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과 식량안보②] ‘밥심’ 대신 빵심·면심이 대세

[아시아엔=박명윤 <아시아엔> ‘보건영양’ 논설위원, 한국보건영양연구소 이사장] 우리나라 쌀 소비량은 매년 최저치를 경신하고 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7년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61.8kg으로 역대 최저를 기록했으며, 1980년대 쌀 소비량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즉, 1975년에는 123.6kg, 1985년 128.1kg, 1995년 106.5kg, 그리고 2005년에는 80.7kg을 소비했다.

1인당 하루 쌀 소비량도 169.3g으로 밥 한 공기가 쌀 90g 기준이므로 하루에 두 공기를 채 먹지 않는 셈이다. 밥공기 용량도 현재는 300cc로 1975년 450cc에 비해 30% 이상 줄어들었다. 옛날 조선시대에는 밥이 중요한 에너지원이었기에 현재 우리가 먹는 밥의 4배 이상을 먹었다.

일본 농림수산성 통계에 따르면 소식을 하는 일본인들의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이 1965년 111.7kg, 1975년 88.0kg, 1995년 67.8kg으로 떨어지더니 2011년 이후는 거의 50kg대이며, 작년은 54.2kg로 나타났다. 이에 일본은 쌀 소비량 감소세가 거의 멈추었다고 본다.

최근 일본 하쿠호도 광고회사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쌀밥을 하루에 한 끼도 안 먹으면 기운이 안 나는가?’라는 질문에 ‘그렇다’는 대답이 49.6%로 지난 1992년 71.4%에 비해 20%가 줄었다. 응답자의 절반 정도는 쌀밥을 아예 안 먹어도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최근 일본에서는 식비를 줄이려고 반찬이나 반쯤 조리된 식품을 구입하여 집에서 밥을 지어 먹는 나카쇼쿠(中食)가 늘어나고 있다. 우리나라도 전체 쌀 소비는 줄었지만 간편식 ‘햇반’ 판매량은 늘었으며, 외식비가 비싸서 집에서 식사를 해결하는 1인 가구가 늘고 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1인 가구 수는 2000년 222만 가구에서 2017년 562만 가구로 2.5배 이상 증가했으며 전체 1967만 가구의 28.6%에 달했다. 통계청 추계대로라면 1인 가구는 앞으로 계속 늘어나 2030년 33.3%, 2040년에는 35.7%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요즘 바쁜 일상을 사는 현대인들에게 ‘밥심’ 대신 ‘빵심’이나 ‘면(麵)심’이 중요해지고 있다. 즉, 쌀밥 위주의 식단은 식사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시간 여유가 있는 평일 저녁이나 주말을 제외하고 빵과 국수로 식사를 대신하는 날이 많다.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 일과 삶의 균형)도 쌀밥 의존도를 낮추는 원인으로 꼽힌다. 즉, 주 52시간 근무가 시작된 이후 점심을 카페에서 커피와 샌드위치, 샐러드로 간단히 먹고 업무를 보거나 휴식을 취하는 직장인이 많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곡물자급률은 최근 3개년(2013-2015) 평균 23.8%로 세계에서 꼴찌 수준이다. 반면 같은 기간 전세계 평균 곡물자급률은 102.5%로 나타났다. 국가별로는 호주가 275.7%로 가장 높았으며, 캐나다 195.5%, 미국 125.2%로 100% 자급 수준을 초과했다. 상대적으로 중국(97.5%)과 일본(27.5%)은 100%를 밑돌았지만, 그래도 우리나라보다는 높다.

곡물자급률은 한 나라의 식량안보를 나타내는 중요한 지표다. 이는 세계 각국의 보호무역주의 기조가 확산되면서 정치와 경제적 분쟁에 따라 농산물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식량의 무기화’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농지 전용(轉用) 가속화, 자유무역협정(FTA) 확대에 따른 다양한 먹을거리 수입 증가 등으로 곡물자급률이 세계 최하위권에 속한다. 이에 국내산 곡물의 소비를 늘이고, 생산기반 확대 등 곡물자급률을 높이기 위한 정책이 절실하다.

최근에는 세계 곳곳이 기상이변으로 곡물 생산에 타격을 받아 국제 곡물가격이 오르고,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으로 국제 곡물 수급불안 우려는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국제 곡물 수급불안 대응체계도 취약하다. 예를 들면, 자급률이 낮은 곡물을 해외에서 안정적으로 확보한다는 취지로 추진된 정부의 ‘해외농업개발사업’은 일부 사업이 폐기될 정도로 지지부진하다.

매년 쌀 소비가 줄어 쌀농사 포기 및 타(他)작물 이동 등으로 이어져 쌀 자급 기반에 영향을 주고 있다. 국민의 주식을 외국에 의존하면 국가 식량안보 기반이 붕괴될 수 있다. 이에 건강과 안전을 추구하는 소비추세에 맞춰 친환경 쌀 재배를 늘리고 밥맛 좋은 쌀로 소비자 입맛을 사로잡아야 한다. 국내 쌀 산업을 보호 및 육성하는 것은 식량안보와 우리 농업을 지키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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