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100주년] 심상정 “나는 꽃이되 불꽃처럼 살겠소”···정미(丁未) 의병 여러분께
[아시아엔=심상정 정의당 대표] 작년 절찬리에 방영된 드라마 <미스터션샤인>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야겠습니다. 마지막 회, 고애신의 부탁으로 영국 기자가 찍은 의병들의 사진이 112년 전 여러분 열두 분의 모습과 겹쳐지던 그 장면…. 처음에는 번개를 맞은 듯 소름이 끼쳤고, 이내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습니다. 오늘날의 저희에게는 역사 교과서 한 귀퉁이에 실린 사진으로 익숙한 여러분의 모습이 눈앞에서 살아 숨 쉬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어느 시대를 살아가던 이였건 간에 저마다의 꿈이 있었을 겁니다. 여러분께서도 그랬겠지요. 제가 드라마 한 편을 보면서 그토록 가슴이 아팠던 것도 그 때문입니다. 바라던 것이 명예와 돈이었든 아니면 속마음 깊숙이 숨겨진 연정이었든, 굳이 파헤칠 필요는 없습니다. 최후의 순간, 그들의 선택은 조국이었습니다. 기쁨과 슬픔, 사랑과 욕망은 제멋대로 엇갈렸으나, 망해가는 나라의 단말마를 외면하지 못하고 끝내 한곳에 모인 젊은이들.
독립운동은 어느 특별한 사람만의 이념이나 사상이 아닌, 모두의 대의(大義)였습니다. 누구나 출발은 다른 법이고 때로는 너무 멀리 빗나가기도 하지만, 그래도 결국에는 만나게 되는 지점 말입니다. 못되고 못난 무리를 제외하면, 열정의 밀도에 차이는 있을망정 시대를 거역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어떻게 아느냐고요? 독립운동의 격랑이 지난 후로도 한반도는 독재정권에 맞서 민주화를 위해 뜨겁게 싸우는 사람들의 땅이었습니다. 저도 제 시대를 나름 치열히 살아가는 중입니다.
“나는 꽃이되 불꽃처럼 살겠소.” 고애신(드라마 <미스터션샤인>의 주인공)의 결연한 한 마디가 잊고 지냈던 제 청춘의 한 장면을 불러내었습니다. 스물한 살에 위장취업해 솜털 같은 어린 여공들이 밤낮없이 착취당하던 구로공단에서 노조를 결성하다 쫓겨났던 때, 노동자를 인간으로 대접하지 않는 막무가내 기업주들에 맞서 핏발선 눈으로 파업 계획을 짤 때, 손톱만큼도 손해 보지 않으려는 기득권층이 판치는 국회에서 뱀의 지혜라도 빌리고픈 심정이었을 때, 그리고 무엇보다도 영원한 동지들이 우리 곁을 떠나던 그 참담한 순간….
철의 여인, 인민무력부장이라는 별명이 붙은 노동운동가이자 진보정치인인 제게도 소박한 꿈을 꾸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꽃피는 봄, 연애를 실컷 해보고 싶고 수험서 아닌 소설과 역사책을 마음껏 읽는 것이 목표였던 시절 말입니다. 재수 생활이 너무 힘들었기에 대학에 들어가면 캠퍼스의 지성과 낭만을 만끽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유신 독재정권의 시퍼런 서슬 아래에서도 운동권에는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 교육을 통해 사회에 도움이 되어 보겠다는 소신이 뚜렷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성과 낭만의 캠퍼스에는 이미 사복경찰이 쫙 깔려있었습니다. 여행을 가려고 해도 불심검문에 번번이 가로막히고, 책이라도 마음 편히 읽으려고 하면 금서(禁書)로 지정되곤 했습니다. 마음에 든 남자친구와 사귀어보려고 해도, 그가 깊이 빠져있는 운동권에 발을 디뎌야 했습니다. 소박한 꿈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독재정권과 맞서 싸워야 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지금 제 손에는 F. A. 매켄지의 <대한제국의 비극>이 들려 있습니다. 지구를 반 바퀴 돌아 여러분을 찾아왔던 영국인이 쓴 책입니다. 기억하시지요? 한민족의 운명을 안타까워해주던 파란 눈의 친구를. 그가 찍은 여러분의 사진이 이 책에 실려 오늘날 대한민국에 전해졌고, 그 덕분에 저희는 여러분의 이름은 몰라도 얼굴은 알고 있습니다. 유생·해산군인·평민·천민의병장·농민…. 입성만큼이나 다양한 배경의 민초들이 조국을 위해 굳은 입매와 단호한 눈으로 정면을 응시하는 그 얼굴들이요. 여러분 중에는 열네 살, 열다섯 살 소년도 있었습니다. 어린 투사의 앞날을 걱정하는 매켄지에게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다지요.
“우리는 어차피 죽게 되겠지요. 그러나 좋습니다. 일본의 노예가 되어 사느니보다는 자유민으로 죽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여러분께서 그때 그 자리에 서 계셨기에, 여러분께서 자유민으로 죽기를 결심하셨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습니다. 여러분이야말로 대한민국의 원점(原點)입니다. 여러분의 삶이야말로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할 역사의 진실입니다. 차라리 자유민으로 죽고자 항일투쟁에 나서는 이름 없는 의병의 목소리. 사람답게 살겠다며 독재정권에 맞서는 맨주먹. 정미의병의 뜨거운 피는 1919년 만세운동으로 이어졌고,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었습니다. 양반도 황실도 아닌 국민이 주인인 민주공화국의 시작이었습니다. 그 어떤 이념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우리의 뿌리는 이런 것이어야 합니다.
중국 상해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가 있습니다. 광복 이후 관광지가 되었는데, 상해 시정부가 관리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곳을 세 번 방문했습니다. 건물을 다 돌아보고 나올 즈음이면, 청사 건물의 유지보수를 위해 관람객에게 후원을 부탁하는 안내방송이 나옵니다. 그 방송을 들을 때마다 저는 내 삶의 일부를 빼앗긴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헌법에 임시정부 법통을 이어받는다고 해놓고, 우리는 이리도 무심했습니다. 임시정부 청사 방명록에 박힌 대한민국 대통령들의 서명을 보기가 민망하기만 합니다.
여러분께 부끄럽고 망극한 고백을 드리려고 합니다. 저희는 도둑처럼 다가온 해방과 해일처럼 밀려든 산업화에 떠밀려 책임과 단죄의 시기를 여러 번 놓쳤습니다. 올바른 역사는 진실로만 채워져야 합니다. 진실을 건너뛴 화해나 타협은 왜곡입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진실을 물려줄 의무를 지고 있습니다. 그 책임을 확인하는 ‘100주년’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도 국회 정문 앞에서는 분단과 전쟁의 상흔으로 고통받는 유가족들이 매일같이 1인 시위를 하고 계십니다. 그분들을 매일 지나치고 있는 저는 죄인입니다. 소수정당의 설움도 변명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시절 조선 어딘가에서 자유를 향한 불꽃을 태웠을 수천수만의 이름 없는 영웅들에게 무한한 존경과 감사를 담아 <백년편지>를 바칩니다. 태백산과 백두산을 넘고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너 독립의 수호신이 되신 정미의병 숭고한 넋에게, 마지막으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목청껏 불러드리고 싶습니다.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2019년 3월 심상정 드림
* 정미(丁未) 의병
1907년 일제가 대한제국 군대를 해산시키자, 참령 박승환(朴昇煥)이 자결하고, 시위대 장교와 병사들은 남대문 일대에서 일본군과 사생결단의 교전을 벌였다. 이 전투로 봉화가 솟아 을미년에 이어 방방곡곡에서 의병이 봉기했으니, 이들을 가리켜 정미(丁未) 의병이라 한다. 일제는 소위 ‘남한대토벌작전(1909)’을 벌여 두 달 동안 남한 전역에서 약탈과 살육을 자행했고, 살아남은 의병들은 국경을 건너 만주에서 독립군의 정예로 끝까지 싸웠다. 오른쪽 사진은 <데일리 메일>의 극동특파원 매킨지가 1907년 양근(현재의 양평은 양근과 지평이 합쳐진 지명)에서 촬영했으며, 드라마 <미스터션샤인>에 등장해 온 국민을 울린 바로 그 사진이다..
1959년 경기 파주에서 태어났다. 역사 선생님이 되겠다는 꿈을 접고 학생운동에 뛰어들어 반독재투쟁에 나섰으며, 구로동에서 미싱공으로 위장취업해 한국전쟁 이후 최초의 지역총파업인 구로동맹파업을 조직했다. 9년간의 수배 생활을 하며 노동운동을 이어갔고, 전국금속노조 사무처장으로 활동하며 ‘철의 여인’이라 불렸다. 2004년 민주노동당 비례대표로 당선, 현재 덕양갑 지역구 3선 국회의원이다. 진보정치의 아이콘으로 정의당을 이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