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역 장군의 ‘해방전후사’에 대한 새로운 인식

해방의 그날 민족은 하나였다. 그러나 그 순간이 너무 짧게 지나갔다.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해방전후사의 인식>(해전사)은 1979년부터 나오기 시작하여 10년 간 50만부가 팔린 베스트셀러다. 해전사와 더불어 전후 세대에 큰 영향을 준 저서는 리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다. 1980년대를 산 젊은이로 여기에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은 역사와 현실에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고 보아 과언이 아니다. 저자는 당대 민주화운동의 지도적 인사들이 망라했는데 이들을 살펴보면 그 성격을 알 수 있다.

송건호는 <동아일보> 편집국장 출신으로 1975년 이른바 ‘광고사태’로 동아일보가 핍박받을 때 꿋꿋하게 항거해 존경받는 지도자였다. 그는 후일 한겨레신문 창간을 주도한다.

백기완은 백범사상연구소를 만들었다. 임정 등 김구의 추종자들은 김구 시해가 이승만의 손이 미쳤던 것으로 보아 이승만을 忌諱하며, 대한민국의 성립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들은 1948년 4월 김구가 남북 정당·사회단체 회의에 참가하여 김일성에 철저히 이용당한 것을 잘못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김창순과 함께 <한국공산주의운동사>를 쓴 김준엽, 경제학자 박현채, 국문학자 김윤식, 정치학자 최장집은 그후 학문에 정진했다. <한국 전쟁의 발발과 기원>을 쓴 박명림은 한국 학자들에 열등감이었던 브루스 커밍스를 넘어섰다고 평가받았지만, 6·25전쟁의 통사로서는 충분치 못하다.

김남식이 헌법을 기초한 유진오의 외손자이자, 일조각 한만년의 아들인 한홍구를 가로챈 것은 큰 수확이었다. 김남식과 한홍구는 해방 후 출간된 신문·잡지를 모은 자료집을 출간했는데 현대사 연구에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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