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을 넘어 대한민국 빛낸 8인···김세환·김향화·안점순·이선경·이종학·임면수·최종건·최종현

[아시아엔=김소현 기자] 독립운동가 김세환·이선경·임면수·김향화, 서지학자 이종학, 기업인 최종건·최종현, 평화운동가 안점순 등 8명이 수원시 명예의 전당에 헌정됐다.

수원시(시장 염태영)는 수원시를 빛낸 개인·단체를 발굴, 기념하기 위해 지난해 7월 ‘수원시 명예의 전당 설치 및 운영 조례’를 제정하고 헌정 대상 후보자 공모신청을 통해 지난 3월 1차 공적 심의와 4월 5일 2차 심의를 거쳐 이들을 선정했다.

이들의 생애는 다음과 같다.

김세환(1888~1945) 선생은 수원 지역의 대표적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다. 민족대표 48인 중의 1인으로 3·1만세운동을 이끌었다. 서울에서 벌어진 만세운동에 참여했다가 체포된 후 1년 동안 옥고를 치렀다. 그는 ‘조국의 독립을 성취하는 데 이바지하려면 먼저 학문을 배워야 한다’는 일념으로 삼일여학교(현 매향여중고)의 기반을 닦고 수원상업학교의 설립을 주도해 후진 교육에 힘썼다. 신간회 수원지회장, 수원체육회장 등으로 활동하면서 수원에서 민족주의 운동을 활발하게 펼쳤다.

김향화(1897~?) 선생은 본명이 순이(順伊)로, 경성(서울)에서 나고 자랐으며 수원에 내려와 기생이 된 후 수원예기조합의 중심인물이 됐다. 1919년 3월 29일 수원 기생 30여 명과 수원군 자혜의원(현 화성행궁 봉수당)으로 건강검진을 받으러 가는 도중 일제의 총칼에 항거하며 수원경찰서 앞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외쳤다. 그때 나이 23세였던 김향화는 일제 경찰에 의해 만세운동 주모자로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받고 징역 6개월의 옥고를 치렀다.

안점순(1928~2018) 선생은 어린 시절의 끔찍했던 고통을 딛고, ‘이 땅에 다시는 전쟁이 없어야 하고 후손들에게 평화로운 나라를 물려주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평화를 향한 정의로운 행보를 멈추지 않았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인권캠프, 수요시위 등에 참여하였고 2014년 5월 수원평화비(평화의 소녀상) 제막 이후, 수원평화나비와 함께 적극적인 활동을 펼쳤다. ‘2015 한일합의’ 무효를 외치고, 일본 정부가 건넨 위로금 수령을 거부했다. 2017년 3월 8일 독일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에 참석하여 수원시민과 독일시민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이선경(1902~1921) 선생은 수원 출신의 대표적인 여성 독립운동가다. 경성여자보통학교 3학년 재학 중 조선의 독립을 목표로 한 ‘구국민단’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을 하다가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던 중 혹독한 고문을 받은 끝에 석방되었다. 집으로 옮겨지고 난 뒤 9일 만에 19세의 나이로 순국하였다. 여성 사회주의자로 명성을 날렸던 언니 이현경과 동생 이용성 등 형제자매의 활약은 수원독립운동사에서 주목할 만한 일이다.

이종학(1927~2002) 선생은 평생 남다른 사명감으로 고문서 발굴과 사료 연구를 통해 역사를 바로 세우고자 했던 이종학은 ‘역사를 김매기하다’는 뜻의 자신의 호 ‘사운(史芸)’으로 불리기를 원했다. 그에게 역사는 옥석을 가리고 이정표를 바로 세워 후손에게 옥토로 물려줘야 할 유산이었다. 그는 역사를 바로잡는데 평생을 바쳤다. 이종학은 일제에 의해 왜곡된 수원성의 본래 이름 화성(華城)을 되찾고 화성의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에 기여했으며, 수원시에 평생 수집한 귀중한 자료 2만여 점을 기증해 후손들에게 물려주었다.

임면수(1874~1930) 선생은 나라를 빼앗길 위기에 놓였던 구한말 국권을 되찾으려는 일념으로 독립협회, 상동청년학원, 신민회 등의 애국지사와 교류하면서 민족의식을 키웠다. 수원 삼일학교를 설립해 인재를 길러냈고 수원 지역의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했다. 그는 여성교육을 위해 자신의 집터와 토지, 과수원을 삼일여학교(현 매향여중고) 부지로 희사했다. 이후 만주로 건너가 신흥무관학교 분교인 양성중학교 교장으로 재직하며 독립군을 양성하고, 부민단 결사대 대원으로 활약하는 등 평생을 항일투쟁에 몸을 바쳤다.

최종건(1926~1973) 선생은 지칠 줄 모르는 정력, 단호한 결단력, 강인한 추진력을 겸비한 불세출의 기업가였다. 국내 4대 그룹의 하나인 SK그룹은 최종건이 잿더미 속에서 살려낸 수원 평동의 선경직물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는 신의와 성실, 탁월한 리더십으로 폐허가 된 선경직물을 재건하여 수출시장 개척에 앞장서는 등 한국 경제 발전에 큰 업적을 남긴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오랫동안 수원과 함께 해온 SK는 수원시민들을 위한 사회적 공헌에서도 다른 기업의 모범이 되고 있다.

최종현(1929~1998) 선생은 형(최종건)이 창업한 선경을 국내 4대 그룹의 하나인 SK로 키워낸 제2 창업자다. SK를 성장시킨 그의 탁월한 경영능력은 세계에서도 몇 손가락 안에 든다. 형이 섬유업을 본궤도에 올려놓았다면 최종현은 석유, 화학, 이동통신 등 중화학, 미래 산업으로 사업을 확장, 세계적인 기업으로 발전시켰다. ‘인간 위주의 경영, 합리적인 경영, 현실을 인식한 경영’이라는 경영철학을 실천했다. 인재양성에 관심이 컸던 최종현은 30여 년간 장학사업에 열정을 쏟았다. 최종현은 1973년부터 1987년까지 수원상공회의소 회장을 역임했다.

이들의 얼굴과 공적은 수원시청 본관 1층에 가면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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