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中 정부 송환법 시위 ‘강경대응’ 선회···’우산혁명’ 진압 경찰 2인자 재기용
[아시아엔=연합뉴스] 홍콩 정부가 2014년 대규모 민주화 시위 ‘우산 혁명’을 강제진압했던 강경파 경찰 2인자를 재기용하는 등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 반대 시위에 대한 본격적인 강경 대응에 나섰다.
9일 홍콩 정부는 지난해 11월 57세 정년을 맞아 퇴직 휴가를 떠났던 전직 경무부처장 앨런 로(劉業成)를 6개월 시한의 임시 직책인 ‘특별직무 부처장’으로 임명한다고 밝혔다.
앨런 로의 주된 임무는 스테판 로 경무처장을 도와 ‘대규모 공공질서 사건’에 대응하고, 10월 1일 신중국 건국 70주년 기념식 등 주요 행사를 준비하는 것이라고 홍콩 정부는 밝혔다.
홍콩 정부 안팎에서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이 ‘깜짝 인사’의 주된 목적은 지난 6월 초부터 두 달 넘게 이어져 온 송환법 반대 대규모 시위에 강력히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와 명보 등에 따르면 앨런 로는 홍콩 경찰 내 대표적인 강경파로 불린다.
그는 2014년 9월 28일부터 79일 동안 ‘행정장관 직선제’를 요구하며 홍콩 도심을 점거한 채 벌어진 대규모 민주화 시위 ‘우산 혁명’을 강제로 해산하고 무려 1천여 명에 달하는 시위 참여자를 체포한 인물이다.
당시 정무사장(정무장관)이었던 캐리 람(林鄭月娥) 현 행정장관은 홍콩 시민들의 열망을 무시한 채 시위대를 강제 해산시켰는데, 이를 진두지휘한 인물이 바로 경무처 행동처장을 맡았던 앨런 로였다.
그는 지난 2016년 춘제(春節·중국의 설)인 2월 8일 밤 몽콕에서 노점상 단속을 반대하는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했던 이른바 ‘몽콕 폭동’ 당시에도 이를 진압하고 54명을 체포했다.
이러한 강경파가 재기용됐다는 것은 홍콩 경찰이 더욱 공세적인 자세로 송환법 반대 시위에 대응할 것을 예고한다.
중국 중앙정부와 관영 매체는 송환법 반대 시위대의 중국 국가 휘장 훼손과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를 바다에 버린 사건에 분노해 홍콩 정부와 경찰에 ‘무관용’의 강경한 대응을 요구해 온 터였다.
앨런 로가 10월 1일 신중국 건국 기념식 행사 준비라는 임무까지 부여받았다는 것은 홍콩 정부가 10월 1일 이전에 송환법 반대 시위 사태를 마무리하려고 한다는 뜻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앨런 로의 경무부처장 임명에 이어 홍콩 경찰은 송환법에 반대해 열리는 주말 행진을 모두 불허하는 ‘초강수’를 뒀다.
홍콩 재야단체 등은 토요일인 10일 타이포와 웡타이신 지역에서, 일요일인 11일에는 코즈웨이베이에서 노스포인트에 이르는 홍콩섬 동부와 쌈써이포 지역에서 각각 송환법 반대 행진을 할 예정이었다.
이번 주말 시위는 지난 6월 9일 홍콩 시민 100만명이 참여한 송환법 반대 시위 이후 10주 연속 열리는 주말 시위다.
하지만 홍콩 경찰은 이들 4개 지역이 이전에 시위대와 경찰의 충돌이 발생했던 지역이라는 이유로 주말 행진을 모두 불허하고, 11일 빅토리아 공원 내 집회만 허용했다.
송환법 반대 시위가 본격화한 후 홍콩 경찰이 송환법 반대 주말 행진을 모두 불허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와 관련해 홍콩 경찰이 상부로부터 ‘최고 지시’를 전달받았으며, 이에 따라 시위대에 해산을 통보하고 만약 해산하지 않을 경우 참여 인원과 관계없이 시위대 전원을 ‘폭동’ 혐의로 체포할 것이라는 소문도 돌고 있다.
홍콩 경찰은 지난달 28일 도심 시위에서 경찰과 격렬하게 충돌했던 시위 참가자 44명을 폭동 혐의로 무더기 기소한 바 있다.
한편 캐리 람 행정장관은 이날 오후 기자회견을 열고 송환법 반대 시위대를 강도 높게 비난했다.
캐리 람 장관은 “홍콩 시민들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대규모 ‘파괴 행동’에 참여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며 “폭력을 멈추는 것이야말로 홍콩의 분열을 중단하고 회복으로 나아갈 시발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무역전쟁과 더불어 이러한 폭력 시위로 말미암아 홍콩 경제가 2003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대유행이나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더 심각한 상황에 직면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책 마련을 위해 당초 예정보다 2주 앞당겨 13일 행정장관 자문 회의인 ‘행정회의’를 개최하겠다고 덧붙였다.
캐리 람 행정장관의 이날 기자회견 논조는 지난 6월 초부터 송환법 반대 시위가 본격화한 후 개최한 기자회견 중 가장 강경해 중국 중앙정부와 홍콩 정부가 ‘강경 대응’으로 선회했다는 분석에 힘을 실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