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우의 행복한 도전⑤] 평생 못 잊을 거제 연초중학교 은사 두분

거제 연초중학교 교정. 여기서 필자는 평생 잊지 못할 두분의 스승님을 만난다. 김영진, 이명걸 선생님이시다.

[아시아엔=이기우 이해찬 전 국무총리 비서실장,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회장 역임] 사람들마다 기억나는 은사님이 있겠지만 나에게는 결코 잊을 수 없는 은사님이 두 분 계시다. 바로 중1 때의 이명걸 선생님과 중3 때의 김영진 선생님이다.

중1 때 담임이셨던 이명걸 선생님은 나에게 “기우야, 니 부산고 가라”고 처음으로 말해 주신 분이다. 나는 중1 첫 반장이었을 뿐만 아니라 학년 1등을 놓친 적이 없었고, 졸업할 때까지 3년 내내 수업료와 기성회비가 모두 면제였다. 졸업 때까지 돈 한 푼 안 내고 학교를 다닌 것이다. 선생님이 부산고등학교 출신이어서 더욱 나에게 애정을 많이 쏟으셨다.

거제도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는 이명걸 선생님의 그 말씀이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를 일깨워 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나도 부산이라는 큰 도시로 나가서 꿈을 펼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그때 갖게 되었다. 1학년 말에는 선생님이 나를 데리고 직접 부산에 간 적도 있다. 부일장학회라는 곳에서 장학생 선발 시험이 있는데, 선생님은 내가 그 시험에 붙어 지원을 받으면서 좀 더 풍족하게 학교에 다니기를 바라셨던 것이다. 부산 서면에 선생님의 형님이 살고 계셔서 그 집에서 하룻밤을 보낸 뒤 다음 날을 맞이했다.

시험 치러 가기 전에 시간이 많이 남아 선생님은 내게 중앙동 현대극장에서 펄벅의 「대지」를 보여 주셨다. 그것이 나에게는 첫 영화였다. 처음 보는 대형 스크린에 영사기 불빛이 쏟아지며 왕룽 일가의 삶이 펼쳐지고, 황량한 대지 위에 가득한 메뚜기 떼! 그 장면이 아직까지도 잊혀지지 않는다. 영화를 보고 나와서는 빵집에 가서 빵을 사 주기도 하셨다. 그러나 아쉽게도 장학생 선발 시험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나름대로는 거제도에서 공부를 잘한다고 했지만 큰 도시의 학생들에 비해서는 부족함이 있었다. 내가 떨어진 것은 괜찮았지만 선생님께 면목이 없었다. 나를 위해 장학회를 알아보고, 부산으로 데려와 시험까지 치게 해 주신 선생님을 기쁘게 해 드리지 못했다는 것이 아쉽고 분했다고 할까. 어쨌든 선생님이 내 삶에 끼친 영향만큼은 부정할 수가 없다. 거제도에서 벗어나 부산이라는 공간을 열어 주고, 더 큰 세상을 꿈꾸게 해 주신 분이다.

중3 때 김영진 선생님은 내게 지속적으로 용기를 주신 분이다. 고등학교 원서를 써야 할 때가 되었을 때 담임이셨던 김영진 선생님은 흔쾌히 부산고 원서를 써 주셨다. 선생님은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넌 반드시 합격한다. 걱정 말고 마무리 잘해라. 그리고 앞으로 좋은 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라. 넌 충분히 가능해.”

선생님은 나를 볼 때마다 항상 애정 어린 목소리로 “기우 너는 뭘 해도 잘할 거다.”라는 말씀을 해 주셨다. 나는 김영진 선생님을 통해 누군가 나를 믿어 준다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를 배웠다. 가능성은 본인의 각성으로도 깨어나지만 주변에 그를 믿어 주는 사람이 있을 때 훨씬 극적으로 피어날 수 있다. 사람은 그 믿음으로 성장한다. 김영진 선생님은 나에게 그런 분이셨다. 선생님 덕분에 부산고에 합격할 수 있었다. 그해 거제도 11개 중학교에서 32명이 시험을 쳤는데 나 혼자만 붙었던 것이다. 모두가 선생님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그 후로 세월이 한참 지난 뒤에 김영진 선생님을 다시 만난 적이 있다. 교육환경개선국장으로 이해찬 장관을 모시고 있을 때였다. 스승의 날 행사를 준비하면서 간부급들이 옛 은사들을 한 분씩 초청하자 해서 행사를 진행하게 된 일이 있었다. 그때 김영진 선생님을 먼저 초청하게 되었다. 중학교 교장 선생님이 되신 후였다. 선생님도 좋아하시고 나도 반가워서 그날은 종일 행복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바로 그다음 해에 이명걸 선생님을 모시려고 수소문을 했는데 연락이 닿지 않았다. 그사이 선생님이 암으로 돌아가셨다는 말을 전해 듣게 되었다. 아쉽고 슬픈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사실 1996년도에 이명걸 선생님을 만난 적이 있었다. 내가 부산시 부교육감으로 일할 때 이명걸 선생님이 부산고 수학 선생님으로 재직 중이셨던 것이다. 연락을 드려 날을 잡고 식사를 했는데 선생님이 얼마나 좋아하셨는지 모른다.

그때도 제자 사랑하는 마음과 열정이 그대로셨다. 제자를 사랑하고 잘 가르치고, 자기 몸을 던져 제자를 위하는 예전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런데 그런 분이 암으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다. 그때의 무너지는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지금 내가 대학 총장으로 학생들을 대하는 자세는 바로 이 두 분 선생님에게서 배운 것이다. 그러나 따라가려 해도 아직도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제자들을 대할 때 선생님들이 보여 주셨던 조건 없는 사랑과 헌신, 사람의 가능성에 대한 선한 믿음은 지금도 내가 귀하게 생각하는 덕목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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