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훈의 콘텐츠형인간] 문학을 ‘보여’ 준다는 것
문학관, ‘문학’에 접근하려 ‘문자’를 벗어나다
부산에 있는 추리문학관이 지난 달 개관 20주년을 맞았다. 국내 최초의 문학관인 추리문학관이 20년을 버텨온 것은 설립자이자 소설가인 김성종 선생의 애정 어린 노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길지 않은 우리나라 문학관의 역사에서도 추리문학관은 매우 특별한 경우에 해당한다. 작가가 자신의 사재를 털어 설립한 것도 그렇지만, 도심에서 도서관과 카페를 겸하는 형태로 운영되고 있는 것도 당시에나 지금이나 흔한 일은 아니다.
문학관의 목표는?사람들에게 문학을 접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발전의 역사를 보면 문학관은 역설적으로 문학의 본질적 생존 형태인 문자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의 산물이기도 하다. 보다 많은 사람들을 문학에 접근하게 하려다 보니, 전시회나 낭독회 등 문자나 독서가 아닌 다른 방법을 취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서구에서 문학관은 보통 작가가 생전에 살던 집이나 작가의 작업실 등을 일반에게 공개함으로써 설립된다. 일종의 기념관이고 전시관이므로 방문객은 문자가 아니라 시각적 이미지를 통해 작가의 문학세계를 체험하게 된다. 그러므로 문학관의 관건은 문학과 문학세계를 어떻게 ‘보여’ 줄 것인가라는 것이 되고, 어떻게 이 체험을 관람객의 개인적인 독서 행위로까지 끌고 갈 수 있는가라는 것이 된다.
형사 메그레 시리즈로 유명한 추리소설 작가 조르주 심농은 사람들 앞에서 즉석으로 소설 한 편을 쓰는 퍼포먼스를 한 적이 있다. 작가의 작품 활동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 것이니 나름대로 문학을 보여주려는 시도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심농은 단순히 글쓰는 모습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작업의 처음과 마지막에 저울위로 올라가 몸무게를 재서 그 차이를 발표했다.
자신이 소설을 쓰는 동안 몸무게가 얼마나 빠졌는지 보여줌으로써, 자신의 창작 에너지를 흘린 땀과 소비한 에너지의 총량으로 환산해서 수치화하고자 했던 것이다. 줄어든 몸무게와 문학 창작이라는 작업의 본질이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시각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양할 수 있겠지만, 심농의 퍼포먼스는 문학을 ‘보여’주려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고민의 크기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문학은 어떻게 체험할 수 있을까
문학을 시각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가? 보여줄 수 있다면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 문학창작의 결과물인 원고인가? 인쇄된 책인가? 아니면 문학창작의 과정인 글쓰기라는 행위인가? 글쓰기를 보여준다는 것은 무엇인가? 펜과 잉크? 컴퓨터? 아이디어와 취재노트? 직접적으로 글을 쓰는 작업뿐 아니라 작가의 사생활도 글쓰기의 일부인가? 작가는 자신의 삶에서 작품의 재료를 얻어내지 않는가? 등등…. 문학과 글쓰기에 대한 수많은 질문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질 수 있다.
이런 모든 질문들은 문학을 ‘책’이라는 것으로만 축소시키면 무의미한 것이다. 과정이야 어떠했든 한 권으로 인쇄되어 세상에 나와 독자가 읽으면 되는 책이 문학의 전부라고 생각한다면 이런 질문들은 필요없다. 반대로 문학관은 이런 질문들로부터 출발한다. 개인적인 독서라는 행위가 가장 중요한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에 이르기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문학에 접근하는 길이 있을 것이라는 전제를 문학관은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문학관은 2000년대 들어 급속히 늘어났으며 한국문학관협회에 따르면 현재 50여개에 달한다고 한다. 그러나 무엇을 보여주고 체험하게 할 것인가라는 점은 여전히 많은 문학관의 고민거리이다. 문학을 문자로만 경험하기를 고집한다면 이런 고민은 필요 없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문학은 보여지고 체험되기를 요구받고 있다.
압축적인 경제개발과정에서 과거의 흔적을 지우기에 급급했던 우리에게는 작가의 생가나 작업 공간이 남아있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그래서 우리의 문학관은 서구와 달리 새로 지어졌거나 복원된 경우가 많고 전시된 자료 중에서도 작가의 삶이나 창작행위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것들이 풍부하지는 않다. 문학관이 관람객들에게 보여줄 ‘물건’들이 별로 없다는 뜻이고, 그만큼 문학관의 활동에 대한 고민은 더 많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추리문학관 개관 20주년 기념 프로그램은 음악회, 강연회, 연극공연, 특별전시 등으로 다채롭게 꾸며졌다. 추리문학관의 개관 20주년을 다시 축하한다. 문학을 ‘보여’ 준다는 것 혹은 문자 이외의 방법으로 문학을 체험하게 한다는 것에 대한 풍성한 고민이 더 많이 오고가는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