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공화국 “내미는 손, 뿌리치지 말자. 촛불처럼”

내미는 손, 꼭 잡아주자. 힘들 땐 함께 가자. 부끄러워 할 건 아무 것도 없다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지난해 9월 포항 국도변 승용차서 20, 30대 4명이 쓰러진 채 발견 돼 그 중 한명이 죽었다. 또 최근에는 택시 운전사가 ‘카카오택시법’에 반대하며 연이어 분신자살을 감행했다.

왜 이런 사태가 연 이어 벌어지는 것일까? 2005년부터 2017년까지 대한민국이 OECD 나라 중 자살률 1위였다는 건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특히 2012년 통계에서는 OECD 평균에 비해 2.6배 높은 1등이었다. 그리고 2018년에는 OECD 2위를 기록했다. 이것은 자살률이 떨어진 것이 아니라 한국보다 자살률이 더 높은 리투아니아가 새로 OECD에 새로 가입했기 때문이다.

결국 한국의 자살률은 OECD를 넘어 세계 순위에서 최 상위권에 있다. 자살은 현대로 올수록 △과학기술이 발전할수록 △거주하는 사회가 조밀해질수록 △국민소득이 높아질수록 더욱 심해진다.

자살, 참 안타까운 일이나 자살도 행위이니 과보(果報)가 없을 수 없다. <화엄경>(華嚴經)에 “온갖 중생은 자기의 번뇌로 지어진 업(業)에 의해 그 몸과 사는 세계를 스스로 만들어 간다. 하나하나 자기의 몸과 사는 세계와 수용해 지니는 것을 스스로 이루는 것이지, 업을 제쳐놓고 다른 무엇이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하였다.

업은 살아있는 동안 지어서 받는 현세보(現世報)도 있지만, 죽은 뒤나 먼 미래에 받는 미래보(未來報)도 있다. 그래서 자살을 하는 것이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 해도 자신에게 업을 짓는 것이 되므로 언젠가는 그 과보를 받게 된다. 자살의 과보는 여러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즉 다음 생의 몸을 받을 때 △지옥에 떨어지거나 △목숨에 대한 고통을 겪거나 △일찍 죽게 되는 과보를 받을 수도 있다.

어떤가? 자살의 과보가 무섭지 않은가? ‘자살’을 반대로 읽으면 ‘살자’다.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은 역으로 보면 가장 살기를 소망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소태산(少太山) 부처님께서는 “살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죽어지는 이치를 알지 못하고, 자살을 도모하는 사람이 다시 살아지는 이치를 알지 못한다”고 했다.

우리가 정신수양을 하는 것은 최종적으로 자살을 방지하고, 온전한 정신을 얻어 자주력을 양성하기 위해서다. 우리 한국이 세계적으로 부끄러운 통계가 있다면 ‘자살공화국’이라는 오명이다.

한국의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2003년부터 15년 동안 ‘부동의 1위’다. 우리가 주목할 대목은 자살률이 유독 눈에 띄게 증가한 시기에 늘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등 경제위기가 있었다는 점이다.

그럼 한국이 왜 유독 경제위기 때 자살률이 치솟을까 하는 점이다. 대개 자살원인을 개인 문제로만 보는 경향이 많은데 우리나라는 경제, 사회적 요건도 크게 작용하는 것 같다.

한국은 사회안전망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경제성장이 급속도로 이뤄지고 노동시장 유연화가 가속화되는 과정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사람들은 좋고 나쁘고를 떠나 급격한 환경이나 체제 변화에 인간은 가장 큰 혼란과 스트레스를 겪게 된다.

외환위기, 금융위기가 닥쳤을 때 이를 극복한 방법은 금융사들이 해고를 늘리고 채권을 회수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제일 먼저 취약계층에 타격이 왔다. 그리고 자살의 또 다른 특징은 점염성이 있다는 것이다. 사회학자 데이비드 필립스(David Fhilips)는 20년간 자살을 연구하여 유명인의 자살이 언론에 보도된 후 자살률이 급증하는 베르테르 효과를 입증하였다.

‘베르테르 효과’란 자살사건이 신문 등의 미디어를 통해 크게 알려지면, 이후 모방자살이 증가하는 현상을 말한다. 괴테(Goethe)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인기를 끌자, 유럽 전역에서 소설 주인공 베르테르처럼 권총자살하는 사건이 확산된 현상에서 유래했다. 주로 유명인이나 충격적인 자살사건이 대대적으로 보도되면 비슷한 형식의 자살이 늘어난다는 이론이다.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의 전홍진 교수팀도 한국에서의 베르테르효과를 입증했다. 유명인 1명이 자살하고 한 달 간 하루 평균 자살 빈도가 36.2명에서 45.5명으로 25.9%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일본의 대표적 베르테르효과는 노벨문학상 수상자이자 <설국>(雪國) 작가인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효과다. 가와바타가 자살하자 약 3000명이 동반 자살을 시도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후 일본은 자살방지법을 만들어 자살 동기, 도구, 방법 등을 언론에서 공개하는 것을 금지시켰다.

자살을 기도하는 사람은 살고자 하는 욕망이 지나친 사람일 수 있다. 하지만 자살하는 심정이 오죽할까? 세상에 대한 원망이나 분노, 슬픔, 괴로움으로 자살하기 마련 아닌가? 이런 상황에서 좋은 과보를 바라는 것은 매우 힘들 다. 혹 다음 생에 대한 기대로 자살한다고 해도, 그건 욕심에 속해서 나쁜 곳에 태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만에 하나 자살을 결심했더라도 세상에 대한 원망, 분노, 슬픔 등 해로운 마음을 가진 채 죽어버리면, 결과가 좋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법상한 사람들은 현세(現世)에 사는 것만 큰일로 알지마는, 지각(知覺)이 열린 사람은 죽는 일도 크게 안다.

잘 죽는 사람이라야 잘 나서 잘 살 수 있으며. 잘 나서 잘 살 수 있는 사람이라야 잘 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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