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의 국회 발언은 그 자체가 곧 정책이다
[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장관의 국회 발언은 그 자체가 곧 정책이다. 모든 발언은 회의록에 기록으로 남는다. 천용택 장관이 유엔사-북한 장군급 회담을 북미 장군급회담으로 발언한 적이 있다. 북한군, 유엔사와 협의하여 절차를 만든 국장이 볼 때는 이것은 큰 실수였다.
장관 발언 도중 쪽지를 넣어 주의를 환기시켜 발언 말미에 국방위 양해를 얻어 수정한 적이 있다. 장관은 결재를 하면서 종합적으로 보고를 받으며 유관 정부 부처에서도 최고급 정보를 얻는다.
국방부 정책을 발표하는 대변인도 중요하다. 국민은 대변인의 패기와 기량을 보며 국방부를 평가한다. 황의돈 장군과 같이 성공한 대변인은 참모총장으로 진출하기도 하였다. 대변인에 정무감각이 탁월하다고 생각되는 언론인을 기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회의원들이 장관을 함부로 대하는 것은 유감스럽다. 의원 중에는 장관을 이미 마친 원로도 있다. 이분들은 예의를 지킬 줄 안다. 초·재선 의원들이 문재다. 이들은 국민을 대표하여 질의한다며 장관에 호통을 친다. 물론 정부는 답변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의원도 필요한 질문만 해야 한다. 육사에서 청량리까지 다방 숫자가 몇이냐고 묻는 것 같은 의미 없는 질의를 하는 의원도 있다. 이러한 의원에 대해서는 장관을 배석한 실무자들이 다 지켜보고 있다. 이는 여러 경로로 시중에 퍼져나가 다음 선거에 영향을 준다.
5공 시절 국방부 감사 후 술자리에서 야료(惹鬧)를 부리는 야당의원을 육군 인사부장이 손을 보아준 적이 있다. 보안사령관을 지낸 장관이어서 의원도 안기부에서 돈을 받고 있는 것을 알고 있어, 수하도 의원을 만만하게 보았기 때문이다. 국회에서 의원이 아무나 발언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영국에서는 발언은 내각과 그림자 내각(shadow cabinet)의 의원만이 발언한다. 뒤 의석에 앉는 back bencher들은 뒤에서 웅성웅성이나 하고 있게 된다.
정부 정책은 관련 부처 협의를 통해 결정된다. 청와대는 조정할 뿐이다. 항상 최악의 안보상황을 상정하는 국방부, 한미관계를 중시하는 외교부와 대북관계를 증진시키고자 하는 통일부에 어느 정도의 길항작용이 있는 것은 불가피하다. 정부 부처 협의는 국장급 실무회의로부터 시작하여 차관보 협의에서 실질적인 조정이 이루어지고, 차관회의에서 사실상 결정된다. 장관들은 이를 추인하는 선에 그치는 것이 보통이다.
청와대는 협의과정을 조정하는 데 치중하며 어느 입장에 치우치지 않도록 유의한다. 이러한 안보회의 운영은 김종휘 안보수석이 기본을 잡았으며, 노무현 정부의 이종석 수석 등도 크게 어긋나지 않았다.
남북군사 협의에서는 서해 공동어로 구역 설정이 중요했다. 조기철에는 연평도 근해에 중국 배가 새까맣게 몰려와 황금어장을 훑어간다. 어민들은 발을 동동 구른다. 중국에 항의하면 산동성 등 지방에 지시했다고 하며 책임을 회피한다. 중앙집권화된 공산중국에서 중앙 따로, 지방이 따로 있을 수가 없는데 이러한 말이 되지 않는 변명을 한다.
더구나 NLL 북부에는 어로한계선이 있다. 2함대사령관을 지낸 윤광웅 장관은 어민들의 이 고충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해군참모총장 출신의 송영무 장관이 조인한 군사합의를 보니 이 부분이 쏙 빠졌다. 해군도 사람 나름인 모양이다.
NLL은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에 규정된 선이 아니며, 7월 30일 유엔군사령관이 유엔군 해군의 북상을 제한한 선이다. 6·25가 터진 지 며칠 만에 북한 해군은 전멸했다. 그 후 북한에는 해군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어서 북한도 별 수 없이 NLL을 지켜왔다. 1970년대 이집트에서 이스라엘이 구축한 에일라트를 침몰시킨 스틱스미사일 도입 이후 서해 도발이 시작되었다.
국군은 이에 대해 하푼미사일 도입으로 북한 해군을 상대했다. 이것이 분명하게 발휘된 것이 연평해전이었다. 여기에 보복하려고 북한이 도발한 것이 2002년 서해교전이며, 우리는 고속정 한 척이 격침되었으나 추후 북한의 손해를 확인한 결과 북한 해군은 더 손해를 입은 것이 밝혀졌다.
이래로 서해교전은 제2 연평해전으로 불리고 있다.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 기억이 새로운 데, 김대중 대통령이 일본에서 한일공동월드컵에 참석하고 있는 가운데 벌어진 도발이었다.
조성태 장관은 국회에서 NLL을 MDL과 같은 성격의 엄격한 남북 해양경계선으로 규정지었다. 현재 국방부는 비무장지대 공사 관련해서 유엔사와 협의를 거쳤다고 하는데 이것만으로는 안 된다. 협의가 아니라 합의가 되어야 한다. 그것도 반드시 문서로 되어야 한다. 여기에 철저한 것이 북한이다. 이러저러한 것이 북한 입장이 아니었느냐고 물으면 그에 관한 문서를 가져와 보라고 버틴다.
이 원칙은 한미간에도 적용된다. 2002년 국방부는 북한과 철도·도로 연결작업 협의를 시작하기 전, 이에 관련해서 국방부가 유엔사를 대리한다는 약속을 유엔군사령관에 문서로 요구했다. 라포트 장군은 이를 승인하는 서한을 써주었다. 군비통제관은 이를 근거로 북한과의 협상에 나설 수 있었다. 비무장지대의 관할권과 관리권의 세부 조항에 관해서도 군비통제관이 장관의 승인을 받고 솔리건 유엔사 부참모장에 써주어서 문제가 풀리게 되었다.
청와대 안보실은 참모기구다. 협상은 국방부에서 해야 한다. 노무현 정부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던 이종석 실장도 국방부에 부탁했지, 직접 나서서 북한과 협상하지는 않았다.
청와대 안보실은 이러한 절차에 대해 살피기 바란다. 정책과 전략에 관계하는 사람들은 역사를 꿰뚫고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