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 김 美 복지부 부차관보 “한국전 참전용사는 내 존재이유”
7월 27일은 1950년 유엔군이 한국전에 참전을 결정한 날이자, 1953년 한국전 휴전협정이 조인된 날입니다. 최근 미국 보건복지부 부차관보에 임명된 한나 김은 한국전 참전용사들의 숭고한 정신을 기억하고 계승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책무라며 ‘리멤버 727’을 2008년 설립해 이를 실천해왔습니다. <아시아엔>은 한나 김이 자신의 참전용사 관련 활동을 소개한 글을 독자들과 공유합니다. -편집자
[아시아엔=한나 김 미국 보건복지부 부차관보, ‘리멤버 727’ 대표, 美 참전용사기념재단 대표] “기나긴 인생 속 단 몇 달의 시간은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질까? 그분들이 목숨 바쳐서 싸운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필자는 12년 전 교통사고를 당해 목숨을 잃을 뻔했다. 그 이후로 매일매일 나에게 ‘보너스 시간’이 주어졌다고 생각하며 열심히 살고 있다.
링글 하원의원 수석보좌관직을 마친 뒤, 필자는 세계 곳곳의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에게 감사를 전하고 인터뷰를 하기 위해 모든 경험과 인생을 쏟아 붓기 시작했다.
그분들을 만나고 집에 돌아올 때마다 몸과 맘 모두 피곤했지만 내가 만난 ‘할아버지’들의 모습은 절대로 잊을 수 없었다. 콜롬비아에 갔을 때, 필자는 한국전쟁 당시 얼굴에 총을 맞은 참전용사를 만났다. 그분은 상처가 너무 심해 스무 차례 넘는 봉합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 가서는 3년 동안 포로로 잡혀 심한 고문을 당한 전투기 조종사를 만났다. 살기 위해서 자신의 머리에 있던 이를 먹기도 했다고 한다. 필자는 상처로 가득한 그분의 손에 입맞춤을 해드렸다.
에티오피아에 갔을 때 만난 참전용사들 중 한 분은 자신의 전우 이야기를 말해주셨다. 그분은 들판에서 부상당한 한국군 병사를 부축해주다가 그만 총에 맞아 돌아가셨다고 한다.
특히 이탈리아에 갔을 때 만났던 의사 선생님 기억이 생생하다. 그분은 이탈리아의 마지막 한국전쟁 참전 생존자이시다. 그는 필자에게 한국전쟁 당시 쓴, 70년도 더 된 일기장을 전해주셨다.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은 필자를 마치 손녀딸처럼 따뜻하게 대해주셨다. 그분들께 고마움과 사랑을 느꼈다. 그들과 함께했던 기억은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해외의 참전용사들을 만나고 미국에 돌아온 필자는 다시 짐을 싸고 자동차 여행길에 올랐다. 이번에는 미국 50개주에 걸쳐 100곳에 달하는 한국전쟁기념관을 방문하기로 했다. 그 이유는 수도 워싱턴 DC의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관’(National Korean War Memorial)과 ‘추모의 벽’(Wall of Remembrance) 건립기금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3개월간 어디가 끝인지 모르는 장거리 운전과 여러 지역을 옮겨다니는 통에 잠도 제대로 못 잤지만, 이 시기는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
필자는 산 넘고 물 건너 미국 전역을 다니며 1000명 넘는 한국전쟁 참전용사들과 만났다. 그리곤 그들과 따뜻한 포옹과 입맞춤을 나누었다. 대부분 팔순을 훌쩍 넘기셨지만, 필자가 미국 방방곡곡의 한국전쟁기념관을 찾아간다는 소식을 듣고 몇 시간 걸리는 거리를 직접 운전해 환영해주신 분들도 계셨다.
그분들께선 나의 감사인사가 큰 의미로 다가온 듯하다. 이는 자신들의 한국전쟁 참전이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흘러도 잊혀질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심지어 몇몇 분들은 “나에게 ‘한국전쟁에 참전했냐’고 물은 사람은 당신이 처음”이라고 했다.
우리는 같이 울고 웃으면서 한국전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고, 당시 전사한 분들을 추모하는 꽃을 올리기도 했다.
필자는 또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수년간 고통받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참전용사의 아들 켄 버클스(Ken Buckles)처럼 아버지 같은 용사분들을 도와주는 사람들도 만났다. 특히 켄 버클스는 고등학교 풋볼선수단 코치 출신으로, 오리건주에 참전용사단체(Remembering America’s Heroes)를 세워 정신건강 회복 프로그램을 23년째 운영하고 있다.
또 참전용사 추모 모터사이클 모임에 가입해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를 타고 캘리포니아와 미시시피주에 있는 ‘한국전쟁기념고속도로’(Korean War Memorial Highway)를 질주하는 특별한 경험도 했다.
미국 50번째주인 하와이에 방문했을 때, 나는 놀라운 장면을 목격했다. 바로 북한에서 발견된 전쟁포로 및 실종자 유해가 호놀룰루의 국방부 산하 ‘전쟁포로 및 실종자확인국’(Defense POW/MIA Accounting Agency) 연구소로 송환된 것이다. 아직 북한땅에 남은 참전용사 5500명의 유해가 하루빨리 본국으로 돌아오기를 희망한다. 나는 이곳에서 전쟁 중 실종된 아버지, 형제, 또는 삼촌을 기억하며 슬픔에 잠긴 많은 가족들을 만났다. 전쟁으로 가족과 헤어져 뼈저린 그리움에 슬픔에 젖은 한국의 이산가족을 보는 것 같았다.
유해가 송환될 때까지 우리는 곁에 있는 참전용사들을 기억하고 감사해야 한다. 참전용사는 우리의 기억에서 스러져가는 늙은 군인이 아니다. 그들은 꽃다운 나이에 목숨을 바쳐 우리 모두를 지키려던 우리의 할아버지이자 진정한 영웅이다.
이것이 내가 그들을 직접 만나고, 무릎 꿇어 감사하며, 큰절을 올리는 이유다. 한국 사람들을 대신해 겸손하고 진심어린 감사인사를 전하기 위해서다. 그분들이 70년 전에 대한민국을 위해 싸우지 않았더라면, 우린 어쩌면 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한국전쟁은 오랫동안 ‘잊혀진 전쟁’으로 알려져 왔다. 하지만 세계 곳곳에서 한국을 도와주러 온 참전용사 4만1000명이 참혹한 전쟁으로 목숨을 잃었다.
작년 코로나19 확산으로 봉쇄조치가 내려졌을 때, 필자는 그동안 방문했던 한국전쟁기념관 180곳의 사진과 참전용사들과의 만남을 담은 400개 넘는 동영상을 볼 수 있는 웹사이트 개설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아시아엔> 독자들께선 그들에게 감사를 표하기 위해 먼 곳까지 오가는 수고를 하지 않으셔도 된다. 대신 웹사이트를 방문해 응원의 댓글을 다는 것으로 존경을 표시하면 된다. 혹은 근처에 살고 계시는 참전용사를 찾아가서 고맙다는 인사를 전해도 된다. 참전용사들과 함께 다음의 말도 항상 기억해 주시길 바란다. “자유는 거저 얻어지지 않는다.”(Freedom is not free). 번역 김동연 아시아엔 미주 통신원
WHY I HONOR KOREAN WAR VETERANS GRANDPAS
by Hannah Kim, founder of Remember727 and former chief of staff in the US Congress, Ambassadress of Korean War Veterans Memorial Foundation
“What is a few months out of my life? It’s nothing compared to what they’ve sacrificed.” Ever since I almost died in a car accident 12 years ago, I have considered each day as a bonus day, anyway.
After working as chief of staff and communications director for a US Congressman, I put my career and life on hold to thank and interview veterans in every country that participated in the Korean War.
I had just returned home, physically and emotionally overwhelmed. I couldn’t forget the “Grandpas” whom I had met: In Colombia, I met a veteran who got shot in the face during the war and had more than 20 reconstructive surgeries.
In South Africa, I kissed the frost-bitten hands of a pilot who suffered extreme torture as a prisoner-of-war for almost three years and had to even eat his own lice. In Ethiopia, one of the veterans told me about his friend who was shot to death while carrying an injured Korean soldier on the field.
I fondly remember meeting the doctor who was not only the last remaining veteran in Italy but also gave me the original copy of his diary from the war.
They all embraced me like their real granddaughter. How could I ever forget? I had fallen in love with my Grandpas.
So I packed my bags again and got behind the wheel, this time to trek across all 50 states to visit almost 100 Korean War Memorials. I also had a goal of raising awareness and funds for the Wall of Remembrance as an addition to the National Korean War Memorial in Washington, D.C.
Despite the endless driving, sleepless nights and living out of a suitcase for more than three months, it turned out to be the most precious experience in my life. From the mountains to the prairies, I got to hug and kiss more than 1,000 Korean War veterans, most of whom were in their late 80s, some who drove for hours just to welcome me to the memorials when I was visiting across the country.
It meant so much to them to know that I wanted to thank them, that they weren’t forgotten. Some told me that it was the first time anyone ever asked them about their service in Korea.
Together, we laughed and cried as we recounted their wartime memories and laid a wreath in remembrance of their fallen comrades.
I also met inspiring veterans advocates like Ken Buckles, son of a Korean War veteran who took his own life after years of suffering from PTSD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A former high school football coach, Ken founded Remembering America’s Heroes, and for the past 23 years have brought veterans to schools across Oregon so they can find healing through sharing their stories with the students.On two occasions, I joined motorcycle groups that ride to support veterans and found myself riding on a Harley along the Korean War Memorial Highway in Santa Paula, California and Meridian, Mississippi.
During my visit to Hawaii, I was shaken to actually see with my own eyes. The remains of 55 POW/MIAs recently repatriated from North Korea to the Defense POW/MIA Accounting Agency (DPAA) laboratory in Honolulu.
I’m hoping we can bring back every single one of the 5,500 POW/MIA remains still in North Korea. I’ve met many families who are mourning for their missing fathers, brothers and uncles, just like there are many divided Korean families who are wishing to see their loved ones separated by war.
Until then, the very least we could do is to remember them and to thank the veterans who are still with us. Our veterans are not just old soldiers who are fading away. They are our Grandpas and heroes who at the age of 18, even as young as 15, risked their lives ? for all of us. That is why at every stop, I got on my knees and bowed?the Korean way?to express my humble and sincere gratitude on behalf of all Koreans. Because none of us would be here if they didn’t fight in Korea 70 years ago. For too long, the Korean War was referred to as the “Forgotten War” yet almost 41,000 people from all around the world fought and died in this bloody war.
Last year during the COVID-19 lockdown, I poured my heart and soul into creating a website featuring photos of 180 Korean War Memorials I visited across a total of 30 countries in six continents, and almost 400 videos with veterans I met.
You don’t have to travel any distance like me to thank these veterans. You can visit the website and pay tribute by leaving comments behind. Or simply find a veteran near you and just say thank you. Because freedom is not fr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