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직 묵상] 종말이 있다는 희망

이지선 한동대 교수. 그는 간증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40여 차례나 되는 수술을 거듭하는 동안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은 지금 이 고통이 언제 끝이 날지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버텨야 하는지를 좀 알면 힘을 내보기라도 하겠는데, 그 시간의 끝을 알 수가 없어서 정말 고통스러웠습니다.”  <사진 국민일보 강민석 기자>


석문섭 목사의 잠깐 묵상

‘종말이 있다는 희망'(본문 *에스겔 4-6장)

“내가 그들의 범죄한 햇수대로 네게 날수를 정하였나니 곧 삼백구십 일이니라 너는 이렇게 이스라엘 족속의 죄악을 담당하고 그 수가 차거든 너는 오른쪽으로 누워 유다 족속의 죄악을 담당하라 내가 네게 사십 일로 정하였나니 하루가 일 년이니라”(겔 4:5-6)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에 닥칠 처벌의 기간이 정해졌습니다. 북이스라엘은 390년이고 남유다는 40년입니다.

얼마나 희망적입니까? 끝이 있다는 것은 희망입니다.

이지선씨의 간증 중에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40여 차례나 되는 수술을 거듭하는 동안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은 지금 이 고통이 언제 끝이 날지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버텨야 하는지를 좀 알면 힘을 내보기라도 하겠는데, 그 시간의 끝을 알 수가 없어서 정말 고통스러웠습니다.” 끝이 없을지도 모르는 고통만큼 고통스러운 것이 있을까요?

바벨론으로 잡혀간 유대민족에게 하나님은 끝을 약속하셨습니다. 고통의 기간에 끝이 있다는 것입니다.

끝이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사건이지만 현재에 강력하게 영향을 미칩니다. 고통스러워도 끝이 있다는 것을 알면 견딜만 합니다. 많은 것을 가졌어도 끝이 있다는 것을 알면 소유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지금 누리는 것이 아무리 좋아도 끝이 있다는 것을 알면 집착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기독교의 종말론이 절망론이 아니라 소망론인 이유입니다.

우리의 인생에도, 인류의 역사에도 마무리 할 시간이 올 것입니다. 끝에 가서 어차피 버려야 할 것은 무엇이고, 끝에 가서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지금’이란 어차피 버려야 할 것을 지금부터 놓는 연습, 그리고 끝까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을 지금부터 붙드는 연습을 하는 시간입니다.

베이직교회 아침예배(8.22)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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