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시절 우리네 삶은 다 그랬다오”

[아시아엔=서의미 기자] “끓는 물에 아귀랑 새우, 손질한 멍게 넣으면 돼. 고추장에 마늘 섞은 양념장 넣고, 간장도 한 숟갈 넣어. 크게 어렵진 않아. 시장에서 신선한 해산물만 좀 사오면 돼.”

한 숟갈 뜬 그녀는 뜨거워진 멍게 한 입을 능숙하게 씹으며 간을 본다. 저녁 식사시간이 다가오면 유정옥 할머니는 가족에게 따뜻한 밥상을 내온다는 ‘사명’을 지닌다. 그녀는 아픈 무릎을 곧추 세워 주방으로 향한다. 찬 거리를 따로 고민할 필요도 없는 그녀는 무엇을 만들어야 할지 누구보다 잘 안다.

2남3녀의 자녀와 손자를 여럿 둔 유정옥 할머니가 굳이 음식까지 내올 필요는 없다. 하지만 가족이 그녀의 공간으로 들어오는 순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밥상을 차릴 채비를 갖춘다.

“열여덟일 때 제일 예뻤지. 그 시기에 결혼하기도 했고.” 아버지는 단호한 결의를 보인 젊은 청년을 만난 후 결혼을 승낙했다고 한다. 그러나 달콤했던 신혼은 짧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유정옥 할머니는 모시 옷을 짜고 우는 아기를 달래는 가사노동에 매진해야 했다.

그녀의 첫 딸아이는 건강하게 태어났다. 세 딸이 더 태어났으나 중간의 두 아이는 병으로 일찍 세상을 뜨고 말았다. 네 아이가 태어났지만 여전히 아들은 없었다. 유정옥 할머니는 어쩌면 남편이 가계를 이을 첩을 들일지도 모른다고 걱정했다. 자신이 조강지처일지라도 아들을 낳을 의무를 저버릴 순 없었다. 그래도 그녀는 몸이 닿는 데까지 노력했고, 다섯 번의 출산 끝에 마침내 아들을 낳았다.

세월이 흘러 자녀들은 다들 장성해 출가했고, 그녀는 현재 장남 가족과 함께 살고 있다. 할머니는 이따금 손주들에게 “내 딸이 시집갈 때 엄청 울었다고. 딸들이 엄마한테 더 잘한다고”라고 말하곤 한다.

“잘 챙겨먹고 든든해야지.” 그녀의 따뜻한 마음이 묻어나 있는 한마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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