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창현의 방북취재기②] 코로나 진정돼 북녘 문 열리면 1착으로 날아가고파

대동강변을 거닐다 마주친 애견을 쓰다듬고 있는 필자

[아시아엔=평양/글·사진 로창현 <뉴스로> 대표기자] 심양에서 평양까지는 항공편으로 1시간 남짓 걸린다. 압록강 상공을 지난다는 방송에 창밖을 내다보았다. 도도히 흐르는 강줄기, 이성계가 회군한 위화도도 보인다. 승무원이 건네주는 <로동신문>을 펼치며 내가 정말 평양에 가는구나 하는 실감이 들었다. 문득 고려항공을 타고 날아가는 내 모습이 통일기러기라도 된 듯싶었다. 같은 겨레가 사는 북녘땅에 왜 남의 나라를 거쳐 이렇게 힘들게 가야하는 걸까, 착잡했다.

이런 감회는 판문점을 방문해 북측 판문각에서 남측 자유의집을 바라봤을 때도 여지없이 밀려왔다. 나의 모습이 마치 초현실영화의 한 장면처럼 느껴졌다. 코앞에 보이는 경계선만 넘으면 내가 살던 일산까지 40~50분이면 가는데 다시 북쪽의 평양으로 두시간을 올라가 비행기를 타고 중국을 거쳐 인천공항으로 와야 하다니···.

미국에 돌아와 주체사상탑 꼭대기에서 촬영한 사진을 보여주니 비교적 최근까지 평양을 방문한 이들도 눈을 휘둥그레 떴다. “평양이 정말 달라졌네요. 밝고 환해졌어요.” 4년전만 해도 동평양 일대는 우중충한 회색 건물이 주를 이뤘는데 지금은 화사한 파스텔톤의 건물들로 가득하다. 아직은 서방세계 같지는 않지만 거리에서 적잖은 사람들, 특히 젊은 여성들의 옷맵시는 이곳이 서울인지 평양인지 잘 구별이 안 간다. 아침 출근길 시내 진입 도로 곳곳에서 정체가 되는 등 교통 혼잡도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첫 방북에서 “요즘 평양은 자고 일어나면 바뀐다”는 안내원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쑥섬에서 만난 60대 낚시꾼도 “매일 매일 달라져요” 하고 거들었다. 대체 얼마나 많이 바뀌길래 그럴까 궁금했다.

3개월만에 다시 간 평양은 정말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우선 여성 교통보안원들이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교통보안원은 격무에 속해 여성들은 시집가면 그만둔다고 한다. 평양의 교통량이 크게 늘면서 업무 하중도 커지다보니 남성들로 대거 교체된 것이다. 최근 들어 엄청나게 늘어난 택시도 20%를 지방으로 돌렸다. 차량2부제도 모자라 일요일 자가용 운행금지령까지 내렸다. 덕분에 요즘 일요일 평양 도로는 십수년 전처럼 한산한 모습이다.

북한 손전화(핸드폰)를 들고 있는 필자


스마트폰 ‘손전화’, 블루투스 이어폰은 ‘귀전화’

1차 방북 때 너나할 것 없이 스마트폰을 들고 다녀 놀랐는데 2차 방북에선 스마트워치 열풍이 불고 있었다. 안내원은 물론 운전수까지 스마트워치를 차고 있다. 스마트폰이 ‘손전화’이듯 귀에 거는 블루투스 이어폰은 ‘귀전화’로 불렀다. 이 모두가 3개월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만약 내가 1차 방북만 하고 말았다면 강연회나 인터뷰에서 케케묵은 이야기를 최신 소식이라고 떠들었을 텐데, 공연히 얼굴이 뜨거워진다.

적어도 계절에 한번 북에 가지 않으면 따라잡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물며 북을 제대로 가보지도 못하고 신빙성 없는 정보를 분석하며 북한전문가 행세를 한다면 언어도단이 아닐까.

평양의 캐리비언 베이로 불리는 문수물놀이장 2층 휴게실에 가면 대형 통유리 앞에 고급소파가 있다. 해설강사가 얼마 전 바로 이 자리에 김정은 위원장이 현지지도를 했다는 얘기를 들려준다. 북의 최고 지도자가 다녀간 곳이라는 얘기에 사진을 찍는데 안내원이 불쑥 말한다. “로 선생, 그 자리에 앉아 보시라요.” “예? 앉아요? 그래도 됩니까?” “아, 의자가 앉으라고 있는 건데 허허···. 사진 찍어줄게요.”

긴가민가 눈치를 보다가 슬그머니 앉았다. 일행이 나를 둘러싼 가운데 안내원이 직접 사진을 찍어준다. “이거 나중에 혼나는 거 아니죠?”라고 했더니 주변 사람들까지 왁자하니 웃음꽃이 핀다.

정말 몰랐다. 북의 ‘최고 존엄’이 앉았던 특별한 자리인 만큼 아무나 앉아선 안 되는 걸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북에서 최고 지도자는 인민들에게 존경과 숭모의 대상이지만 그렇다고 신과 같은 존재는 아니다. 북녘도 똑같이 사람 사는 곳이다. 우리가 대통령이나 유명 정치인, 연예스포츠 스타들의 흔적이 있는 곳에서 기념사진 찍는 것처럼 그들도 똑같은 마음인 듯했다.

며칠 뒤 방문한 평양의 신흥명소 대동강수산물식당에서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앉았던 테이블 좌석이 평양 시민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자리라는 얘기를 들었다. 적어도 일주일전에 예약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다녀와서 이 에피소드를 들려줄 때마다 모두가 놀라워했다. 그만큼 우리가 북한에 대해 고정관념에 빠져 있던 건 아닌가?

코로나로 항공노선 전면 봉쇄···재방북길 어서 열리길

현역 기자로서 북을 최대한 파악해야겠다는 열망에서 2019년 9월 3차방북을 했고, 10월에도 월드컵 남북축구 예선전 취재를 위해 한국기자로는 유일하게 평양에 있었다. 2020년 새해 첫날 김일성광장에서 열리는 대대적인 축하행사 취재차 5차방북에 나섰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비자가 하루 늦게 나온데다 북경~평양 연결편이 나흘 뒤에나 있는 바람에 부득이 방문을 취소하고 1월 25일 음력설날에 맞춰 북녘 풍경을 담아오리라 마음먹었다. 그런데 공교롭게 떠나기 전날 북측이 코로나19사태로 모든 항공노선을 전면 봉쇄하면서 지금껏 대기상태로 있다.

코로나팬데믹이 진정되고 북녘 문이 열리면 1착으로 날아가려 한다. 눈을 감으면 지난 1년간 북녘에서 겪은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대동강변에서 애견과 산책하는 평양시민들, 을밀대의 수묵화 퍼포먼스, 묘향산계곡의 불타는 휘발유 조개구이, 대중목욕탕에서 내 등을 밀어준 청년, 여성 리발사(이발사)에게 머리를 깎던 일, 평양 최초의 장마당 통일시장의 뜨거운 장사열기, 평양시민들과 어울려 영화를 관람한 일, 초경량비행기 타고 평양상공을 날던 것 등 수많은 추억이 뇌리에 남아 있다.

파스텔톤의 동평양 시가지

방문기를 마무리하며 이 말을 꼭 전하고 싶다. 남북 겨레는 차가운 머리보다는 뜨거운 가슴으로 서로를 바라보자는 것이다. 우리는 한 핏줄 한 겨레다. 분단의 아픔을 보듬고 전쟁의 상처를 치유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열린 마음으로 서로를 바라봐야 한다. 분단 놀음일랑 걷어치우자. 남과 북이 어깨동무하고 통일의 길로 쭉 가는 2021년이 되기를 소망해 마지 않는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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