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정 총무원장 스님, ‘비움’으로써 길이 ‘존경’받으소서
[아시아엔=이상기 기자] 존경하는 설정스님. 기억하실는지요? 지난 5월31일 오전 설악산 신흥사에서 거행된 설악 조오현 큰스님 장례식장에서 뵙고 인사 여쭈었지요. 또 한번은 지난 12일 오후 인제내린천센터에서 열린 만해대상 시상식 자리에서였습니다.
그리고 보니 총무원장 스님을 뵌 것은 모두 조오현 큰스님과의 인연으로인 듯합니다. 사실 제가 불교를 알게 된 것은 2002년 7월 제가 한국기자협회장 시절 서울 소재 언론사 기자 30여명과 함께 백담사를 찾아 무산 큰스님을 처음 뵌 덕택이지요.
존경하는 설정스님. 지난 16일 원장스님에 대한 불신임 결의안이 중앙종회에서 통과된 이후 참 여러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아마도 조오현 스님과의 인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는 몇번이고 저의 생각을 글로 옮기려 했지만 주저하고 말았습니다. 망설이고 또 망설이다, 내일로 예정된 원로회의를 앞두고 이렇게 여쭙기로 결심하게 됐습니다. 非禮일까 크게 걱정도 됩니다. 존경하는 원장스님께서 惠諒하여 주시길 仰請드립니다.
존경하는 설정스님.
총무원장 재임 중 첫 탄핵이라는 세간의 평가에 연연하지 않으시리라고 저는 믿습니다. 만일 그럴 진대 작년 어려운 상황에 빠진 조계종을 구하기 위해 굳이 총무원장 선거에 출마하실 일도 없었겠지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원장스님께선 오늘의 상황에 이르게 되셨습니다.
저는 스님의 용단만이 극도의 혼란과 불신에 싸인 한국불교를 구할 유일한 방안이라고 감히 말씀드립니다.
이제 내려놓음으로써 스님이 본래 추구하고자 하던 것을 얻고 되레 높아지실 거라 저는 믿습니다. 총무원장 탄핵이 우리 불교계의 초유의 일이었다면, 원로스님들에게 또다른 번뇌와 갈등을 안겨주는 대신 흔연히 자리를 비켜나는 진정한 용기와 지혜가 한국 불교사상 처음으로 발현되길 바랍니다.
스님의 ‘참 비움’으로 말미암아 한국불교가 제자리를 찾고 불교 본래의 역할로 돌아오는 維新의 계기가 되길 아울러 기원합니다. 그리하여 22일 원로회의는 스님의 탄핵안을 인준 또는 부결시키는 자리가 아니라, 한국불교의 和合과 求道를 허심탄회하게 논의하는 자리가 되길 바라는 것은 저뿐이 아닐 거라 생각합니다.
조오현 스님의 열반송과 설정스님이 지으신 무산 스님 추도사를 읽으며, 어른스님들의 담대함과 의연함에 저는 고개가 절로 숙여졌습니다.
천방지축(天方地軸) 기고만장(氣高萬丈)/ 허장성세(虛張聲勢)로 살다보니/온 몸에 털이 나고 이마에 뿔이 돋는구나/ 억!”
“‘나에게 돌을 던지는 사람과 나에게 꽃을 던지는 사람을 함께 소중하게 여기라’고 하신 스님의 말씀을 따라 의연하고 힘차게 나아가겠습니다.”
설정 총무원장 스님. 한국불교와 정신세계에 큰 족적을 남기며 길이 기억되고 존경받으시길 삼가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