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 ‘인향만리’ 이한동 전 총리의 ‘길고 깊은 인연’
[아시아엔=조성관 <서울이 사랑한 천재들> 등 ‘천재시리즈’ 저자, <주간조선> 편집장 역임] 9일 오후 이한동 전 국무총리 빈소를 다녀왔다.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에게 신임을 받은 정치가. 3김 시대의 거물 정치인 이한동.
내가 그를 취재원으로 처음 만난 건 1990년대 중반이었다. 나는 애송이 티를 겨우 벗어난 기자 였고, 그는 따르는 사람이 많은 정계 실력자였다. 각 언론사마다 그를 전담 취재하는 국회출입기자들이 정해져 있었다. 나는 월간조선과 주간조선 기자로 건이 있을 때마다 그를 취재했다.
건국대병원 장례식장으로 가면서 그와의 인연을 생각했다. 이른 아침 내곡동 집에서 조남숙 여사가 차려준 아침상도 생각났다.
그는 통이 크고 가슴이 넓었다. 술수를 몰랐다. 나의 기자생활 30년 중 23년이 포개진다.
나는 그로부터 참 아낌을 많이 받았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가장 결정적인 건 그가 <천재 시리즈>의 열렬한 애독자였다는 사실이다. 그를 취재한 기자들이 얼마나 많았겠나. 그와의 관계가 깊어진 것은 그가 정치 일선에서 물러난 이후였다.
내가 천재시리즈를 낼때마나 우편으로 보내거나 직접 선물했다. 그때마다 그는 책을 다 읽고 독후감을 내게 전해주었다. 그는 내 한학과 동양고전과 서양사에 해박했다. 내가 언급하지 않은 사건의 전후맥락을 배경 설명으로 이야기하곤 했다. 27년 연장자였지만 그와 어느 정도 대화가 되었다.
그는 내 작업을 처음부터 높이 평가했고 응원했다. 가족들에게 내 자랑을 수없이 했다. 자신을 취재한 기자들 중에서 작가의 길을 개척하고 있는 나를 좋게 보았던 것 같다.
영정 앞에 묵도를 하고 유족에게 인사를 하는데 아들(이용모 건국대교수)이 말을 건넨다.
“아버님한테 작가님 얘기를 정말 많이 들었어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내실에서 쉬고 있는 조여사님에게도 인사를 드렸다. 아주 오랜만이었지만 얼마전에 만난 것처럼 반갑게 대해주었다.
그는 이른바 “한또계” 의원들과 정기적으로 모임을 가졌다. 그 자리에 몇번 초청받아 간 적이 있는데, 그때마다 내가 어떤 작업을 하고 있는지를 설명하곤 했다. 제9권을 드렸을 때 그는 내게 천재시리즈 10권까지 꼭 써서 대역사를 완성하라고 격려했다.
그를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작년 11월 경기도 광릉수목원에서였다. 건강이 안좋아 바깥 출입을 안하지만 한도계 식사모임에 참석한다고 했다.
나는 제10권 <서울이 사랑한 천재들>을 직접 증정하기위해 그곳에 갔다. 몰라보게 쇠약해진 그가 책을 받아보더니 씨익 웃어보였다.
“야, 조성관이가 드디어 해냈구나. 정말 장하다”
석양빛을 바라보는 노정치인이 흐뭇해 하는 모습을 보니 내가 더 기뻤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내실앞에서 첫째딸 지원씨와 처음 인사를 했다.
“편하게 돌아가셨다죠.”
“네, 집에서 링거 맞다가 돌아가셨어요”
“총리님이 워낙 많이 베풀으셔서 그렇게 편히 가셨을 겁니다.”
기자생활 30년동안 정말 많은 사람을 만났다. 그중에서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 사람은 인품이 훌륭한 사람이었다. 인향만리라 했던가.
정치가 이한동이 내게 그런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