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인순이가 미 국방부 공연서 던진 이 한마디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미국의 뉴욕 스토니브록대학의 아서 스톤 박사는 2008년 전화번호부에서 무작위로 추출한 18~85세 미국인 3만4천여명을 대상으로 삶의 만족도를 조사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일반인들의 생각과는 달리 85세에서 만족도가 가장 높았다. 가장 낮은 시기는 50대 초반이었다. 과학자들이 내놓은 결론은 인생의 황혼 무렵이 절정이었다.
조사결과의 만족도 그래프는 대체로 U자형 곡률을 그리고 있다. 20세 전후에 높은 수준을 보인 뒤 50대 초반에 최저점으로 떨어진다. 이후 다시 높아져 60대 후반엔 20대와 같아지고 85세에 최고점을 이룬다.
만족도가 U자형 곡선을 이루는 까닭은 삶의 스트레스가 50대 초반으로 갈수록 높아지다가 황혼기에 낮아지기 때문이다. 사회 활동이 가장 왕성한 장년기에는 집, 재산, 사회적 지위, 자녀학교 등을 타인과 비교하면서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80세가 넘어가면 평온하고 고요한 사람으로 변한다.
아쉽게도 우리나라에선 노후 준비 부족으로 노년 만족도가 떨어지는 것으로 나왔다. 노년의 행복을 위한 준비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U자형 만족도는 우리에게 긍정적인 메시지를 제공한다. 나이가 드는 것은 삶의 끝이 아니라 정점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다.
인생은 아름답다. 노년은 더욱 아름답다. 왜냐하면 늙는다는 것은 삶의 절정으로 나아가고 있는 중이니까. 그렇다고 늙은이에게만 인생의 절정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름다운 여가수 인순이가 있다. 그녀는 불행한 환경 가운데 태어났다. 그러나 늘 밝고 당당하게 살고 있다.
인순이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제가 혼혈아라는 우리 사회의 편견을 극복하고 누구보다 밝고 당당하게 살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제 자신의 삶의 배후에 사랑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렇게 생각하고 살았기 때문이지요.”
기자가 “인생의 최고 절정의 순간은 미국 카네기홀 공연이었나요?”라고 묻자 그녀는 아니라고 했다. “뉴욕 카네기홀 공연 후 바로 이어서 가진 워싱턴 국방부 공연이 제 인생의 최고의 순간이었어요.” 그 공연 전에 그녀는 특별히 그 자리에 6·25전쟁 참전용사들을 많이 참여시켜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그렇게 마련된 자리에서, 장내에 가득한 참전용사들 앞에서 이런 고백을 했다. “여러분 모두가 제 아버지이시고 저는 당신들의 딸입니다. 혹시라도 저와 같은 딸을 둔 것 때문에 너무 가슴 아파하지 마세요. 저는 당신들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저는 진리의 사랑 때문에 태어난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지금 절대 불행하지 않습니다. 아름다운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저는 이 말을 하려고 여기에 왔습니다. 저의 아버지들이여! 사랑합니다.”
가수 인순이는 그 순간이 인생의 절정이었다고 했다. 자신의 운명을 애꿎은 모습으로 만들어 놓은 그 사람들을 향해 용서와 사랑, 그리고 축복을 듬뿍 주었던 것이다.
정조 시대 심노숭(沈魯崇, 1762~1837)의 <자저실기>(自著實紀)를 보면, 노인의 다섯 가지 즐거움에 대해 논한 대목이 있다. “사람이 늙어 가면 눈은 흐려져 책을 못 읽고, 이는 빠져 잇몸으로 호물호물합니다. 걸을 힘이 없어 집에만 박혀 있고, 보청기 도움 없이는 자꾸 딴소리만 합니다. 마지막엔 여색(女色)을 보고도 아무 일렁임이 없습니다.”
심노숭은 다섯 가지 즐거움이 있다고 하였다.
첫째, 보이는 것이 또렷하지 않으니 눈을 감고 정신을 수양할 수 있고, 둘째, 단단한 것을 씹을 힘이 없으니 연한 것을 씹어 위를 편안하게 할 수 있고, 셋째, 다리에 걸어갈 힘이 없으니 편안히 앉아 힘을 아낄 수 있고, 넷째, 나쁜 소문을 듣지 않아 마음이 절로 고요하고, 다섯째, 반드시 망신(亡身)을 당할 행동(行動)에서 저절로 목숨을 오래 이어갈 수 있다.
이것을 다섯 가지 즐거움이라 했다. 절정은 노력하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