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택동은 산, 주은래는 물, 등소평은 길”···이중 전 숭실대 총장 “반세기 한우물 판 3인방”
[아시아엔=이중 전 숭실대 총장, 연변과기대 부총장 역임, <오늘의 중국에서 올제의 한국을 본다> <모택동과 중국을 이야기하다> 등 저자] 중국 현대사 인물 3인을 나는 이렇게 부른다. “모택동은 산이요, 주은래는 물이며, 등소평은 길이다.”
모택동은 어찌하여 산인가? 또 주은래는 왜 물이고, 등소평은 왜 또 길인가?
산을 넘고 물을 건너 길을 만든 것이 오늘의 중국이다.
모택동이란 산에 오르려면 주은래를 거쳐 가야 하는 것이 아니냐, 즉 주은래라는 물을 건너야만 모택동이라는 산에 접근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나는 그렇게 비유했던 거다.
모택동의 고향은 호남성 소산(韶山)이다. 성격은 영웅 기질과 반란에 자기중심적이다. 시작(詩作)과 글씨에도 능하여 언제나 남 앞에 우뚝 솟은 산이기를 바란다.
주은래는 강소성 회안(淮安)에서 태어났다. 회안은 물의 고장이다. 화목, 포용형 성격에다 겸손하고 남을 배려하는 성품이다.
“물은 배의 어머니”(海是船的母親)란 말이 있다. 주은래는 물의 역할을 성실하게 했다. 두 사람을 묶어서 본 외국 사람의 이야기가 재미있다.
“모택동이 없었더라면 중국혁명의 불길은 타오르지 않았을 것이고, 주은래가 없었더라면 그 불길은 다 타버려 재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또 다른 말도 있습니다.
“지난 반세기, 중국은 모택동의 머릿속에 있었고, 주은래의 손안에 있었다.”
그런데 현대 중국사는 세 사람을 엮어야 무엇이 좀 보인다. 모택동은 ‘혁명의 신화’에 사로잡히다시피 한 태생적 반란아다. 주은래는 ‘4개 현대화 노선’이라는 중국 ‘성장신화’에 물꼬를 튼 사람이다.
‘등소평 시대’는 ‘모택동 시대’를 이어받은 것이 아니라 ‘모택동 시대’를 극복하고 ‘주은래 시대’를 이어받았다는 이야기마저 있다.
물론 ‘주은래 시대’란 말은 없다. 주은래의 세계관, 유지(遺志) 같은 것이 등소평에 의해 살아나 열매를 연 것이다. 나는 “등소평은 무엇이냐?”를 혼자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다.
모택동은 산, 주은래는 물까지는 근사해 보이는데, 등소평을 어떻게 비유할까 고민이 되었다.
등소평의 고향은 사천성 광안(廣安)이다. 사천성은 옛 촉(蜀)나라 땅이다. 길은 마냥 험하기만 한 촉도(蜀道)다.
열여섯 살 소년 등소평이 프랑스로 갈 때에 중경에서 배를 타고 상해로 갔다. 육지로 가는 길이 콱 막혀있던 고장이 사천이다.
바위나 벼랑에 달싹 붙어있는 잔도(棧道)는 보기만 해도 아슬아슬하고 무섭다.
등소평은 길을 스스로 만들어야 하는 운명을 타고 났다.
중국의 ‘개혁개방’이 보통 길인가?
중국공산당 혁명은 한 두 사람의 자객이나, 한 무리의 무장부대가 정권을 뒤엎은 궁정혁명(宮廷革命)이 아니다.
모택동이 했다는 “정권은 총구에서 나온다”(槍杆子里面出政權)는 말을 너무 좁게 해석하면 중국 공산정권의 성립은 이해하기 어려워진다.
한나라를 일으킨 유방(劉邦),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朱元璋)을 생각하면 된다. 몽골족의 원나라, 만주족의 청나라도 한번 살펴볼 만하다.
중원을 제패한다는 것이 얼마나 피비린내 나며, 또 운명적인 것인가를 조금은 깨닫게 된다.
중국공산당은 1921년에 만들어졌다. 올해로 97년이 된다. 그들이 베이징에서 어엿한 공산중국을 선포한 것은 창당 28년만인 1949년이었다. 28년 동안 중공당은 싸움만 했다. 전쟁과 투쟁으로 날밤을 샜다.
장개석의 국민당과 투쟁과 전쟁을 했고, 일본군을 중국에서 밀어내야 했다. 건국 후엔 또 어떠했나? 건국 이듬해의 한국전쟁, 인민공사, 대약진운동, 반우파(反右派)투쟁, 그리고 10년간의 문화혁명. 전쟁 아니면 투쟁, 전쟁과 유사한 투쟁의 연속이었다.
시대정신이란 말을 굳이 꺼내지 않더라도, 시대 나름으로 흐름이 있고, 역할이 있고, 공과(功過)가 있기 마련이다. 그들 세 사람은 1920년대부터 공산당 일을 했다.
죽을 때까지 오로지 중공당을 위해 다 바친 사람들이다. 50년, 60년 이상을 한 우물을 판 사람들이다.
오늘 중국을, ‘G-2’ 운운하지만, 그게 하루 이틀에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안다. 세 사람을 산과 물, 길로 비유한 것은 그들의 인간적, 정치적 성격과 역할을 근거로 한 말이다.
중국 사람들에게 “모택동 산, 주은래 물, 등소평 길”이란 말은 참 좋게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필자의 중국어 번역판을 읽어본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 대목에서 손가락을 들어 필자를 치켜세운다.
“참 멋있다. 어떻게 그런 비유를 끌어냈나?” 나는 이런 반응들을 보면서, 모택동·주은래·등소평을 하나의 괄호 안에 넣어 자기네 현대사를 자랑스러워하는 그들의 마음을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