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이 ‘치마 벗는 소리’에 파계한 스님 이야기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세상에 가장 아름다운 소리는 무엇일까? 누구는 ‘여인의 치마 벗는 소리’ 즉 ‘해군성’(解裙聲)이라 한다.
30년을 벽만 쳐다보고 도를 닦은 스님이 계셨다. 황진이(黃眞伊)는 자신의 여자됨의 매력을 시험해 보고 싶었다. 비오는 어느 날, 황진이는 절집으로 스님을 찾아가 이 깊은 밤 산속에서 갈 데가 없으니 하룻밤 재워 달라고 애원한다. 비에 젖은 여인의 모습이 여간 선정적(煽情的)이 아니다. 거기에 남자에게는 보호본능을 불러일으키는 가련함이 더해 이런 유혹을 떨치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닐 것이다.
스님은 너무나 담담하게 그러라고 승낙한다. 이미 도(道)의 경지에 있었던 터라 여인과 한방에 있다가 유혹을 해도 파계(破戒)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산사(山寺)의 방에는 희미한 촛불만 타고 있었다. 돌아 앉아 벽을 보고 지그시 눈을 감고 있는 스님의 등 뒤에서 여인은 조용히 옷을 벗기 시작했다.
‘해군성(解裙聲)’-벗을 해(解), 치마 군(裙), 소리 성(聲)- 희미한 어둠 속에서 여인의 치마 벗는 소리만큼 아름다운 소리가 또 어디 있으랴? 이 소리에 한 순간 무너지고만 스님은 송도삼절(松都三絶)의 하나인 지족선사(知足禪師)였다는 얘기가 있다.
황진이는 우리나라 문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아름다운 글을 남긴 여류 시인이다. 황진이는 여성의 자존심을 한껏 높여준 여인으로서 애절하고 호소 어린 시조의 이면에는 여성의 자존감과 높은 식견, 굳센 의지, 따뜻한 정이 그대로 베어난다. 감칠맛 나는 그녀의 시조는 우리나라 고대문학사에 길이 남을 명시로 뽑힌다.
황진이는 여자인 자기 자신을 산(山)에 비유하고 남자는 모두 물(水)로 비유하였다. 청산은 변하지 않는데 남자(물)만 지조(志操) 없이 변한다고 표현하고 있다.
청산리(靑山裏) 벽계수(碧溪水)야 수이 감을 자랑마라
일도창해(一到滄海)하면 돌아오기 어려오니
명월(明月)이 만공산(滿空山)하니 쉬어 간들 어떠리
청산(靑山)은 내 뜻이요 녹수(綠水)는 님의 정(情)
이 녹수 흘러간들 청산이야 변(變)할손가
녹수도 청산(靑山)을 못 잊어 울어 예어 가는고
동짓(冬至)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베어내어
춘풍(春風)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른님 오신 날밤이어든 굽이굽이 펴리라
가히 절창(絶唱)이라 할 수 있지 않은가? 필자도 한때 시에 미쳐 시집을 세권이나 낸 시인(詩人)이었다. 그러나 황진이의 시조를 읽고 나면 나의 미숙한 시집이 참으로 부끄러워진다. 옛 시인묵객(詩人墨客)들은 이 ‘해군성’을 가장 아름다운 소리’로 인정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조선 효종 때 홍만종의 <명엽지해>(蓂葉志諧)에 소리의 품격을 따지는 것이 나온다. 정철(鄭澈)은 ‘달빛을 가리고 지나가는 구름소리’라 했고, 심희수(沈喜壽)는 ‘단풍을 스쳐 지나가는 바람소리’라 했다. 또 이정구(李廷龜)는 ‘산골 마을 초당에서 도련님의 시 읊는 소리’라 했다. 서애(西厓) 류성용(柳成龍)은 ‘새벽 잠결에 들리는 아내의 술 거르는 소리’라 했다.
단연 으뜸은 오성대감 이항복(李恒福)의 ‘깊은 골방 안 그윽한 밤에 아름다운 여인의 치마 벗는 소리’였다고 한다. 어떤가? 이들의 풍류(風流)와 해학(諧謔)과 멋! 정말 한 시대를 풍미하고도 남기에 족하지 않은가?
안녕하세요.
“달 월(月)이 아닌 “더 붉을 달 월”에 의한 “월침삼경”과 “공산명월”은 어떠한지요?
황진이 실력에 누구나 알고 있는 “달 월”은 너무 작은 표현이 아니겠는지요?
2021.10.13 단월(丹月:RedMoon) 배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