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미국 사재기 조롱···”이게 당신들이 말하던 정상국가냐”

텅빈 미국 식료품 매대

코로나19 확산 위기에도 이란서 사재기 드물어
‘위기의 일상화’ 이란, 평소 생필품·식량 비축 습관

[아시아엔=연합뉴스] 미국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대비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면서 생활필수품 사재기로 혼란이 빚어지자 이란에서는 이에 대한 조롱과 조소가 나왔다.

이란 네티즌들은 미국과 유럽의 대형 마트의 매대가 사재기로 텅 빈 사진과 화장지를 사려고 마치 싸우는 듯이 경쟁적으로 자신의 쇼핑 카트에 물건을 집어넣는 동영상을 게시하면서 이란과 비교했다.

이란 네티즌은 14일(현지시간) 자신의 트위터에 비어버린 미국 대형 마트의 화장지 매대 사진과 함께 “이란은 미국보다 가난하지만 우리는 1980년대 이라크와 전쟁을 했을 때도 이러지는 않았다”라는 글을 올렸다.

다른 이란 네티즌도 프랑스 파리의 대형 마트가 사재기로 물건이 없는 사진을 게시하면서 “이것이 당신들이 말하던 ‘정상국가’인가”라고 냉소적으로 비판했다.

‘정상국가'(normal state)라는 용어는 미국과 유럽이 이란을 비판할 때 쓰는 표현이다. 현재 이란 정부가 핵무기를 개발하고 테러조직을 지원하는 ‘비정상’ 체제라는 점을 강조한 말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등 미국 행정부 인사들은 이란에 대해 ‘정부'(government) 대신 ‘정권'(regime)이라는 단어를 즐겨 써 합법성과 정통성을 깎아내리려는 의도를 보인다.

‘익명의 순교자’라는 계정 이름을 쓰는 이란 네티즌은 “미국은 겨우 코로나19로 화장지가 동났다고 한다. 이란은 40년간 미국의 제재를 받았지만 국민이 사재기는 하지 않는다”라고 비꼬았다.

15일 오전 테헤란 대형마트 샤흐르반드의 육류 매장 [테헤란=연합뉴스]
자신을 하셰미라고 밝힌 이란 네티즌은 “화장지가 부족하면 이란처럼 용변 뒤 물로 씻어라”라며 이란 화장실에서 쓰는 샤워기 모양의 세척도구 사진을 올렸다.

코로나19 확산에도 이란에서는 아직 생활필수품 사재기는 드문 분위기다.

15일 오전 테헤란 서민층이 주로 이용하는 대형 마트 샤흐르반드를 찾았을 때 생활필수품, 식품을 파는 코너는 평소와 같이 매대에 물건이 가득 차 있었다.

샤흐르반드 관계자는 “코로나19 확산 이후 사재기는 벌어지지 않았다”라며 “생활필수품 구입 한도 수량도 없다”라고 말했다.

로버트 매클레어 주이란 영국대사는 14일 자신의 트위터에 화장지가 쌓인 이란의 한 슈퍼마켓 사진과 함께 “오늘 테헤란에서 쇼핑. 여러분이 걱정하실까 봐…”라는 글을 올렸다.

이란에서도 사재기 현상이 잠시 일어난 적이 있었다. 2018년 8월 미국 정부가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를 파기하고 대이란 제재를 복원하자 원료를 수입에 의존하는 화장지, 여성 위생용품 등이 한 달여간 품절된 적 있었다.

하지만 제재에 익숙한 이란 무역업자들은 제재를 피하는 우회 수입로를 곧 찾아냈고, 이란의 슈퍼마켓의 진열장은 다시 채워졌다.

올해 1월 미국과 전쟁 위기가 최고조로 높아졌을 때도 일부 시민이 쌀, 식용유, 캔, 화장지와 같은 ‘생존 물품’을 대량으로 사들이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었다.

코로나19 확산이 심각한 이란에서 사재기와 같은 민심의 동요가 크게 일어나지 않는 데 대해서는 해석이 분분하다.

일각에선 민생고에 시달리는 이란 국민이 사재기할 만큼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이란 정치평론가는 15일 연합뉴스에 “이란이 지난 40년간 미국, 유럽과 정치·경제·군사적으로 항상 대치하면서 국민이 여러 위기를 겪었다”라며 “위기가 일상화된 터라 평소에 비상 물품을 비축하는 습관이 있다”라고 해설했다.

그는 이어 “미국의 강력한 제재에도 생활필수품이 부족하지 않을 만큼 이란에 공급되는 것을 보고 이란 국민이 안심했을 것”이라며 “두 달전 미국과 전쟁 직전의 상황까지 치달았을 때 생활필수품을 비축한 국민이 꽤 있고, 코로나19 사태가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고 보는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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