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애니메이션 감독 안재훈의 지금 여기 “Love is now here”
[아시아엔=민다혜 기자] 서울 중구 남산동 골목에 있는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연필로 정성 들여 한 장 한 장 그린 스케치들이 가득하다. 안재훈 감독의 ‘연필로 명상하기’ 스튜디오는 그림으로 영화를 만드는 곳이다.
옛날 텔레비전, 전화기, 분필 낙서로 뒤덮인 칠판. 마치 아날로그 감성이 가득 담긴 전시관을 보는 것 같다. 작품을 만들면서 자연스레 쌓여왔던 스케치와 조그만 소품들 위에 정성스레 쓰인 글귀들을 보고 있으면 마음 속 한 켠이 따뜻해진다.
가급적이면 하루에 하나의 일정만 잡을 정도로 안재훈 감독은 사람과의 인연을 소중히 여긴다. “나를 위해 발걸음을 해주는 건데 그 사람에게만 집중하고 싶다. 스튜디오에 붙어 있는 사진들은 내가 만났던 사람들이다. 지금은 붙일 공간이 없어 앨범에 인화해서 기록하고 있다. 앞날은 누구도 모른다. 혹여 내가 죽음을 앞두고 있거나 치매에 걸리게 되더라도 내가 만났던 사람들은 기억하고 싶다. 그 사진들을 보며 ‘우리가 이렇게 만났었네요’라면서.”
글 쓰고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해서 시작한 애니메이션. 그의 처음 시작이 궁금하다. “일본 애니메이션 하도급업체 중 한 곳에서 문하생 일을 했다. 한 달에 1000장 이상의 그림을 그려야 했지만, 서울에서 그림을 그릴 책상이 있다는 것이 좋았다. 요즘 젊은이들은 꿈도 크고 목표도 크지만 나는 ‘무조건 애니메이션 감독이 되겠다’ 이런 포부는 없었다. 딱히 실망과 좌절이라 할 것 없이 미적지근하게 꾸준히 쭉 일해왔다. 그렇게 일하던 중 미국이나 일본은 각국의 풍경을 담은 애니메이션들이 많은데 한국은 그런 작품이 없다는 게 슬펐다. ‘그만두기 전에 한 두개는 만들어야지’ 하던 마음이 계기가 되어 직접 스튜디오까지 차리게 됐다.”
스튜디오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이름 ‘연필로 명상하기’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요즘은 뚜렷한 목적을 갖고 가치관에 맞는 이름을 짓지 않나. 애플처럼 회사의 아이덴티티가 담겨있는 이름도 있고. 그래서 우리의 직업적 특성을 살려 ‘연필로 명상하기’란 이름을 짓게 됐다.”
안 감독의 상상력을 실현시켜 줄 공간은 위와 같이 탄생했다. 그의 작품관은 어떤 이들의 영향을 받았을까? “대한민국 근대 미술의 거장 이중섭 선생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나도 그처럼 작품에 한국을 담고 싶었다. 일본에서 자리 잡아 이름을 알리고 있던 이중섭 선생님도 어느 날 한국으로 돌아와 ’조선을, 한국을 아무도 그리지 않으면 누가 이 세상에 남겨놓겠나’ 하면서 한국의 소를 그리지 않았나.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스스로 자각한 위대한 예술가’라고도 부른다. 나에게도 비슷한 순간이 왔던 것 같다. 먼 훗날 세상이 세종대왕도 모르고 이순신, 윤동주도 모르면 난 너무 슬플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던 것이다. 우리 언어와 문화가 사라지지 않도록 기록하고 싶다. 소설가 박경리 선생님의 영향도 많이 받았는데, 선생님은 그 당시 한국사회의 여성으로 많은 난관을 겪었을 텐데도 사회와 현실을 직시하는 작품들을 썼다. 이외에도 ‘나는 죽을 때까지 바지저고리를 그릴테야’라고 한 만화가 이두호, 노래하는 시인이자 가수였던 김광석 등 많은 사람들이 내게 영감을 줬다.”
안 감독은 지금은 고인이 된 가수 김광석을 언급하며 그에 얽힌 추억을 소환했다. “한번은 같이 일하던 친구가 하루 종일 사무실에서 작업만 하던 날 공연장에 데려간 적이 있다. 수수한 옷차림에, 화려한 퍼포먼스도 없었는데… 오직 기타와 목소리 이 두개로 무대를 장악해버렸다. 듣는 내내 눈물 날 정도로 감동했다. 그 사람이 바로 김광석이었다. 그때 김광석은 조끼를 입고 있었는데 조끼를 입으면 내 그림도 저런 울림을 줄 수 있을까 싶어 입게 된 조끼가 이제는 나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것 같다.”
이중섭, 박경리라는 두 거장을 통해 한국적인 것을 작품에 담기로 결정한 그는 세상에서 보고 들은 것들을 작품에 녹여내고 있다. “주변의 것들이 나에게 영감 그 자체다. 어렸을 적부터 시, 국악, 팝송, 클래식까지 편식 없이 들었더니 도움이 많이 됐다. 한번은 ‘봄봄’을 만들 때 문장이 긴 부분이 있었다. ‘관객들이 지루해할텐데’ 고민하던 차에 판소리가 떠오르더라. 1인칭 시점과 전지적 작가 시점을 오가는 대사들을 판소리로 풀어내 소설 속 어휘들이 가지고 있는 그 어감과 리듬을 살렸다. 예전엔 고속도로에서 노래모음 CD를 팔지 않았다. 그 노래들을 애니메이션에 넣기도 했다. 이미지를 구현할 때는 도서관, 박물관, 미술관 등 여러 곳을 다니며 참고하는 편이다. 외국인들이 찍은 국내사진에서도 많은 영감을 받는다. 무의식 중에서도 영감이 떠오를 수 있게 항상 눈과 귀를 열어놓는다.”
애니메이션은 소설 원작과 달리 중간중간 대사가 추가되기도 한다. 안재훈 감독은 대사를 만드는데 있어 도움되는 것 중 하나가 기록이라고 말한다. “책을 잘 버리지 않는 편이다. 요즘은 모아 놓은 책을 다시 보곤 하는데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생각의 흐름을 알 수 있다. 일기장이나 스태프들과 얘기 나눈 것들을 기록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어릴 때부터 사람에 대한 관심이 많아 시 쓰는 걸 좋아했다. 학창시절 좋아하는 여학생을 생각하며 한번씩은 쓰지 않나. 사람에게서 느꼈던 것을 기록하는 것은 사랑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렇다고 내 고민을 어쭙잖게 2030에게 투영시키려고 하지는 않는다. ‘4050 감독들이여, 당신의 사랑은 지나간 것이기에 애써 1020의 사랑을 담으려 하지 말라. 노력해봤자 어설플 뿐이다’라는 말이 있다. 젊은 세대의 고민을 듣고 적어 놓는데, 그들과의 대화가 대사로 그대로 이어진다.”
‘햇빛을 받아 보석처럼 반짝이는 맑은 개울’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핀 메밀밭’. 원작 속 우리 고유의 정서가 담긴 말들은 안재훈 감독의 연필 끝에서 아름다운 풍경으로 탄생한다. 안재훈 감독은 당연히 우리 정서가 담긴 언어에 관심이 높을 수밖에 없다. “현재 전 세계에서 사용되고 있는 언어의 수는 약 7천여 개이며, 그 중 3분의 1은 소멸 위험에 처해있다. 언어가 사라지면 그 문화, 역사, 나라가 사라지는 것 아닌가. 한글도 자꾸 쓰지 않으면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래서, 한글이 가진 정서를 최대한 담으려고 애쓴다.”
“내 기록들이 사라지는 건 괜찮지만 우리가 힘들게 지켜온 기록들이 사라지면 안되지 않나. 불필요한 외국어, 외래어 등으로 우리말이 사라지고 있다. 우리 스튜디오에서는 포스트잇을 붙임장, A, B 방이 아닌 ㄱ, ㄴ방이라 칭하며 고유 한글을 사용하고 있다. 처음에는 다들 어색했지만, 계속 쓰다 보니 지금은 자연스럽다. 현재 MBC와 함께 ‘우리말 바로 쓰기’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우리말로 쓰여진 작품을 만들 수 있어 뿌듯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명감을 갖거나, 큰 의미를 두지는 않는다. 그저 내 위치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다.”
외래어나 외국어를 대체할 수 있는 적절한 우리말을 찾는 게 힘들 수 있어 무작정 그 사용을 지양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 다만 안재훈 감독이 그랬듯, 한번쯤 우리말로 표현해보려는 작은 노력을 해보는 건 어떨까?
안재훈 감독은 ‘메밀꽃 필 무렵’(이효석) ‘운수 좋은 날’(현진건) ‘봄봄’(김유정) ‘소나기’(황순원)와 같은 한국의 대표적인 단편소설들을 애니메이션으로 옮겨왔다. 그는 어떤 기준을 갖고 원작을 선정할까? “여러 종류의 원작을 담으려 애쓰지만, 그 중에서도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졌지만 교과서에서 사라져 가고 있는 작품들 위주로 애니메이션화 한다. 문학은 세대 간의 소통창구 역할을 하지 않나. 세대 차이 없이 누구나 편하게 ‘소나기’를 주제로 대화할 수 있다.”
사라져 가고 있는 것들의 가치를 지켜 나가고 있는 안재훈 감독이지만 시대에 대한 고증과 이를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하는 것에 대해 나름의 고민이 있었다고 토로했다. “‘무녀도’에서 욱이가 불국사를 떠나는 장면이 있었다. 1920-1930년대 불국사는 사실 많이 훼손되었다. 훼손된 불국사를 그리는 게 우리 문화를 홀대하는 것 같아 후대에 재건된 것을 그릴까 고민이 많았다. 그런데 수천 년간 이어져 온 서양 고전의 뿌리이자 상상력의 원천이 된 그리스 로마 신화를 보면 옛 것을 인정하되 그 속에서 새로운 것들을 추구하고 있지 않나. 그 흐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이 맞는 것이다. 옛 것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 자체로도 의미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10만 장의 종이에 원작동화를 직접 그렸던 ‘소중한 날의 꿈’은 기획부터 제작까지 10여년의 세월이 걸렸다고 한다. 이 역작은 그에게 ‘소중한 인연들’을 안겨줬다. “’소중한 날의 꿈’ 이후 신기하게 세계 곳곳에서 연락이 많이 왔고, 덕분에 레바논, 호주, 인도, 독일 등 다양한 국가의 스태프들과 호흡을 맞출 수 있었다. 레바논 출신 패트릭 스페르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2년 전부터 자기 그림을 메일로 계속 보내오다가 스튜디오로 직접 와 같이 일하게 된 경우도 있다. 그들의 도움을 받은 적도 있다. ‘메밀꽃 필 무렵’ 때 투박한 그림체를 세련된 그림체로 바꿀 수 있던 것은 외국인 친구들의 공이 컸다.”
“담뱃잎 본 적 있나요?” 안재훈 감독은 사무실 옆 마당을 가리키며 물었다. 스태프들이 ‘한번도 보지 못했다’고 하길래 충청도에서 직접 공수해왔다고 한다. 대화의 대부분이 스태프 얘기일 정도로 안 감독의 삶에는 스태프들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예전에는 내가 대표로서 뭔가 대단한 걸 보여줘야만 하고, 그들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스태프들과 같이 성장한다는 느낌이 더 크다. 개인 창작도 중요하지만 서로 호흡함으로써 진정한 창작자가 된다고 생각한다. 이 친구들을 보며 세대가 많이 바뀌었다는 것을 느낀다. 수동적으로 배우려고 하기보다는 ‘제가 한번 해볼게요’라던지, ‘요즘 20대는 그렇게 생각 안해요’라며 적극적으로 자기 생각을 표현할 줄 안다. 서로 의견이 맞지 않을 때는 ‘좋은 게 좋은 거지’라며 어느정도 넘어가는 게 아니라 감정의 선을 지키되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면서 타협점을 찾으려 한다. 이들은 나에게 재미난 연구대상이기도 하다. 메신저를 통해 그들이 주고받는 격 없는 대화를 보고 있으면 오만가지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어 너무 재미있다.”
안재훈 감독은 기존에 주로 다뤘던 근대적 배경에서 넘어와 현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을 준비하고 있다. 안 감독은 ‘살아오름:천년의 동행’과 ‘아가미’ 이 두 작품 모두 일상에서 느꼈던 감정에서 시작됐다고 말했다. 안 감독은 주변의 것들에 감정을 이입하고 그만의 방식으로 새로이 창조한다. “지병을 앓다 세상을 떠난 분의 장례식에서 돌아오는 길에 덕수궁 뒤 정동길을 걷게 됐다. 정동길에 큰 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그날따라 너무 마음 한 켠이 아렸다. 반은 썩은 그 나무가 저렇게 견뎌내고 살아내고 있다는 게 뭉클했다. 그 날 ‘살아오름:천년의 동행’이란 작품이 떠올랐다.”
“‘살아오름:천년의 동행’ 이후로 그만하려고 했는데 꼭 해보고 싶은 작품이 생겼다. 삶의 막다른 길에 몰린 아버지가 아들을 안고 호수에 뛰어들었다. 아버지는 죽음을 맞지만 아들은 생존에 대한 본능으로 생긴 ‘아가미’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어쩔 수 없이 현실에서 발버둥치면서도, 자신이 그리는 이상을 향해 마음껏 헤엄쳐 나가기를 꿈꾸는 우리의 삶과 닮았다.”
2011년 안재훈 감독은 ‘소중한 날의 꿈’으로 안시애니메이션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했고, 2020년 ‘무녀도’가 ‘애니메이션계의 칸’으로 불리는 프랑스 안시영화제에서 장편경쟁 콩트르샹 부문 심사위원특별상을 수상했다. 한국의 장편애니메이션이 안시영화제에서 수상을 한 건 2004년 ‘오세암’ 이후 16년 만이다. 안 감독은 한국 애니메이션 산업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기회가 주어졌을 때 그 기회를 잡으려면 그만한 자본과 사람이 필요하다. 감독들이 세계를 경험할 일이 없었던 한국 애니메이션은 20여년 동안 침체기를 겪었다. 그 사이, 미국과 일본은 탄탄한 자본과 특유의 장인정신으로 세상을 향해 발돋움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일본과 미국은 기회를 잡았다. 한 세대의 정체성 형성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건 그 세대가 공유하는 기억이다. 지금의 부모 세대들은 어린 시절 디즈니 등 외국 애니메이션을 보며 자라 왔다. 자연히 그들이 주입시킨 가치관과 사고방식에 길들여졌을 것이다. 그 아이들이 부모가 되어 자식들에게도 같은 걸 보여준다. 우리 정서가 깃든 고유의 애니메이션을 보고 느낄 수 있는 세포(DNA)가 없는 것이다. ‘연필로 명상하기’는 한국 단편작품뿐만 아니라 ‘살아오름’처럼 우리가 놓치고 있는 가치를 공유하려 한다. 한국의 성장과정에서 독재, 산업화, 민주화 등 우리가 겪어 온 것들을 이야기로 기록하고 싶다. 다른 나라는 경험하지 못한 우리의 것들을 우리만의 시선으로 남겨놓고 싶다.”
gu rol ri ga.
ann gam dok nim jar saeng geo DD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