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 ‘김옥균’ 장석남 “한 움큼의 나라가 으스러졌다”

눈이 내린다
눈이 내리다가 그친다, 난해한 사랑도 그친다
다시 눈이 내린다
논두렁이 눈에 덮이고 밭두렁이 덮인다

전라도의거문도를영국이라는나라가먹었는데임금은영국이어디붙어있는나라인지아십니까여기신하들은영국이라는나라이름을아는자가있습니까

눈이 오고 온 나라가 눈에 덮인다
박규수 대감 사랑에서
그해 첫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작은 새가 백송(白松) 가지 끝에서 붉게 울다가 날아갔다
나는 주먹을 쥐고 눈길을 걸어 내려왔다
한 움큼의 나라가 으스러졌다

낙원상가를 지나 어린 재필에게 술 가르치던 평화 만들기를 지나
박영효를 불러 오비호프집에서 한잔하고 헤어져
지금은 없어진 종로서적 앞을 지났다 서서 책 보던 집이다

광화문 통을 걷는다
헌데 나를 미행하는 것이 있다
나를 쫓는 것이 있다

반달이었다가 흩어진 별빛이었다가
녹아내린 붉은 그림자였다가
문득 사라진다
눈이 온다
내 발자국이 지워진다

나는 서서히 하늘로
회오리쳐 떠올라 갔다

● 김옥균(金玉均, 1851~1894) 정치가, 개화운동가.
● 장석남 198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등단. 시집 <새떼들에게로의 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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