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브나라 이호순·이두이 부부 “자연은 하루도 같은 날이 없어 질리지 않아요”

허브나라 책자 <사진=허브나라 웹사이트>

보통 관광지에 도착하면 책자부터 보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책자 하나로 관광지를 둘러볼 수 있으니까. 되려 책자를 보고 구경하고 싶은 마음이 사그라지기도 해 책자는 관광지의 얼굴이라 생각한다. 강원도 평창에 위치한 허브나라 책자는 홍보대사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책자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흔히 볼 수 있는 농원으로 생각했다. 책자를 펼쳐보니 다양한 테마정원과 문화공간, 통나무집까지, ‘허브나라’ 이름처럼 허브로 가득한 세상이 있었다.

100여종의 허브와 130여종의 꽃이 철철이 피어나는 이곳에는 4계절의 여신상이 있다. 봄의 상징 꽃을 들고 있는 여인, 여름의 상징 포도를 들고 있는 여인, 가을의 상징 귀리를 들고 있는 여인, 겨울의 상징 나무를 들고 있는 여인. 그 옆 중앙의 분수대에는 탬버린, 만돌린, 심벌즈, 피리를 연주하는 아기 음악가들까지…그리스 로마 신들이 사는 곳이 있다면 바로 이곳 허브나라가 아닐까.

   4계절 여인상과 아기음악가들 <사진=허브나라 웹사이트>

6월17일 기자는 허브나라를 방문했다.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배경인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에 위치한 허브나라는 1993년 개장해 한국에서는 최초로 허브를 테마로 한 관광농원이다. 허브나라에 자연만 있느냐 그것도 아니다. 낭만도 가득하다. 이문세가 직접 이름을 지을 정도로 특별한 애정을 담은 곳 별빛무대 야외공연장에서는, 코로나19 이전까지만 해도 가수 이문세, 피아니스트 이루마, 노영심 등의 음악을 들으며 밤하늘의 별빛에 취할 수 있었다고 한다.

   야외공연장 별빛무대 <사진=허브나라 웹사이트>

이호순, 이두이 부부가 운영하는 허브나라의 한 상은 직접 재배한 채소들로 가득하다. 채소로 가득한 점심을 누린 후 허브티를 마시며 안주인 이두이 원장에게 우리가 몰랐던 허브 이야기와 허브나라 한 상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허브하면 로즈마리, 라벤더 등 향기나는 식물로 알고 있는데 허브는 향초, 약초, 향신료, 향미 채소를 아우르는 총칭이다. 민들레, 더덕, 인삼 등 인체에 이로운 모든 것이 허브다. 특유의 강한 향 때문에 주인공은 될 수 없지만 음식에 향을 입히기에는 최고다. 요리를 개발하면서 우리나라만큼 허브를 많이 먹고 즐기는 나라도 없다는 걸 알았다. 우리는 일상에서 마늘, 생강, 부추, 깻잎 등 다양한 허브를 먹고 있다는 걸 깨닫고 한식과 접목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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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여파로 달라진 점이 있냐 물으니 “코로나가 반찬을 만들어 판매하도록 아이디어를 가져다줬다. 두이찬(반찬가게)에서 반찬을 판매한다. 이곳 평창에서 나오는 브로컬리, 양배추, 오이 등을 장아찌로 담가 반찬으로 판매하기 시작했다”며 찾는 사람이 많아 손이 달릴 정도라고 한다.

쉰 되면 시골 가자고 약속했던 부부는 1993년 귀농해 28번의 평창의 사계절을 보냈다. 이들 부부의 귀농 초창기는 어땠을까? “허브 연구, 정원 관리 등 허브나라를 개척할 당시에는 4시간도 못 잤다. <여성동아>에 처음 허브나라가 소개됐고, 이후 KBS ‘6시 내고향’ 등에 나와 이름을 알렸다. 허브를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곳이 많지 않았기에 2000년 초반에는 10년간 어린이날 같은 때는 하루 1만명이 올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계절에 따라 바뀌는 농원이다 보니 꽃을 보러 온 손님들에게 다른 볼거리라도 제공해야겠다는 생각에 조각품을 들여오고, 그림도 걸어보고, 온실재배도 해보며 계절에 맞춰 여러 방법으로 손님을 유치하려고 애썼다. 많은 시도를 해봤지만, 자연의 순리를 따르는 것이 제일 중요했다. 가을에 꽃들이 덜하면 어떠한가. 단풍이나 가을하늘처럼 가을에만 볼 수 있는 아름다운 풍경들이 있는데… 예쁜 꽃들을 찾기 바빠 그런 자연을 눈에 담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다. 그래서 ‘밑을 보지 말고 위를 보세요’ 라는 팻말까지 붙이기도 했다.”

허브나라의 부부는 우리 가족 머리와 손에서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했다. 미술하는 딸 ‘미순이’ 이지인 씨는 서울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한 후 대를 이어 부모의 세대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허브나라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지인씨는 “엄마 아빠가 허브나라 씨앗을 뿌린 건 성공했지만, 지속가능하기 위해선 새로운 경영방식이 필요해 구원투수로 나선 셈”이라고 했다. 입구 간판부터, 페인팅, 글씨 등 전반적인 인테리어에 그의 그림 실력이 묻어났다. “딸에게 넘기기 불안할 때도 있었는데 이제는 믿고 맡겨요”라는 부부의 말이 떠올랐다. 공돌이 아빠, 농순이 엄마, 미순이 딸 삼박자가 잘 맞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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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ck to the Nature!’ 허브나라는 자연을 활용한 6차 산업이라는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있다. 농∙림∙수산업(1차)부터 제조∙가공업(2차), 그리고 판매, 서비스업(3차)의 융∙복합을 통해 새로운 상품과 시장을 창출하고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킨다는 것이 골자다. 평창에서 정착한지 28년, 부부는 지역사회에 기여하겠다는 나름의 다짐도 지키고 있다. 평창 관내 중고생에게 초기부터 장학금을 지원해 왔다. 또한 평창군, 이효석문학선양회, 일본 도야마현 도가촌, 일본의 전면협(全麵協, 일본전국면류문화지역간교류협의회)과 자매결연을 맺어 가교 역할을 자임해 왔다. “귀농 후 지역 사회에 스며들기까지 여러 차례 고비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지역주민들과 함께 허브나라를 만들어가고 있다. 봉평다운 봉평을 만들고, 다문화 가족도 지원해 농촌의 미래를 바로 세우고 싶다”고 말했다. 허브(Herb)나라는 평창의 6차 산업과 문화 교류의 허브(Hub) 역할을 하고 있다.

농원을 둘러보는 데 이두이 원장에 벌 한 마리가 날라왔다. 보통 침에 쏘일까 피하기 마련인데 이두이 원장은 “저 벌들 좀 봐, 꽃 향기를 맡고 있어”라며 애정 어린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자연이란 것은 하루도 같은 날이 없어 질리지가 않는다”며 마치 엄마가 자식을 어루만지듯 꽃들을 매만지며 수백 종의 꽃들을 하나하나 소개했다. “시간에 따라, 기후에 따라, 기온에 따라, 햇빛의 양에 따라 자연의 모습이 다르니 질릴 새가 없다. 식물들도 자연의 흐름을 따라간다. 씨앗일 때부터, 꽃망울을 맺고, 활짝 만개할 때 다 다르다. 그런데 사람들은 활짝 핀 꽃만 찾는다. 어떻게 꽃이 늘 피어 있나. 지는 시기, 피는 시기 다 따로 있는데 그 흐름을 이해해야 한다. 이 곳을 찾아오시는 분들이 시든 꽃도 사랑해 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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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이 원장은 자신을 마귀할멈이라고도 소개했다. “농사라는 것은 항상 시기가 있다. 시기가 중요하고 날씨에 민감하다 보니 실기(失氣)하여 실기(失機)할 때가 많다. 때를 놓쳐 그해 농사를 다 망치게 되는 것이다. 모든 식자재를 낭비하지 않기 위해, 새벽 5시부터 긴 장화를 신고 농부복으로 완전 무장해 농장으로 내려와 직원들에게 몸을 부지런히 움직이라고 채근한다.” 직원들을 달달 볶는 말과 다르게 직원들이 일할 때도 이두이 원장의 손발은 가만 있지 않았다. 그리스 로마 신화 숲의 정령 드리아데스(Driades)가 떠올랐다.

“숲 속의 나무들은 저마다 개성이 넘치면서도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 조화를 깨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사람이 모여 사는 사회도 이런 숲의 질서를 배우고 익힌다면 넘치거나 모자람이 없지 않을까? 나무를 함부로 찍어 내거나 베어 버리면 자신의 한 부분도 베인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잘 모르는 것 같다. 지붕 한쪽 끝을 오려 내서라도 나무를 지켰고 데크 가운데에 끼어 있는 나무도 데크에 네모난 구멍을 뚫어 살렸다. 존경하는 법정스님에게 ‘자연만물을 귀히 여기는 자네는 시골에서, 산에서 살 자격이 있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그녀는 마귀할멈이 아니었다. 숲의 조화를 볼 수 있는 눈, 나무의 혼을 볼 수 있는 눈이 있는 드리아데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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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중에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 있다. 동이 트고, 하늘이 열리고 하루가 열리는 그 시간에 산책하는 것이다. 그 시간만큼은 온전히 나만의 허브나라다. 조용히 홀로 걷다 보면 자연 속에서 나만의 공간을 가지고 있다는 게 참으로 행복하다는 것을 느낀다. 허브나라가 다른 이들에게도 안식처가 되었으면 좋겠다. 사회적 출세와 부에 얽매인 삶이 아닌 마음 놓고 자유롭게 몸을 쉬게 하는 공간말이다.”

이호순, 이두이 부부는 여행 덕분에 지금의 허브나라가 있다고 했다. “허브나라는 성수기와 비수기가 뚜렷하다. 성수기는 5월부터 9월, 비수기는 11월부터 4월 중순까지다. 그 사이 사이에 여행 많이 다녔다. 시간과 여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배우기 위해서다. 보고 듣지 않으면 상상력에는 한계가 있다. 프랑스, 터키, 캐나다 등 세계 여러가지 정원을 다 돌아다니면서 영감을 얻었다. 셰익스피어는 세계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었다. 영국을 가보진 않았지만 셰익스피어 가든을 만들 수 있었던 이유다. 터키를 여행할 적에는, 그 곳에서의 기억이 너무 좋아 특산품들을 구입해 터키박물관까지 만들었다.” 부부는 허브나라의 터키박물관이 양국을 잇는 작은 문화의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셰익스피어 가든

이호순, 이두이 부부는 세가지를 약속했다고 했다. “내 집 짓기, 자동차 사기 그리고 귀농. 다 이뤘다. 이제는 내 행복 찾기에 몰두하려고 한다. 매일매일 농장일기, 개인일기, 반찬일기와 장부로 하루를 기록해왔다. 최근에는 ‘오늘의 행복 찾기’ 노트를 추가했다.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 하루동안 경험한 감사와 기쁨을 기록하는 것이다. 아마 오늘의 행복은 기자를 만나 즐거운 대화를 한 게 아닐까.”

행복한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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