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차붐 챕터 2 ‘두 장의 솔로 앨범 Original, Sour’
2015년 여름, 미국에서 ‘스트레이트 아웃 오브 컴튼’(Straight Outta Compton) 이란 영화가 개봉됐다. 미국 힙합 웨스트코스트 씬의 전성기를 이끈 전설과도 같은 인물들의 일대기를 다룬 작품이다. 작품의 배경이 된 ‘컴튼’은 흔히 말하는 슬럼가다. 그 곳에서의 삶은 거칠었지만 이를 자양분 삼아 성장한 랩퍼들은 지금도 컴튼을 ‘샷 아웃’(Shot out)한다.
그런데 컴튼과는 머나먼 한국 땅에서, 그것도 금요일 밤 가장 많은 이들이 보는 케이블 TV쇼에서 ‘스트레이트 아웃 오브 안산’을 외친 랩퍼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차붐이다. 안산에서 나고 자라 랩퍼가 된 그이기에 그 한 마디는 어색하지 않았다.
중학교 3학년이던 2000년 백업 랩퍼로 첫 무대에 오른 차붐은 10장이 넘는 콜라보 앨범에 참여하고 두 장의 솔로 앨범-2014년 1월 정규 1집 ‘Original’, 2017년 7월 EP ‘Sour’-을 발표한 베테랑 랩퍼다.
안산 거리의 삶과 그에 대한 애증을 말하는 차붐, 그와의 인터뷰를 전한다.
첫 솔로 앨범 ‘Original’의 첫 트랙 ‘안산 느와르’는 리얼한 묘사가 돋보인다. ‘손 짤린 공돌이 친구’나 ‘친구들과 주공아파트 옥상에서 불던 오공본드’ 등의 표현들을 거리낌 없이 사용했다. 이러한 표현들은 실제 경험에서 나온 것인가.
그렇다. ‘Original’ 직전에 마일드 비츠 & 차붐 ‘Still Ill’ 앨범을 작업하면서 많이 배웠다. 이전에는 영어를 많이 섞고 스킬이나 스웩 위주의 가사를 썼었는데, ‘Still Ill’ 작업을 하면서 앨범 전체를 온전히 랩으로 채우게 됐다. 그때 깨달았다. 진정성 있게 가사를 전달하려면 감정을 과도하게 담는 것 보다 감정의 테두리 안에서 드라이하게, 삼인칭 시점으로 한발 짝 뒤에 선 듯이 표현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것을. 그때부터 사람들을 많이 관찰하고 이야기도 들으면서 가사를 썼다. 가사에서도 쓴 적이 있는 표현인데 내가 보고 듣고 경험한 것만 뱉는다.
기믹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차붐이란 말인가.
기믹이면 좀 더 멋있는걸 잡았지.(웃음) 스타일의 차이인 것 같다. 캐릭터를 잡고 가는 것도 영리한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데, 난 내 이야기를 하는 게 제일 자신 있다. 내가 보고 듣고 영유하는 것을 사람들이 간지나게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외제차를 타고 다녀야만 간지가 날 수 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질적인 부분이든 정신적인 부분이든 높은 곳을 바라보는 게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 과정이 고난이면 불행한 것 아닌가. 난 충분히 멋있고 간지가 나니까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러한 부분들이 묻어난 곡이 EP ‘Sour’의 ‘리빠똥’이다. ‘리빠똥’의 뮤직비디오엔 안산에서 나고 자란 차붐의 색이 그대로 드러난다.
‘안산 느와르’나 ‘안산블루스’ 등의 곡이 조금은 사적인 얘기였다면 ‘리빠똥’은 내 스타일의 스웩곡이다. 개인적으로 만족도가 높은 곡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난 봉준호, 박찬욱, 김지운 감독님 등의 장르 영화를 보고 자란 시네마키드였다. 음악을 하기 전까진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고 지금도 영화를 좋아해 영향을 많이 받는다. 영상과 음악이 맞아 떨어지려면 디테일한 묘사나 스토리를 어느 정도 줄여야 한다. ‘리빠똥’은 영상으로 만들 것을 염두에 두고 쓴 가사다 보니 완성도가 높을 수 없었다.
반대로 영상에 등장하는 소품 등의 디테일은 상당한 편 아닌가.
특별한 스토리가 없으니까 이미지를 전면에 내세울 수 있었다. ‘돈 많이 벌거니까 두고 보자’ 딱 그 내용이다. 안산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그 당시 추억이 있는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미지를 담다 보니 좋게 봐주신 것 같다. 사실 뮤직비디오까지 찍기 힘들 정도로 형편이 어려웠다. 뮤직비디오를 찍은 카키라는 감독이 있는데 그 친구한테 지금도 너무 고맙다. “형, 무리해서라도 가자. 부담스러운 부분 내가 다 감당한다”고 말하면서 자기 주위 인맥들 다 끌어와 영화 촬영할 정도로 많은 스탭들이 모여서 찍었다. 그 친구한테 은혜를 갚아야 한다.
‘Sour’의 수록곡 ‘돈 명예 섹스’에서 동료 랩퍼들이 쇼미 푼 돈에 목숨 걸 때 제이지(Jay-Z) 간지로 사업하는 자신을 묘사했다. 그런데 바로 다음 트랙 ‘엿’에선 중국 간 사이 쇼미가 큰 성공을 거뒀음에 대한 감사함을 표했다. 앨범 앞뒤 트랙이 전혀 다른 얘기를 한 셈이다.
‘Sour’는 중국에서 사업할 당시 작업했던 앨범이다. 살면서 처음으로 큰 돈을 벌었던 이른바 성공을 누리던 시기였다. 그 상황을 이야기하다 보니 ‘돈 명예 섹스’와 같은 가사가 나왔다. 그런데 앨범 작업을 마치고 발매할 때까지의 공백기 동안 사드 때문에 사업이 망했다. 현실은 전혀 다른데 과거에 쓴 가사 만으로는 앨범을 낼 수는 없었다. 그래서 원래는 총 10곡을 작업했는데 그 중 뒤의 두 곡을 빼버리고 9번 트랙 ‘엿’과 10번 트랙 ‘장미’를 새로 작업했다. 8번 트랙 ‘돈 명예 섹스’ 끝나고 나서 잠깐 나레이션이 나오는데 잘 될 거 같다가 결국 ‘fucked up’ 된다는 내용이다.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온 상황을 그 다음 트랙 ‘엿’에서 풀어낸 거다.
EP 앨범 ‘Sour’로 평단의 좋은 평가를 받았다.
내 스타일의 음악을 해왔는데, 시대가 변하면서 내 음악에 열광하는 분들이 생겼다. 힙합씬이 커지면서 장르적인 음악을 하던 나까지 주목 받은 것 같기도 하다.
전작 ‘Original’은 앨범 내고 음악을 그만 둘 생각을 했던 시기라 ‘그냥 내고 말자’하고 빠르게 작업했고, ‘Sour’는 ‘정말 하기 싫은’ 상황에서 작업했다. 한국에 들어와서 가사 쓰는데 2주, 녹음에 2주, 총 4주가 걸렸다. 그 기간은 정말 지옥 같았다. 사업체를 완전히 문 닫기 전이라 아침엔 빚 갚고 일 처리 하러 다니다 점심 돼서야 회사 가서 일을 했다. 저녁 7~8시에 직원들 퇴근하면 9시에 편의점 도시락으로 첫 끼를 먹었다. 그러고 10시부터 12시, 길면 1시까지 작업했는데 도무지 가사 쓸 기분이 아니었다. 예전에는 ‘돈 좀 벌었다’는 가사들을 썼었는데 상황이 너무 힘들어지니까 정말 하기 싫었다. ‘Sour’ 가 잘될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그런데 막상 앨범이 나오니 ‘Original’보다 반응이 더 좋았다. ‘쓰~읍 이게 도대체 뭐지?’ 세상에서 상처만 받고 돌아온 나를 음악이 살려주는 느낌이랄까. 참 신기한 일이다. 랩이, 힙합이 되게 고맙다.(웃음)
앨범을 작업할 때 전체의 테마를 정한 후 빈 공간들을 채워 넣는다고 들었다. 구성요소들이 유기적으로 상호작용한다는 느낌을 받지만, 반대로 비슷비슷하게 흘러갈 수도 있지 않은가.
앨범은 뚜렷한 색을 지녀야 한다고 확신한다. 이야기가 비슷하게 들린다면 내가 중심을 잡고 랩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대신 비트는 다양하게 집어넣는 편이다. ‘Original’ 때는 “색깔을 해치는 곡들이 있다”는 비평을 받기도 했지만, 한 앨범을 듣는데 같은 스타일의 곡만 나오면 지겨울 수도 있지 않나. 비트는 다양할 수 있지만 가사가 전하는 메시지 등 앨범의 구성요소들은 유기적으로 전달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리빠똥’ 뮤직비디오의 경우 하루 만에 촬영을 끝냈지만 디테일 등은 반년 전부터 논의했다. 앨범 자켓도 반년 동안 엄청 많이 회의했다. 쉽지는 않지만 협업하는 사람들과 합치된 의견을 이끌어낼 때까지 조율하려고 한다. 성향 상 완벽하지 않으면 일을 하지 않는 편이기도 하다. 그만큼 철저하게 한다. 이는 내가 안정적인 퀄리티의 결과물을 만들 수 있는 원동력이라 생각한다.
성행위를 묘사하거나 노골적인 욕 등 날 것 그대로의 단어를 거침 없이 쓴다. 강한 단어들을 쓰는 이유가 있다면.
그러게요.(웃음) 가사를 쓸 때 이미지 전달을 중시한다. 욕이 됐든 무언가를 묘사하는 단어가 됐든. 여러 단어를 나열하는 것보단 강한 한방을 쓰는 것이 나은 것 같아서 강한 단어를 쓴다. 같은 주제를 얘기하더라도 내 방식대로 풀어낸다. 비속어를 많이 사용한다는 편견이 있는데 다른 랩퍼들 가사 들어보면 난 상대적으로 그 비중이 적은 편이다. 다만 사람들이 들었을 때 단어 하나 하나가 강렬하게 와 닿을 뿐이다. 여러 번 ‘씨o’ 거리는 것 보다 한번 강하게 ‘씨o’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 생각한다. 근데 난 이미지가 굳어지다 보니 ‘씨o’ 한번만 해도 사람들이 “차붐 또 엄청 쌍스럽게 욕 한다”고 한다. 욕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반증 아닐까.
실제 성격 성격은 어떠한가.
거친 사람은 아니다. 사람이 싸가지가 있어야지.(웃음) 어릴 때는 마음대로 살아왔다. 그때는 ‘마음대로 살기 위해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뱉는 게 멋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행동들이 누군가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것’과 ‘나는 사랑을 주고 싶고, 또 받고 싶어하는 사람’이란 것을 20대 후반에 깨달았다. 깨닫고 나니 ‘그렇게 살면 안되겠다’ 싶더라. 그래서 누가 됐든 최대한 매너 있게 대하려고 한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한테 젠틀할 정도로 성숙하진 못하다. 그 부분까지 바꿀 생각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매너 없는 사람 대하는 게 더 편하다. 딱 그만큼만 하면 되니까.
간혹 팬 중에 “욕도 하고 편하게 해줬으면 좋겠다. 그게 제가 바라왔던 형님”이라고 하는 친구들이 있다. 그럼 “내가 그러고 싶어서 당신에게 매너 있게 대하는 거다. 지금 같은 실랑이가 30분 정도 지속되면 내가 싸가지 없는 인간이라는 것을 충분히 느끼게 될 것”이라고 답한다.(웃음)
‘쌈마이’란 단어를 곡 제목에 넣은 유일한 뮤지션이다. 쌈마이란 단어에 대한 애착 또는 부담은 없나.
굳이 그런 건 없다. 랩퍼는 ‘나는 어떤 사람이다’라는 이미지를 언어로 풀어내야 한다. 나는 안산 사람이다. 안산이 서울보다 유행에 뒤떨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서울보다 1~2년 뒤쳐진 유행이 안산에선 잘 나가고 힙스러운 것이 될 수 있다. 서울 사람들이 안산에 온다고 무조건 먹어주는 것도 아니다. ‘우리 동네 오면 쫄려서 술도 제대로 먹지 못하잖아. 우리동네에선 니들은 멋 없어. 우리가 더 멋있어’라는 걸 말하고 싶었다. 그런 이미지를 고민하다 나온 단어가 ‘쌈마이’다. 그 단어를 전면에 내걸고 ‘쌈마이가 더 간지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에 맞는 결과물을 내놓으면 쌈마이란 단어가 이제부턴 멋있어질 수도 있는 거니까.
색이 강한 음악을 하기에 사람들이 거리감을 느끼는 것은 아쉽긴 하다. 그런 것들을 깨고 싶어서 앨범에 가벼운 스타일의 곡이나 말 장난들을 집어넣는다. 다른 모습들도 보여주면 사람들과의 거리가 줄어들지 않을까.
이미지에 대한 고민도 있을 것 같다.
쇼미 나가서 다른 모습을 보여드렸는데 너무 가벼운 사람이 돼버린 것 같기도 하다. 앞으로는 세련된 차붐을 보여주고 싶다. 방향성을 그렇게 잡았고, 실제로 최근엔 그에 맞춰 피쳐링도 참여했다. 낯 부끄러운 것을 진짜 못하고 꾸미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이제는 세련된 모습도 보여드릴 때가 됐다. 그 후엔 또다른 모습도 보여드릴 것이고. 내 진심과 여러 모습들을 앨범 하나, 방송 하나에 어떻게 담을 수 있겠나. 여러 면을 보여드리려고 해봐야 한 부분 제대로 보여드리기도 힘들다. 앞으로는 선택과 집중을 통해 나의 여러 면을 하나씩 꺼내 보이고 싶다.
가사를 잘 쓰는 랩퍼로 꼽힌다.
100% 솔직히 말하면 가사 쓰는 거 별로 안 좋아하고, 귀찮아한다. 그렇다고 가사를 허접하게 쓰진 않지만. 원래 프로듀서로 시작했고, 또 그 일이 좋았다. 아무도 내 비트에 랩을 안 해줘서 랩을 시작한 케이스라 랩퍼로서 어마무시한 자부심을 갖고 있지도 않다. 오히려 프로듀서나 제작자로서의 프라이드가 더 강한 편이다. 시스템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내 기질과 잘 맞기도 한다.
프로듀서로 비트 찍을 때는 느낌대로 이것저것 만들다 보면 시간도 금방 가고 재미있다. 제작자로 일할 때도 방향성을 결정하고 만드는 과정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들을 얻는 게 좋다. 가사를 쓸 때는 앨범 전체의 서사와 각 트랙에 맞는 주제와 훅, 가사 등을 머리 속에 정리해놓고, 정리된 것들을 잔가지 쳐내면서 완성한다. 가사의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과정은 즐겁지만, 막상 그걸 디테일하게 써내려 가는 과정은 그렇게 즐겁지만은 않다.
두 번째 솔로 앨범 ‘Sour’의 작곡 크레딧에 차붐의 이름이 없다.
2년 동안 사업하다 곡을 다시 만들려는데 공백을 느꼈다. 힙합은 트렌드가 계속해서 바뀌는 장르이며, 프로듀서들은 이 점에 특히 더 민감하다. 트렌드에 맞춰 수많은 곡을 만들어 보고 본연의 스타일과도 맞춰나가야 하니까. 2년을 쉬니까 트렌드는 어떻게든 따라갈 수는 있겠지만 그 이상의 퀄리티를 뽑아내긴 어려울 것 같았다. 음악을 계속하려면 곡 쓰는 것과 가사 쓰는 것 중 더 잘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았고, 사람들이 랩을 더 잘한다고 해서 랩을 선택하게 됐다. 지금도 좋은 비트를 들으면 심장이 벌렁거리고 곡을 만들고 싶지만, 그 이후로 곡을 만든 적은 없다. 심지어 샘플러 앞에 서거나 프로그램을 실행한 적도 없다.
한국적인 힙합을 한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많이 듣는 소리 중 하나다. 옛날엔 힙합이 미국에서 왔으니까 그걸 그대로 갖다 쓰는 게 멋있다고 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난 좀 다르게 생각했다. 우리 정서에 맞게 만든다면 한국의 현실을 더 잘 반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가 하는 게 특별한 게 아니라 이렇게 해도 되는 것 아닌가. 미국의 컴튼 출신 랩퍼가 컴튼을 얘기하듯 나도 안산의 얘기를 하는 것뿐이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