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죽는 것도 실력이다”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나이 80에 ‘80견’(肩)이 왔는지 요즘 왼쪽 어깨와 팔이 너무 아파 잠을 설친다. 아침에 일어나 이 말 못할 통증을 호소하며 ‘엉엉’ 앓는 소리를 하였더니 아내가 놀린다. “부처님도 아프면 앓는 소리를 하나요?” 부처님은 어떻게 열반상(涅槃相)을 나토셨을까? 석가모니는 80세 노령에 이를 때까지 조금도 쉬지 않고 45년 동안의 교화(敎化) 여행을 계속했다. 그러다가 노령을 극복할 수 없음을 알고 수도 라자그리하를 떠나 자신이 태어난 고향쪽을 향해 최후의 여행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교단의 질서에 관한 지침을 남겨주기를 바라는 아난에게 석존은 이제까지 남김없이 법을 설해 왔으며 ‘스승의 꽉 쥔 주먹’처럼 감추어둔 진리는 없음을 밝히고, 유명한 자등명(自燈明) 법등명(法燈明)의 유훈을 설한다.

“아난아, 너 스스로를 너의 등으로 삼고, 또 그 누구도 아닌 너 자신을 너의 의지처로 삼아 살아라. 그 밖의 어느 것도 너의 의지처가 아니다.” 석가모니는 도중에 대장장이 춘다(Cunda)가 공양한 돼지고기 음식을 드셨는데 이것이 쇠약해 있는 석가모니에게 심한 설사를 일으키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쿠시나가라에 도착한 석가모니는 “나를 위해 두 그루의 사라나무 사이에 머리를 북으로 향하게 누울 자리를 깔아 달라. 아난아, 나는 피곤하다. 옆으로 눕고 싶다”고 말하고, 옆으로 누워 있으면서도 최후의 순간까지 가르침을 듣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해 법을 설하셨다. 특히 슬픔에 싸여 울고 있는 아난을 불러 이렇게 말했다.

“아난아, 울지 마라. 이별이란 우리에게 가깝고 소중한 모든 것에서 피할 수 없는 것이라고 내가 이미 네게 말하지 않았더냐. 태어나고, 생겨나고, 조건 지워진 것은 무엇이나 그 자체 안에 사멸(死滅)할 성질을 포함하고 있다.”

임종이 다가오자 석가모니는 비구(比丘)들에게 어떠한 의심이나 질문이 있다면 물으라고 세번이나 말하며 편안하게 숨을 거두셨다. 이렇게 석가모니의 임종은 아름다웠다.

또 한분의 부처님이신 소태산(少太山) 부처님의 열반상은 과연 어땠을까? 구타원(九陀圓) 이공주(李共珠) 제자가 남긴 ‘메모’에 근거한 전문의의 소견에 의한다면 소태산 부처님의 열반의 주원인은 ‘급성 심근경색증’이라 한다. 원불교를 창교(創敎)한 소태산 부처님은 세수(歲壽) 53세요 가르침을 편 지 28년이 되는 1943년 6월1일에 “유는 무로 무는 유로 돌고 돌아 지극(至極)하면 유와 무가 구공(俱空)이나 구공 역시 구족(具足)이라”는 게송(偈頌)을 남기고 거연히 열반상을 나투었다.

역시 부처님의 열반상은 장엄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그러나 필자가 듣기로는 부처님도 아프면 고통을 호소한다. 다만 마지막을 차질 없이 처리하고 의연히 가지 않았을까싶다. 우리도 후회와 원망 대신 아름다운 추억과 더불어 부처다운 의연한 모습을 남기고 삶을 마무리할 실력을 갖추어야 최후가 아름답고 장엄할 것이다.

우리가 끝까지 존엄하게 살다 가려면 과연 무엇이 필요할까? 몇년 전 폐가 굳어지는 병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은 한 도반의 전화를 받았다. 갑자기 닥친 죽음 앞에서 당황할 법도 하지만 그는 차분히 자신의 마지막을 준비했다. 혼자 살 아내와 자식들을 위해 재산을 정리해 나눠주었다.

그리고 하는 말이 이렇다. “8천만원만 들이면 폐를 바꿔달 수 있다고 해요. 그러나 저는 하지 않으렵니다. 그냥 마지막까지 잘 아프다가 잘 죽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그분은 스스로 의사에게 심정지가 오면 연명치료를 하지 말라는 약속을 받고 문서에 사인까지 직접 하고 운명을 하였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아파야 하는지, 죽는 모습이 어때야 하는지, 존엄성을 지키면서 인생을 마무리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 몸소 보여주고 가야하지 않을까? 정말 ‘잘 죽는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자녀나 세인들에게 후회와 원망 대신 아름다운 추억과 스승다운 모습을 남길 수 있어야 한다.

그게 말이 쉽지 어디 보통 실력인가? 나이가 들수록 부지런히 수행을 하지 않으면 그런 내공은 갑자기 생기지 않는다.

잘 죽는 것도 실력이다. 열반을 앞두고 갖추어야 할 보물이 있다. 하나는 공덕이요, 둘은 상생의 선연(善緣)이며, 셋은 청정일념이다. 공수래공수거 원리를 철저히 깨달아 최후일념을 청정히 하는 것이 제일 큰 보배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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