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판 오분전’은 개(犬)와 상관 없습니다”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4차 대유행’의 기세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27일 현재 한국 총 확진자는 19만1531명으로 늘었다. 이날 신규확진자도 1365명에 이른다. 그런데 방역 전선을 위태롭게 하는 크고 작은 일탈이 전국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그야말로 ‘개판오분전’(開板五分前)이다.
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풀 파티’라는 생소한 말이 나왔다. 야외 수영장이 딸린 강원도 양양군의 한 카페에서 ‘노 마스크’ 인파가 가득한 사진이 올라와 논란이 된 것이다. 조회수 50만회 이상을 기록한 해당 글에서 글쓴이는 “수도권과 강원도 강릉이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로 막히면서 사람들이 양양군으로 ‘유흥원정’을 떠나고 있다”고 적었다.
보도에 따르면, 양양지역 내 유명 리조트·술집·카페 등을 찾은 젊은이들이 수영장(풀)에 발을 담근 채 남녀 수십명이 마스크 벗고, 술 마시며 춤 추는 모습을 전했다. 이들은 방역 일선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 의료진의 모습은 안중에 들어오지도 않는 모양이다.
그뿐 아니다. 일부 종교인들이 모여 앉아 술판을 벌이고, 이를 제지해야할 경찰관들이 입에 담지 못할 일탈을 벌이는 장면도 나오고 있다. 또 노동자들이 원주까지 달려가 이 난국에 개판을 벌이는 것에 차마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개판’의 국어대사전 풀이는 “상태, 행동 따위가 사리에 어긋나 온당치 못하거나 무질서하고 난잡한 것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개판이 되었다’ ‘술 마시고 개판을 쳤다’ 등의 예문이 보인다. 이 말은 일반적으로 개(犬)와 관련을 가지는 것으로 이해되어 개가 많이 있는 모양을 지칭하는 것처럼 쓰이고 있다.
그러나 이 말은 개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표현이라는 점에서 원래의 뜻을 볼 필요가 있다. 개판은 한자로는 ‘開板’(뚜껑을 열다)으로 “밥솥의 뚜껑을 연다”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밥솥 뚜껑을 여는 것과 무질서하고, 난잡한 상태가 어떤 관련이 있기에 이런 표현이 등장하여 지금까지 널리 쓰이고 있는 것일까?
70년 전 한국전쟁으로 거슬러 올라가 본다.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발발한 한국전쟁은 북쪽이 우위를 점하면서 낙동강 전선까지 하염없이 밀려 내려갔다. 대구 부근의 다부동 전투에서는 쌍방의 병사들이 수없이 죽어 나가면서 전선은 정체되어 움직이지를 않았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피난민이 대구와 부산 등으로 몰려들면서 아수라장을 이루었는데, 여기에서 가장 큰 문제가 밥을 먹는 일이었다. 모든 면에서 물자가 부족했던 시절이었던 데다가 전쟁까지 터져 피난민들은 끼니 해결에 목숨을 걸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되자 군부대나 배급단체 등에서 점심을 제공하기에 이르렀다. 낮 12시를 점심시간으로 하여 밥을 짓고 배식했다. 이에 점심시간 오래전부터 피난민들이 몰려들어 여기저기 흩어져서 이제나저제나 기다리는 상태가 매일 계속되었다.
이때만 해도 큰 밥솥이 많지 않았는데, 일본인들이 쓰던 무쇠 밥솥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그런데 일본식 무쇠 밥솥의 특징은 솥뚜껑이 무쇠가 아니라 나무로 됐다. 밥이 다 되면 ‘나무판 뚜껑’을 열어야 하는데, 이것을 ‘개판’(開板)이라 한 것이다.
밥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완성되는 시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뚜껑 열기 5분 전이 되면 피난민들에게 밥 먹을 시간을 알리는 의식을 거행했다. 밥뚜껑을 열기 5분 전이 되면, 한 사람이 높은 곳에 올라 꽹과리를 크게 치면서 “개판 오분전이오!”라고 외친다. 이 소리를 신호로 하여 사방에서 엄청난 사람들이 줄을 서기 위해 몰려든다.
서로 앞에 서려고 밀치기도 하고, 새치기하는 사람을 잡아내다가 싸우기도 하면서, 난장판으로 되는 상태가 매일매일 이어지는 것이었다. 이런 일이 하루 이틀도 아니고 몇 달 계속되다 보니 ‘개판 오분 전’이라는 말이 일상언어가 됐다.
‘개판이다’ 혹은 ‘개판’ 등의 축약 표현이 나온 유래다. 그런데 문제는 원래 표현이 줄어들다 보니 본 의미를 유추하기 어렵게 되면서 ‘개(開)’가 ‘견(犬)’으로 인식되기 시작했고, 지금은 이 단어를 검색하면 거의 ‘개(犬)’와 관련된 것으로 되어 있다.
문제는 이 ‘개판’이 더 목불인견(目不忍見)인 곳이 있다. 정치권이 대통령 선거가 다가오자 서로 물고 뜯는 개판을 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개판을 치고도 과연 대통령이 되면 국민들이 ‘개판대통령’을 과연 나라의 최고지도자로 받들어 모실 수 있을까?
정치권을 비롯해 노동자와 종교인, 일반 국민 모두가 이 어려운 난국을 슬기롭게 넘기면 좋겠다. 연일 맹위를 떨치는 코로나19와 역대급 무더위로 지친 국민들 짜증이 폭발직전이다. 모두 자제하자. 모처럼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대한민국의 자부심 누가 지켜야 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