의 생활을 다루고, 2권은 위안소를 나와 그 뒤의 신산했던 삶을 추적하려 했다. 하지만 은미희 작가가 1권 쓰는 동안 건강을 해쳐 2권을 쓸 수 없었다고 한다. <나비, 날다>는 아직 미완성인 셈이다.
은미희는 작가의 말을 이렇게 맺었다. “고백하거니와 쓰는 동안 너무 아팠던 나는 한글판 출판에는 회의적인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나비 날다 팀’은 나를 일으켜 세웠고, 출판까지 밀어부쳤다. 그분들에게 거듭 고마움을 전한다. 쓰는 동안 아팠듯이 읽는 고통도 적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한번쯤 꼭 읽어야 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진실을 알아야 제대로 된 대응을 구하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으므로. 모두에게 평화를.”
최서연씨는 이 책 추천사를 이렇게 썼다.
“저는 아이 둘을 키우고 있는 평범한 주부이자 소소한 세상소식을 전하는 시민기자입니다. 어느날 큰애가 아래 두 질문을 던졌는데 말문이 막혔습니다.
‘엄마 여자들을 정당하게 월급주고 데려갔데. 자발적으로 돈 벌려고 위안부 되었다는데…’
“독도가 일본땅인데 우리가 우기는 거래. 맞아?”
너무 놀라 어디서 들었냐고 하니 동영상 사이트를 보여주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인기가 있는 인플루언서들이었습니다. 극우 성향이었으나 우리나라 말을 쓰고 우리의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동영상 사이트로 세상을 파악하고 TV나 책보다도 많이 접하고 있습니다. 저희 아이도 동영상사이트를 자주 보고 그안에서 지식을 찾는 것이 다반사입니다. 그렇지만 시대의 흐름상 그것이 당연하고 스스로 찾는 것이 대견하여 두고 보던 중이었습니다.
이렇게 동영상 사이트처럼 쉽게 접하는 매체들은 많은 역사의 왜곡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재미있게 만들어 아이들은 무차별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저런 식이라면 제대로 된 역사는 우리 대에서 끝이 날거 같은 두려움이 들었습니다.
역사는 기억의 기록이고 우리들의 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정신을 물려주지 못하면 어찌 될까요? 아이를 키워야하는 저에게는 당장 직면한 큰 걱정거리입니다. 역사모임을 통해 알게된 <나비, 날다>는 저에게 꼭 이뤄야하는 숙명같은 것이었습니다. 이 책은 아이들에게 우리의 정신을 물려주기 위해 꼭 필요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제대로된 역사를 알려주어 동영상 사이트에서 일어나고 있는 역사 왜곡과 일본이 행했던 극악무도한 전쟁미화, 피해자라는 주장들을 바로 알려주고 싶습니다.
아이들의 성장은 우리들의 미래이며 책속의 주인공 순분이들의 희생으로 이뤄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희생이 지금의 우리를 있게 했고 우리 아이들의 미래와 맞닿아 있습니다.
저는 이 책을 통해 정직한 역사를 알게 해 아이들의 정신과 마음을 기르게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영미권에서 먼저 출판된 적이 있었던 만큼 전 세계로 뻗어나가 대한민국의 아이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아이들이 올바른 역사를 알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 애쓰셨던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이 바로 독립군이고 아이들의 미래와 순분이들의 현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