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올림픽 폐막, 다시 유성룡의 ‘징비록’을 꺼내든 까닭

도쿄올림픽 폐막식 <사진 연합>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도쿄올림픽이 보름간의 일정을 마치고 어제(8일) 폐막했다. 코로나19로 1년 연기된 끝에 치러진 이번 행사에서 우리는 이웃 일본의 저력과 문제점을 다시 살펴볼 수 있었다. 일본의 장점은 배우고 단점은 멀리하여 교훈으로 삼았으면 하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400년 남짓 전, 서애 유성룡의 <징비록>을 다시 떠올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징비록>(懲毖錄)은 유성룡이 임진왜란 때의 상황을 기록한 자료다. ‘징비’는 고전 <시경>(詩經)에 나오는 “스스로를 미리 징계해서 후환을 경계한다”는 의미다.

방비를 하지 못하여 전 국토가 불에 타버린 참혹했던 임진왜란의 경험을 교훈 삼아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경계하자는 뜻에서 책의 제목으로 사용됐다. 이 책은 1599년 2월 집필하기 시작하여 1604년에 마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필사본 <징비록>은 조수익이 경상도 관찰사로 재임하고 있을 때 서애 손자의 요청으로 1647년(인조 25)에 16권 7책으로 간행했다.

임진왜란 이전의 조선과 일본의 관계, 명나라의 지원병 파견 및 조선 수군의 제해권(制海權) 장악 관련 전황 등이 기록되어 있다. 징비록에는 또 조정 내의 분열, 임금과 조정에 대한 백성들의 원망과 불신, 무사안일로 일관했던 상당수 관료와 군인들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당시 조선의 전쟁준비 소홀과 그로 인해 유발된 참담한 결과를 묘사했다. <징비록>은 1969년 11월 7일 국보 제132호로 지정되었다. 징비록에서는 부산 첨사 정발이 절영도로 사냥을 나갔다가 일본군이 바다를 메우며 몰려오자 부산성으로 달아난 사실과 일본군이 뒤따라와 성을 함락시킨 것 등이 기록돼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지방행정관이 일본의 공격으로부터 관문인 부산을 방비해야 할 필요성을 조정에 보고했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있던 중앙의 고급관료들이 조선군이 일본군과의 첫 전투인 부산성 전투에서 참패하고 전멸당한 책임을 지방 행정관에게 뒤집어 씌운 것이라는 견해도 제시되고 있다.

우리가 역사를 돌아보는 이유는 다가올 미래를 알기 위함이다. 함석헌 선생은 역사에 대해 “한 사람이 잘못한 것은 모든 사람이 물어야 하고, 한 시대의 실패는 다음 시대가 회복할 책임을 지는 것”이라고 명쾌하게 정리했다.

서애 유성룡의 <징비록>

<징비록>을 읽어 본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더 놀란 것은 오래 전 일본을 방문했을 때, 책방에서 <징비록>을 발견한 사실이다. 일본에서 <징비록>이 1647년 간행돼 에도시대에 이미 지식인들 사이에 베스트셀러였다고 한다. 읽어야 할 사람은 읽지 않고, 경계의 대상인 일본인들이 읽었다는 사실에 아연실색 하고 말았다. 우리가 임진왜란, 병자호란, 그리고 일제 강점기라는 뼈아픈 역사를 왜 반복하였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역사의 교훈을 잊으면 수모의 역사가 또다시 되풀이될 수 있다.

<징비록>을 다시 읽어야겠다. 지금 나라꼴을 보면 극도로 어려워질 징조가 보이는 것 같다. 여야가 대선에만 몰두해 나라살림에 관심 없고 죽기 살기 싸움만 하는 걸 보면 더욱 징비록의 깨우침이 절실히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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