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1일] 이스라엘과 아랍에 회담 제의

2007년 이스라엘 총리, 아랍에 회담 제안

2007년 4월1일 에후드 올메르트 당시 이스라엘 총리가 예루살렘을 방문한 유럽연합 의장국인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함께 한 공동 기자회견에서 아랍권에 평화회담 개최를 제안했다. 올메르트 총리는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이 회담을 주선해 나와 팔레스타인 당국을 초대하면 그들 말을 듣고 우리 의견도 밝히겠다”고 말했다.

이스라엘과 아랍권의 다자회담은 1991년 스페인에서 이스라엘·레바논·시리아·요르단·팔레스타인 당국이 만난 이후 열리지 않았다. 요르단과 이집트를 제외한 대부분의 아랍국들은 이스라엘과의 수교나 접촉을 피해왔고, 당시 사우디는 공식적으로는 이스라엘과 교전 상태에 있었다.

이스라엘 총리의 회담 제안은 같은 해 3월28~29일 열린 아랍연맹 정상회의에서 2002년 마련한 ‘아랍 평화안’을 다시 채택한 데 대한 응답으로 볼 수 있었다. 압둘라 사우디 국왕이 주도한 이 안은 이스라엘이 1967년 3차 중동전쟁으로 점령한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지구, 골란고원에서 철수하고 팔레스타인 독립국가가 성립되면, 아랍권은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정상화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올메르트 총리는 아랍권과 5년 안에 포괄적 평화협정을 맺을 수 있을 것으로 최근 전망하는 등 낙관적인 표현을 자주 쓰고 있다. 이스라엘은 그러나 팔레스타인 난민 400만명의 고향 귀환은 불가하다며 ‘아랍 평화안’에 완전히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5년 후 중동의 현실은 더욱 복잡해졌다. 시리아 아사드 정권(이슬람 소수분파 알라위계)에 적대적인 이슬람 수니파의 나라 사우디아라비아와 그에 우호적인 이란(이슬람 시아파), 미국?독일?프랑스 등 서구의 아사드 붕괴 갈망과 중국 및 러시아의 아사드 지지 등으로 중동문제는 해당국가를 벗어나 전 지구적인 문제로 비화됐다. 이스라엘 총리의 회담 주선이 거짓말은 아니었을 텐데.

2004년 구글 지메일 서비스 개시

2004년 4월1일 세계 최대의 인터넷 포털 사이트 구글이 G메일(Gmail)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대용량(계정당 7.1 기가바이트 이상)의 무료 POP3와 웹메일 서비스(IMAP 포함)로 검색 지향적 인터페이스와 ‘대화 형식으로 보기’라는 독특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 Ajax 프로그래밍을 사용한 대표적인 웹사이트이다.

2004년 처음 서비스를 시작한 이후로 계속 베타서비스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구글이 계속적으로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는 “베타서비스라는 명칭으로 자잘한 버그에 대해 책임 회피를 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2003년 중국 영화배우 장궈룽 자살

2003년 4월1일 AFP통신은 홍콩 영화배우 겸 가수 장궈룽(張國榮)이 숨졌다는, 거짓말 같은 속보를 보도했다. 장궈룽은 이날 오후 6시40분 홍콩섬 센트럴(中環)에 있는 원화둥팡호텔(文華東方酒店)에서 투신해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그의 나이 46세였다. 사건 현장에 유서를 남겼다. “최근 정신적 문제로 시달렸다”는 메모도 발견됐다.

1979년 데뷔한 장궈룽은 홍콩 누아르 <영웅본색>의 경찰역으로 전 세계에 깊은 인상을 심어줬다. 그 뒤 <패왕별희> <해피 투게더> 등의 대표작을 남겼다. 쉰이 가까운 나이에도 미소년의 미소를 지닌 그는 전세계적으로 가장 알려진 중국권 배우 가운데 한명이었다.

2001년 미 정찰기, 중국 하이난섬에 비상착륙

2001년 4월1일 오전10시15분 미국 해군 정찰기 EP-3 1대가 중국군 전투기와 충돌한 뒤 중국 남부 하이난섬(해남도)에 비상착륙했다. 이 과정에서 중국군 전투기 1대가 바다에 추락했다. 미국은 “중국 전투기의 위험한 추격과 요격이 사고의 직접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중국은 “미군 정찰기가 비행규칙을 위반하고 방향을 갑자기 바꾸었기 때문”이라고 맞섰다. 사고 뒤 미 정찰기는 하이난섬의 한 비행장에 있으며 승무원 24명은 인민해방군 초대소로 옮겨졌다. 양국은 비상착륙한 미 해군 소속 EP-3 정찰기의 처리를 둘러싸고 외교갈등을 빚어, 미국은 하이난섬 부근 해역에 구축함 3대를 대기시켜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부시 미국 대통령은 정찰기의 손상없는 반환과 승무원들의 즉각적인 송환을 요구했으나, 장쩌민 국가 주석은 “모든 책임은 전적으로 미국이 져야 하며 사과하라”고 강하게 반박했다.

힘겨루기 끝에 결국 미국측이 사과했다. “매우 미안하다(very sorry)”라고. 중국은 같은 해 4월12일 24명의 정찰기 승무원을 석방했다. 사건발생 12일 만이었다.

이상현 기자 coup4u@theasian.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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