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되신 날 2607주년 ‘성도절’ 열린선원 단상
[아시아엔=법현 스님, 열린선원 원장] 어제(음력 12월 8일)는 성도절, 부처님이 되신 날이다. 부처님 되신 지가 올해로 2607년 된 것이다. 금년이 불기 2563년, 부처님은 35살에 깨달음을 얻어 45년 동안 사셨다. 둘을 더해야 깨달음의 햇수가 나온다. 부처님 열반하신 해를 기준으로 하기에 그렇다.
열린선원은 그런 계산법을 가지고 행사를 하고, 기리고 있다. 물론 그건 우리들의 계산법이고, 우리들의 생각일 뿐 법칙은 아니다.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으신 날, 부처님이 되신 날, 도를 이루신 날을 ‘성도절’(成道節)이라 한다. 어제 음력 12월 8일도 정해진 것은 아니다. 다만 지역과 나라의 음력 계산법이 달라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카렌 암스트롱이라는 수녀출신 신학자 겸 종교학자가 쓴 <The Great Turning Point>라는 책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축의 시대>라는 이름으로 옮겨졌다. 거기에 부처님 이야기도 나온다. 축의 발명은 사람과 물건을 한꺼번에 많이 옮기는 문명 대전환의 계기가 되었다. 마찬가지로 축과 같은 역할을 하는 어떤 지도자가 있느냐는 것이 그 책의 화두다.
불교에서는 절대자가 짐을 날라주듯 건져주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건지는 방법을 일러줘서 스스로 실천하다 보면 때가 되어 한꺼번에 자기가 자기를 건진다고 한다.
“이게 불교의 기본원리다. 그것을 안 위대한 사람이 석가모니다. 최고의 방법론으로 팔정도를 찾아 퍼트렸다”고 말한다. 지금 우리가 ‘부처님 되신 날’을 기념하고 부처님 되어 보려고 하는 이유는 “내 스스로가 자기계발을 할 수 있다”는 걸 가르쳐준 사람이 부처님이기 때문이다.
부처님 방법이 당시에는 이 사람 저 사람 따라서 했지만 ‘위파사나 관찰법’을 통해 부처님이 되신 거다. 몸과 마음을 고요히 가지런히 하는 것이 먼저 이루어져야 관찰이 제대로 된다. 호흡이나 느낌을 살펴 가능하다. 그런 연후 법칙을 살펴보면 법칙이 보인다.
차를 몰고 가다가 접촉이 났다. 우리는 ‘사고’라고 말하지만 ‘접촉현상’일 뿐이다. 부딪칠만한 상황이 됐을 때 부딪치는 거고 그런 상황이 아니면 안 부딪치는 거다. 사고든 사고가 아니든 현상일 따름인데 안 날 줄 알았는데 났다고 생각하는 게 사고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것을 아는, 현재 우리가 삶 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사고’라고 볼 것인가 ‘현상’이라고 볼 것인가 판단하게 하는 것 이것이 우리의 공부다. 그래서 호흡선, 숨살핌선을 한다. 인도어로 아나빠나사띠라고 한다.
우리는 긴 이야기를 무엇을 통해서 했나? 말씀을 통해서 전달했나? 이해가 되도록 설명했나? 문장의 뜻, 단어의 개념을 설명하느라 길어졌나? 우리나라 말을 가지고 우리나라 사람 그 가운데에도 불교정서를 가진 분들에게 이야기하는데도 이해가 쉽지 않다.
지역이 다르고 민족이 다르다면 더 어려울 것이다. 같다고 할지라도 나이, 학력, 성향, 종교 등이 다르면 더더욱 어렵다. 말씀 속에 들어있는 제 뜻, 본 뜻, 행간에 숨어 있는 뜻을 살피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그야말로 살고 죽는 것, 행·불행이 달려있다. 부처님이 되신 날 떠오른 단상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