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의집’②] 자유를 향한 끝없는 갈망, 꺾을 자 누구?

자유를 향한 갈망. 사진은 미얀마 민주자유총선 당시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을 지지하는 국민들이 개표상황을 확인하며 환호하고 있는 장면. <사진=신화사/뉴시스>

[아시아엔=박상설 <아시아엔> ‘사람과 자연’ 전문기자, <잘 산다는 것에 대하여> 저자] 이런 연유로 그간의 비밀이 남편에게 드러나게 된다. 남편 헬메르는 강직하고 융통성이란 전혀 없는 재미 없는 인물이다. 일생을 통해 남에게 돈을 빌린다는 것은 용납될 수 없는 일이라고 여기는 고지식한 남자였다. 그는 그간 노라가 힘겹게 살림을 꾸려온 것에는 냉담하며 오로지 자신만의 출세욕에 매몰된 독선자였다. 그는 노라를 비난하고 “결혼생활은 이제 사람들에게 형식적으로 보여 주기 위한 것일 뿐”이라며 노라는 아이들을 교육시킬 자격이 없다고 선언하기에 이른다.

독립된 한 자유인의 결행

그는 노라의 경솔한 짓 때문에 자신의 인생을 망쳤다며 노라를 궁지에 몰아놓고 모욕하게 된다. 이러한 와중에 크로그스타드는 린데 부인의 권유로 마음이 바뀌어 차용증서를 돌려주었다. 그러자 남편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노라를 용서하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노라는 이미 늦었다고 깨닫는다. 그들의 결혼생활은 한번도 진실된 적이 없었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끼는 순간이다. 정신적 파경에 이른 것이다. 노라는 아내나 어머니이기 전에 한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찾아 허위와 위선뿐이던 ‘인형의 집’을 냉정하게 떠난다. 노라는 자기 발견과 동시에 인형같은 삶에서의 해방을 단행했다.

“남편의 목숨을 구할 권리가 아내에게 없을 리가 없어요!”라고 소리치던 그였다. 노라의 눈에는 그런 남편이 늘 남처럼 보였다. 그래서 노라는 결국 결혼반지와 3명의 자식들을 남편에게 남겨둔 채 집을 나간다. 이 행동이야말로 그녀가 인형과도 같은 아내의 자리에서 탈피했음을 뜻한다. 노라는 진정한 자유로운 인간이고 싶었던 것이다.

나도 한 인간이고 싶어

이 문제극을 통하여 3명의 자식들을 남겨 놓고 가출하는 노라의 행위는 1879년 그 무렵에는 대단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논란의 하나는 노라의 가출은 여성으로서 있을 수 없는 행위라고 비난하는 보수주의자들과 또 한편에서는 노라야말로 새로운 여성상의 행로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 진보진영으로 나뉘었다. 3막으로 구성된 희곡의 무대는 헬메르의 집에 한정되어 있다. 크리스마스 축제를 전후하여 3일 동안에 모든 스토리가 벌어지는 압축된 형식의 극이다.

“여자들에겐 단 두 가지의 열정이 있는데 그것은 허영심과 사랑”이라고 말한 영국의 체스터 필드경을 떠올린다. 노라는 허영심이 아니라 참된 인간의 사랑을 원했던 것이다. 노라는 말한다. “나는 내가 우선적으로 당신과 마찬가지로 인간이라고 믿어요. 나는 모든 일에 대해서 스스로 생각하고 설명을 찾아야 해요.”

개인의 선택이 존중받지 못하는 사회에서 <인형의 집>은 그 모순을 넘어 새로운 가치관을 이야기한다. 성스러운 것으로 여겨지던 결혼과 남녀 역할에 대해 의문을 던지며 주체적 인간으로서의 여성을 조명한 진용주의적 페미니즘 희곡이다.

“행복한 적은 없었어요. 행복한 줄 알았죠. 하지만 한번도 행복한 적은 없었어요.” (중략) “재미있었을 뿐이죠. 그리고 당신은 언제나 내게 친절했어요. 하지만 우리 집은 그저 놀이방에 지나지 않았어요. 나는 당신의 인형 아내였어요. 친정에서 아버지의 인형 아기였던 것이나 마찬가지로요. 그리고 아이들은 다시 내 인형들이었죠. 나는 당신이 나를 데리고 노는 게 즐겁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놀면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로요. 이게 우리의 결혼이었어요.”

헬메르: 여보, 난 이제 당신에게 타인 이상의 사람이 될 수는 없는 거요?

노라: (여행 가방을 잡으며) 기적 중의 기적이라도 생기게 되면요.

헬메르: 도대체 뭐요, 그 기적이라는 게?

노라: 우리 두 사람이 모두 완전히 바뀌어서, 아니 난 이제 그런 기적 따윈 믿지 않아요.

헬메르: 하지만 나는 믿고 싶군. 그렇게 완전히 바뀌어서?

노라: 우리 두 사람의 공동생활이 그대로 진정한 결혼생활이 된 적은 없어요. 잘 있어요.

입센은 사회통념이나 가치관, 법률뿐 아니라 이중적인 윤리, 사회와 개인의 갈등 등을 주제로 한 사회극을 다수 발표했다. 특히 그는 “오늘날의 사회에서 여성은 자기 자신이 될 수 없다”는 언급과 함께 발표한 <인형의 집>을 통해 여성의 권리와 독립을 주장한다.

발표된 139년이 넘은 이 작품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메시지를 우리게게 던져주고 있다.

개인에게 인습을 강요하고, 그것을 따르지 않을 경우 그 사회에서 살아갈 수 없는 현실, 과연 지금이 그때와 얼마나 달라져 있다고 그 누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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