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연필로 명상하기’의 지휘자 한승훈 프로듀서

한승훈 프로듀서 프로필

[아시아엔=민다혜 기자]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이 있다. 조직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조직원들을 이끄는 리더가 필요한 이유다. 100여명의 개성과 소리를 담은 오케스트라 단원들에게 지휘봉을 흔드는 지휘자는 단 한 음도 연주하지 않으면서도 팀의 에너지를 최대로 끌어올려 최상을 소리를 만들어 낸다. 협업을 통해 제작되는 애니메이션에도 그런 역할이 있다. 바로 프로듀서다. ‘연필로 명상하기’의 한승훈 프로듀서는 마치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전체를 결집시켜 조화로운 소리를 만들 수 있게 이끌어간다.

어린 시절 누구나 오매불망 기다렸던 만화영화 한 편쯤 있을 것이다. 어릴 때는 같이 울고 웃던 단짝친구로, 어른이 되어서는 메마른 현실에 지친 마음을 달래 주는 만화영화들. 한승훈 프로듀서의 어린 시절은 디즈니 만화동산과 함께 했다고 한다. “주말 아침 9시에 시작하면 30분전부터 앉아 TV 앞에 기다리곤 했다.” 하지만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과 만드는 것은 다른 문제다. 그는 어떤 계기로 좋아하던 것을 생업으로 삼게 됐을까?

“어렸을 때 만화영화를 보면 당연히 한국말로 나오니 모든 만화영화가 다 국내작품인 줄 알았다. 나중에 한국어로 더빙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국내 창작작품이 많이 없다는 것을 알고 우리 고유의 정서가 담긴 애니메이션을 직접 만들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림을 못 그리는 게 그의 발목을 잡았다고 한다. “여러 제작사를 찾아보는 과정에서 창작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연필로 명상하기’를 알게 됐다. 스튜디오에 연락해 찾아 뵙고 싶다고 하니 안재훈 감독님이 흔쾌히 시간을 내주셨다. 애니메이션을 너무 좋아해 관련 일을 해보고 싶은데 그림에 재능은 없어 어떻게 하면 좋을지 조언을 구했더니 ‘꼭 그림을 그리지 않아도 애니메이션 관련 일을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며 프로듀서라는 직업을 추천해 주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나는 참 무모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런 패기와 열정이 있기에 지금까지 잘 버틸 수 있는 것 같다. 내 방법이 요즘 시대에 맞지 않을 수 있는데, 스스로에게 자신 있다면 기회의 문을 두드려보는 것을 추천한다. 기회는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오기도 하니까.”

한승훈 프로듀서는 “애니메이션은 그린대로, 연출한대로 살아 움직이며 각자의 세상을 펼칠 수 있어 매력적”이라고 한다. 직접 그림을 그리지 않는데 자신의 세상을 어떻게 구현한다는 것일까? “한번은 감독님과 인사동 거리를 걷다 사람들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져 있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작품으로 사회에 메시지를 전하자’. 내년에 개봉 예정인 <살아오름: 천년의 동행>을 통해 청춘을 잃은 청년들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전할 예정이다. 포기하지 말고 꿋꿋이 살아가라고, 세상은 살아 볼 만한 희망이 있다는 걸 말해주고 싶다.”

연필로 명상하기 스태프들간의 소통을 이어주는 한승훈 프로듀서의 마이크

한승훈 프로듀서의 하루는 스태프들의 전날 작업을 확인하면서 시작된다. “작업량이 부족할 경우 스케줄을 조정해 전반적인 작업 속도를 조율한다. 이후 영화사와 팔로우업을 하고, 프로젝트들을 구상한다. 감독님과 스태프들이 오로지 작품에 집중할 수 있도록 제작에 필요한 일정, 예산, 인력을 관리하고 책임진다고 보면 된다. 제작 과정에서 발생하는 기술·구조적 문제들을 미리 파악하고 해결해야 작품의 질을 높일 수 있다. 작품 기획 과정에서 손이 부족하다 싶으면 외부인력을 고용한다거나, 인력을 재배치하는 등 작업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 또한 나의 일이다.” 그는 “저 없으면 스튜디오는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며 농담처럼 건넸지만 다방면으로 책임져야 할 게 많은 그의 모습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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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마치고 집에 와서도 애니메이션을 향한 그의 애정은 식지 않는다. 그런 열정들이 모여 연필로 명상하기의 새로운 프로젝트로 이어졌다. “요즘 트렌드와 장르에 따른 독자들의 반응을 파악하기 위해 자기 전 1~2시간 웹툰을 본다. K웹툰이 대중문화의 한 장르로 자리 잡는 걸 보며 우리도 올해부터 웹툰을 시작했다. 원작소설을 웹툰으로 구현할 계획이다. 웹툰 출판사와 조율해 웹툰화 작업을 시작했고, 이르면 올해 안에 나올 수 있다. 스튜디오 고유의 빛을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선을 돌려 봤으면 하는 마음에 몇 년 전부터 감독님께 제안했다. 단기간 폭발적으로 성장한 웹툰 시장 현황, 성장률, 매출, 인력구조 등의 자료들로 감독님을 설득해 시작할 수 있었다.”

시대 흐름에 따른 변화에 잘 맞춰가고 있는 그이지만, 연필로 명상하기는 여전히 특유의 아날로그 감성을 지켜가고 있다. “나는 디지털 작업방식을 선호하는 편인데 연필로 명상하기 특유의 아날로그 감성을 지키고 싶어 감독님과 해결책을 찾은 게 ‘컷봉투’다. 작품명과 각 신에 대한 컷을 넣어 구분하는 봉투다. 1000컷이면 1000개의 컷봉투가 생기는 것이다. 디지털화 되면서 이제는 컴퓨터로 자료들이 오고 간다. 아날로그 감성이 사라지는 게 아쉬워 작업은 디지털화 하되 컷봉투로 기록들을 남기고 있다.”

작은 작업 하나에도 애정을 쏟는 연필로 명상하기 스튜디오. 연필로 그린 그림이 한 작품이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필요할까?

“연필로 명상하기에는 전체적인 틀을 잡는 안재훈 감독님과 한혜진 미술감독님, 감독님과 의논하며 작품 연출을 담당하는 조연출, 작품 전체를 총괄하는 프로듀서 2명이 있다. 애니메이션 제작과정에는 스케치로 그림의 시작을 담당하는 작화팀, 단편적인 그림을 움직이게 하는 원화팀, 원화와 원화 사이를 채워 움직임을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동화팀, 색을 입히는 미술팀, 작품 배경을 담당하는 배경미술팀, 영상들을 묶어 합성하는 촬영팀, 복잡한 배경을 구현하는 3D&촬영팀, 외부 작업팀까지 포함하면 30명 이상 된다.” 여러 의견을 조율하는 게 힘들지 않나 물으니 “감독님과 스태프들이 여러 차례 회의를 통해 결과물을 만드는 만큼 팀원들이 애정과 책임감을 가지고 있어 호흡을 맞추는 데 큰 어려움은 없다”고 한다.

2018 토론토대학에서 열린 ‘소중한 날의 꿈’ 공동체 상영 현장

한 편의 애니메이션이 극장에 개봉될 때까지 우여곡절이 많았을 텐데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을까. “11년 동안 프로듀서로 일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작품을 꼽자면 <소중한 날의 꿈>이다. 개봉때만 해도 잡혀 있던 개봉관이 수백여 개였는데, <트랜스포머>가 개봉하면서 개봉관 수가 한자리로 떨어졌다. 그때는 정말 힘들었는데 춘천의 안재훈 감독님 작품을 사랑하는 모임에서 ‘이런 좋은 작품이 블록버스터 작품 때문에 내려가는 건 말도 안된다’며 춘천시내의 영화관에 계속 항의한 결과 재개관 할 수 있었다. 이 작품은 지금까지도 도서관, 학교 전당, 한국문화원 등에서 상영되고 있다. 기적인 듯 싶다.”

한 편의 극장용 애니메이션 제작을 이끌어낸 한승훈 프로듀서에게 보내는 글

관객들은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으며 경험하지 못한 세상을 느끼기 위해 기꺼이 돈과 시간을 투자한다. 그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기에 한 피디는 묵묵히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스태프들이 우스갯소리로 나를 좀비라고 부른다. 죽여도 죽지 않는 좀비. 내가 생각해도 멘탈은 강한 편인 것 같다. ‘좌절할 시간에 빨리 방법을 찾아 수습해야지’ 하는 생각으로 항상 해결책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그렇게 완성된 작품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보여줄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 그 순간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주로 극장 맨 뒤에서 관객들 반응을 살펴보는데 반응이 각양각색이다. 간혹 스태프 부모님들 중 펑펑 우시는 분들을 보면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동기부여가 된다.”

한국 애니메이션의 미래에 대해 묻자 한승훈 프로듀서는 안 감독과는 또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는 세계 애니메이션 시장에 국내 애니메이션이 설 자리가 없어져가는 건 맞다. 정부에서 지원받는다 해도 제작비를 감당하기에는 많이 부족한 현실이다. 하지만 한국이 웹툰 종주국으로 세계 최대 만화시장 일본과 미국을 넘어 동남아, 유럽까지 뻗어 나갈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새로운 변화의 흐름을 봐야 한다. 올해 새롭게 추진한 웹툰 사업을 통해 안정적인 수익구조를 마련하고 제작비 걱정 없이 감독님과 스태프들이 하고 싶은 작품들 마음껏 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고 싶다. 연필로 명상하기가 쌓아온 빛과 색을 지켜 나갈 수 있게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게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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