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 ‘너를 사랑한다’ 강은교

그땐 몰랐다.
빈 의자는 누굴 기다리고 있는 것이라는 것을
의자의 이마가 저렇게 반들반들해진 것을 보게
의자의 다리가 저렇게 흠집 많아진 것을 보게

그땐 그걸 몰랐다
신발들이 저 길을 완성한다는 것을 저 신발의 속가슴을 보게
거무뎅뎅한 그림자 하나 이때껏 거기 쭈그리고 앉아 빛을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게

그땐 몰랐다
사과의 뺨이 저렇게 빨간 것은 바람의 허벅지를 만졌기 때문이라는 것을
꽃 속에 꽃이 있는 줄을 몰랐다
일몰의 새떼들, 일출의 목덜미를 핥고 있는 줄을 몰랐다.

꽃 밖에 꽃이 있는 줄 알았다
일출의 눈초리는 일몰의 눈초리를 흘기고 있는 줄 알았다
시계 속에 시간이 있는 줄 알았다
희망 속에 희망이 있는 줄 알았다

아, 그때는 그걸 몰랐다
희망은 절망의 희망인 것을.
절망의 방에서 나간 희망의 어깻살은
한없이 통통하다는 것을.

너를 사랑한다.

강은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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