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서지례’ 차인들의 특별한 결혼식···”정성 가득 차향 나눠”
[아시아엔=김영희 차 전문월간지 <茶人> 편집국장] 작년 10월 27일 일요일 낮 12시 서울 더플라자호텔 22층 지스텀하우스에서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차인연합회 박경옥 이사와 부군 김광종 (주)우진WTP 대표의 외아들 김태준 군과 신부 박혜원 양의 결혼식이 진행된 것이다.
먼저 차를 배운 신랑 아버지 김광종 대표의 권유로 차를 시작한 박경옥 차인연합회 이사와 그 모습을 보고 자란 신랑 김태준군 또한 차가 생활화되어 있었다. 해마다 열리는 차 봉사에 온가족이 출동하는 등 남다른 차 사랑을 실천하는 가족이다.
이날 지스텀하우스 입구에는 박경옥 이사가 담임을 맡은 한국다도대학원 대구분원 19기 최고과정팀과 청하다례원 회원들이 결혼 축하 다찬회를 펼쳤다. 정성 가득한 형형색색의 다식과 다양한 차가 차려지고, 한복 차림의 차인들이 정성으로 차를 대접하는 정다운 풍경이었다.
이날 결혼식은 신랑 부친의 제안으로 양가 부모님의 직계가족과 친구들만 초대해 비교적 작은 규모로 치러졌다. 주례 없이 양가 아버님의 축하 말씀과 어머님의 덕담 그리고 양가 가족과 신랑·신부의 친구, 축하객 모두를 일일이 소개하는 순서로 진행돼 결혼이 두 가정의 결합임을 하객들에게 잘 보여줬다.
특히 차로 ‘삼서지례’(三誓之禮)를 행하여 결혼의 의미를 더욱 신성하게 만들었다. 해외 유학 중 만나 오랜 연애 기간을 보낸 신랑·신부의 달콤한 사랑과 부모님들의 깊고 진한 신뢰, 그리고 가족과 친구들의 화기애애한 축하의 마음이 흘러넘쳤다. 식장은 온통 차향과 꽃향 가득한 아름다운 시·공간이었다.
차의 예가 있는 결혼식 풍경
삼서지례는 집례자가 먼저 전통혼례의 삼서지례에 대해 설명하고, 부모님께 맹세하는 서부모례(誓父母禮), 천지신명께 맹세하는 서천지례(誓天地禮), 마지막으로 신랑신부가 서로 맹세하는 서배우례(誓配偶禮), 그리고 사용한 표주박 찻잔을 하나로 묶는 합근례(合?禮) 순서로 진행되었다.
결혼식의 시작을 알리는 사회자의 안내가 끝나자 집례자인 박선우 차인연합회 부회장이 단상으로 올라가 인사를 하고 삼서지례의 취지와 의미를 설명하였다. 이날 선보인 삼서지례의 시나리오는 이계영 선생과 함께 예서(禮書)의 예문을 현대식으로 편집하였다 한다.
좌우 집사가 무대로 올라와 자리잡고, 팽주는 차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집례자인 박선우 부회장은 본인의 따님 결혼식에 차로 하는 삼서지례를 행하는 등 삼서지례를 널리 알리는 차인으로 꼽힌다. 그는 삼서지례를 이렇게 설명했다.
“예로부터 혼인은 백복지원(百福之源)으로, 말 그대로 모든 행복의 시작입니다. 혼례는 사람이 태어나서 거치는 통과의례인 4례, 즉 관혼상제(冠婚喪祭) 가운데 두 번째로, 그 의미가 매우 깊고 진중합니다. 양가의 혼담부터 폐백까지 절차가 복잡하고 길고 까다롭지만 오늘은 그 정신을 본받아 간단하게 세번 맹세하는 예로 진행하겠습니다. 전통혼례의 근본정신은 삼서(三誓)에 있습니다. 삼서에서 첫째는 신랑신부가 부모님 앞에서 ‘저희가 오늘 혼인해서 행복한 부부로, 효성스런 자식으로, 모범되는 부모로, 또 책임감 있는 사회인으로 열심히 살겠습니다’라고 맹세하는 서부모례(誓父母禮)입니다. 둘째는 천지신명과 조상께 ‘저희가 오늘 부부가 되는 혼례를 올리오니 두루 보살펴 주시고 축복해 주십시오’라고 고하며 비는 서천지례(誓天地禮)입니다. 셋째는 신랑신부가 서로에게 ‘우리가 오늘 부부가 되어 서로가 성장하도록 잘 돕고 보살피며 사랑으로 행복한 가정을 만듭시다’라고 맹세하는 서배우례(誓配偶禮)를 말합니다. 여기에 ‘원래 하나였던 박이 두 조각 바가지로 나뉘었다가, 다시 하나로 합해지듯이 신랑신부가 하나가 된다’는 뜻과 함께 신랑 신부의 두 가문이 오늘 혼례로 새로운 한 식구가 되었다는 의미를 담아 합근례(合?禮)를 진행하겠습니다.”
이어서 삼서지례에 이용될 차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오늘 삼서지례에서 쓰는 예물은 김해 장군차 잎으로 만든 녹차입니다. 차는 예로부터 봉차라 하여 결혼의 예물로 사용하였습니다. 차나무 뿌리가 땅속으로 깊이 뻗어 옮기지 않듯 시집가서 한 가정에 뿌리를 묻고, 차나무가 열매를 많이 맺는 것처럼 자손이 번창하고, 그 잎새가 늘 푸르고 강인하며, 꽃과 열매가 같이 만나는 실화상봉수로 조상을 섬기는 의미가 있고, 그 우린 차의 빛과 향과 맛이 맑고 향기로와 신랑·신부의 삶이 차의 향기처럼 맑고 향기롭기를 소망하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양가 부모님께 차를 올리고 맹세하는 서부모례
전통 혼례에서는 삼서지례의 예 중에 서부모례와 서천지례는 각자의 가정에서 예식의 자리에 가기 전 치르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대에 맞추어 예식장에서라도 그 의미와 정신을 고취시키려 진행한다고 했다. 서부모례는 신랑과 신부가 각자의 부모님께 차를 올리고 맹세하는 예다. 좌집사가 신랑 신부에게 차를 건네면 신랑 신부는 차를 받아 눈높이로 받들었다가 우집사에게 주고, 우집사가 그 차를 양가 부모님께 올리면 양가 부모님은 신랑신부의 맹세를 받는다는 뜻으로 차를 받아 마시고 당부의 말씀을 하였다. 찻잔은 집사에게 돌려주었다. 우집사는 찻잔을 받아 대기하고, 좌집사는 찻자리로 돌아가 다완을 가지고 신랑신부에게 나아갔다.
하늘과 땅, 조상께 맹세하는 서천지례
서천지례는 하늘과 땅 그리고 조상께 맹세하는 것으로 신랑과 신부가 마주 보고 서서 신랑은 찻잔을 두손으로 받아 들고, 신부는 왼손을 찻잔에 대고 함께 들어 하늘에 계신 조상의 혼령께 맹세하였다. 좌집사가 찻잔을 신랑에게 드리면, 신랑이 두 손으로 받아들고 신부는 부케를 오른손으로 옮기고 왼손으로 들어 다완에 살짝 댄다.
신랑신부가 함께 다완을 눈높이로 받들어 올리고 속으로 셋을 센다. 그 다음 신랑신부는 찻잔을 아래로 내려 땅에 계신 조상의 백에 맹세하였다. 신랑 신부는 찻잔을 단전 높이로 내리고 속으로 셋을 세었다.
서로에게 맹세하는 서배우례
서배우례는 신랑과 신부가 서로에게 하는 약속으로 부모님께서 해주신 당부의 말씀을 새기며 서로 사랑하고 새 가정을 잘 가꾸어 가자는 맹세다. 두 개로 나누어진 박을 한 개의 박으로 신부 어머님이 홍색 주머니에 넣어 준비한다.
좌우집사가 주머니에 든 표주박과 다관의 차를 들고 들어와 신랑 신부에게 표주박을 한 개씩 나누어 잡게 하고 다관의 차를 따라준다. 신랑과 신부는 표주박을 가슴 높이로 들어 올리고 마주보며 서로에게 하나 되어 행복하게 “백년해로 하자”고 다짐하며 차를 반씩 마시고 바꾸어서 나머지 반을 마신 후 집사에게 표주박을 건네주면 좌집사는 청홍실로 두 표주박을 하나 되게 묶는다.
여기에는 두 가정에서 서로 다른 환경으로 살아왔지만 합근례 이후에는 한 가정을 이루어 자식도 낳고 조상과 부모의 은덕에 보답하고 행복한 새 가정을 만들겠다는 뜻이 담겨있다. 홍보에 담긴 박은 혼주에게 전달되며 후일 새 가정으로 보낸다.
의식이 끝나면 집례자는 “이로써 삼서의 예를 마치겠습니다”라고 말하며 자리에서 물러난다. 이어 신랑신부는 하객을 향해 돌아서서 한번 더 삼서의 예를 올렸음을 확인한다.
이날 신랑의 부모님은 “서로 존중하며 늘 미래를 위해 배우고 준비할 것”을 당부하였다. 이에 신랑과 신부는 이렇게 말했다.
“삼서지례의 참 의미를 마음속 깊이 되새기면서 가족, 부모님, 그리고 배우자와 함께 소중하고 뜻깊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예식 전 경건한 마음으로 삼서지례에 담긴 옛 조상들의 정신을 배웠으며, 가족과 친지들을 모신 자리에서 삼서지례를 진행하면서 결혼의 의미뿐만 아니라 부모님의 사랑까지 더욱 감사하게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또한 저희 부부에게는 평생의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습니다.”
차가 결혼의 의미를 더욱 풍부하게 하는 이날의 예식은 신랑과 신부는 물론이겠지만 하객들에게도 오래 남는 추억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