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루언서 혹은 ‘관종’, SNS 스타 다큐 ‘아메리칸 밈’
[아시아엔=김병모 <아시아엔> 기자, 스탠드업 코미디언] 앤디 워홀은 누구나 TV 앞에서 15분 안에 유명해질 수 있다고 이야기한 바가 있다. 하지만 정말로 누구나 유명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평범한 사람이 평범한 공간에서 평범한 행위를 하는 것을 SNS에 쓰는 건 수십억명이 이미 컴퓨터나 스마트폰 앞에서 하고 있기 때문에, 유명세를 얻기 위해선 남들과 달라야 한다.
문제는, 아름다운 미디어의 생산자가 되거나, 의미 있는 내용을 재치있게 전달하거나, 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인간이 되거나, 아주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방식을 고안해 내는 식으로 다른 사람과 달라지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한 것들을 할 수 없지만 빠르게 유명해지고 싶은 사람들에게 남은 선택지는 사회적 규범을 위반하는 것밖에 없다.
쇼팽의 연습곡을 완벽하게 연주할 수 있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지만, 곰 탈을 쓰고 경찰차에 접근해서 경찰을 놀래키는 것 또한 흔한 일이 아니다. 이러한 기행들로 유명해지는 것은 피아노 콩쿨과 같이 굉장히 경쟁적이고, 어렵다. 모두가 비슷한 수준의 기행을 할 때 좀 더 튀는 기행을 하는 사람이 더 유명세를 얻게 되고, 결국 모두가 그 기행 경주에 참여하게 된다. 그에 따른 SNS의 명성은 돈이 된다. 광고주들이 수많은 팔로워를 가진 이 ‘인플루언서’들에게 광고비를 지불하거나, 행사에 초대하게 되는 것이다.
넷플릭스에서 공개한 다큐멘터리 <아메리칸 밈>은 2018년 12월 7일 전세계 동시 공개된, SNS에서 엄청나게 많은 유명세와 팔로워를 확보한 사람들, 즉 이런 ‘인플루언서’들에 대한 이야기다.
문신가게에 있는 19세와 21세의 평범한 남녀 커플은 SNS스타 사진사 키릴 비추스키(2018년 12월 현재 인스타그램 팔로워 백십만명)의 인스타그램 아이디인 Slut Whisperer를 문신으로 새기면서 이야기한다.
“우리 커플은 당신이 써주는 글을 커플 문신으로 새길거에요.”
“보통 제가 써드리는 글은 제 인스타그램 아이디인데,괜찮겠어요?”
“예상했던 바였어요. 상관없어요.”
“그런데 두 분 사귀신 지는 얼마나 되셨죠?”
“열흘이요.”
“평생 가시겠군요. 나중에 손주들에게 자랑하세요.”
그들의 인스타그램 아이디는 키릴의 1.1백만명 팔로워짜리 계정에 올라간, 엉덩이에 샴페인을 퍼붓는 동영상에 태그된다. 단지 단 한번 SNS에 올려져 백만명 앞에 노출되기 위해서 평생 몸에 지니고 살아야 할지도 모르는 문신을, 만난 지 10일 된 애인과 함께 새기는 행위는 분명히 무언가 평범함을 벗어나는 행위지만, SNS에서 유명해지기 위해서는 그들은 기꺼이 그것을 감수한다.
사진사 키릴은 클럽 한복판에서 찍은 사진을 올리며 “난 곧 죽을 거야”라고 트위터에 글을 올렸을 때의 경험에 대해 이야기한다.
“토요일엔 보통 1시간을 자고, 일요일엔 2시간, 월요일엔 4시간을 잡니다. 이 사진을 찍었을 땐 정말 자살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수백통의 연락을 받았어요. 키릴, 당신과 파티도 한번 같이 해본 적 없는데, 죽으면 안 돼요.”
키릴은 코미디클럽 등지에서 유명인들 사진 찍은 것을 레코드사에 판매하게 된 걸 계기로 유명세를 얻어, 지금은 클럽에서 벌이는 파티에 참석해 찍은 사진들을 통해 막대한 팔로워를 모은 사진사다. 그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업로드되는 사진들은 주로 샴페인을 여성의 얼굴이나 노출된 신체에 뿌려대는 사진이나 인터넷 밈(Meme, 리처드 도킨스의 조어로 확산 혹은 자가복제력을 가진 문화적 요소로 현대에는 주로 인터넷에서 유행하게 되는 요소들을 칭함), 그리고 우스꽝스러운 옷을 입은 자신의 사진이다.
2017년 1월 서비스가 종료된, 7초짜리 동영상을 공유하는 어플리케이션 Vine에서 총 42억회의 동영상 조회수를 기록한 브리트니 펄란(인스타그램 팔로워 240만명)은 처음엔 배우 지망생으로 헐리우드에 왔고, 그녀의 말을 빌어 표현하자면 “당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사기를 다 당한 후” 무명배우로 살면서 Vine이라는 앱을 통해 찍은 다소 자극적인 7초짜리 동영상들로 삽시간에 유명해졌다. 하지만, Vine 서비스 종료 이후 다시 배우의 길을 걷고자 했을 때, 대부분의 오디션에서 진지한 역을 맡을 수 없었다고 토로한다. “저는 항상
Vine에서 개 머리를 입에 넣은 동영상의 그 여자 이상 취급을 받을 수 없었어요.”
‘힐튼 가의 상속녀’라는 별명을 가지고 대표적인 파티 걸 이미지로 수십년 동안 미디어의 주목을 받아왔던 패리스 힐튼(인스타그램 팔로워 990만명)은 “더 이상은 매일 파티에서 다음 파티로 지속되는 삶을 살 수는 없을 것 같다”고 고백하면서, “파파라치가 따라붙지 않는 지역의 거리를 걸을 때도 셔터 소리의 환청을 듣는다”고 이야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상식이나 포토라인에서 비껴날 수 없어요. 무언가 하지 않으면 불안해요. 병 같은 거죠. 제 복제품이 저 대신 일을 해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저는 제 삶을 살고요. 이건 진짜 삶이 아니잖아요.”
그런데 이런 ‘인플루언서’들은, 왜 ‘진짜 삶’을 포기하면서까지 유명해지고 싶어할까? 물론 돈 문제도 있지만,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서라고 보긴 힘들다. 사회적 규범을 위반하여 유
명해진 이들은 상당히 많은 악성 댓글과 부정적인 반응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브리트니 펄란의 경우 6살에 부모가 이혼한 후, 고교시절 아버지가 새 상대를 만나기 시작하고, 또다시 버려지는 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에 자해를 하는 행동을 보였던 경험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버려지는 느낌을 느끼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관심을 추구하는 경향을 보였다고 해석할 여지가 있다.
이 다큐멘터리에서 주목한 또다른 인플루언서 ‘더 팻 쥬’ 조쉬 오스트로브스키는 아역 배우로 허쉬 CF에 출연한 후 학교의 최고 유명인사가 된 이후,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이야기한다. “그 뒤로 다른 배우일은 못 했었어요. 아버지가 왜 또다른 일을 하지 않느냐고 하더라구요. 전 아직 12살이었을 뿐인데.” 그리고 그는 오랜 동안 관심을 받지 못한 끝에, 서른이 넘은 나이에 인터넷 유명인이 되었다. 이들은 대체로, 공통적으로 성장기의 어떠한 시절에 본인이 원하던 만큼의 충분한 관심이나 돌봄을 받지 못해 외로움에 시달렸던 경험을 가지고 있다.
이들 인플루언서들은 한 목소리로 SNS를 하지 않을 때 들게 되는 공허감을 호소한다. 끊임없이 사진을 올리면서. 하지만 그러한 느낌을 느끼는 게 꼭 유명인만은 아닐 것이다. 잊혀지길 바라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다만 SNS의 밖에서, SNS에 게시할 수 없는 자신을 볼 때 공허함을 느끼지 않기 위한 노력 또한 필요하다. 진짜 세계에서는 그 세계에 대한 노력이 필요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