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오 “사형대로 가는 심정···모든 책임·결과·비난·비판 떠안겠다”
자유한국당 공천관리위원장을 맡은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최근 친구에게 보낸 메시지를 자신이 속해 있는 서울대인문학최고위 과정 8기 단톡방에 올렸다. 김 위원장은 “모든 책임·결과·비난·비판 떠안고 모든 걸 버리고 가겠다”고 했다. <아시아엔>은 본인은 동의를 받아 그가 올린 메시지를 전한다. <편집자>
친구들 얘기 듣고 한참을 생각했어. 오랫동안 명예·책임·나라·희생·망신·봉변···. 그러더니 갑자기 아킬레우스가 떠오르는 거야.(오직 약점이 아킬레스건만 있는 반신반인半神半人의 영웅).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의 주인공 말이지.
아킬레우스는 트로이전쟁에 참여하면 승리는 하지만 반드시 목숨을 잃지. 참전 않으면 영원히 죽지 않고 산다는 신탁을 받았구. 어머니 테티스 여신은 사랑하는 자식이 죽지 않도록 자식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그를 여자로 변장시켜 어느 성 깊숙이 숨겨두지. 여자는 군대에 안가니까. 그러나 아킬레우스는 결국 죽음의 길로 나아가지.
나 역시 많은 고민이 있었어. 이름 없이 값 없이 영생을 누릴 것인가 영웅적으로 행동하고 죽음으로 인생을 마감할 것인가.
지금 나라의 형편이 백척간두에 서있는데 모른 체 하고 가만히 있을 것인가. 그렇더라도 자유한국당이 과연 대안인가. 내가 나선다고 달라질 게 있을까. 할 것 다하고 명예롭게 인생을 정리할 시점에 오점을 남기는 건 아닌가.
고민이 많았어. 결국 스스로 죽기를 각오하고 죽음의 길로 나서기로 했어. 영웅은 아니지만 나라로부터 받은 은혜를 이걸로라도 갚을 수 있다면 그 길을 가야하지 않나 하고 말이야. 나는 현재 당적이 없고 앞으로도 정치할 생각이 없네. 이렇게 어려울 때 몸 사리고 가만히 있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도리가 아닌 것 같아. 상처뿐인 결과가 나오더라도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건전 야당을 살리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라도 쳐야겠다는 생각에서 몸을 던지기로 했네.
사실 난 지금 몸이 안 좋아. 본래 약골이지만 병이 생겨 치료도 받고 있는 중이지. 황교안 대표와 몇차례 대화하면서 얼핏 말해 그도 대충 알고 있을 정도로. 더구나 이 어려운 자리를 대표를 비롯해 많은 이들이 나에게 맡아달라고 부탁하는 차에 더 이상 거절하기 어려웠어. 몸 사리는 스스로의 모습을 거울 앞에서 보는 게 싫어졌던가 봐.
좋은 자리면 양보하고 다른 사람 추천도 하겠지만 이 부족한 사람이 그동안 대한민국으로부터 받은 은덕 생각하면 마지막 몸을 던져야 할 때가 아닌가 해.
또 그들이 나에 대한 기대, 내가 죽기로 싸울 때 그들이 살고 자유민주주의가 지켜진다는 신념을 위해 나는 몸을 던지려하네.
친구여, 사형대로 가는 사형수의 심정으로 임하는, 단기필마로 엄청난 적진으로 달려가는 나를 위로해주오. 친구의 건승을 빌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