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추·처서, 음력인가 양력인가?···과학 아닌 선택 문제일 뿐

[아시아엔=김현원 연세대의대 교수, 뉴패러다이머] 올 여름 사상 최고의 폭염이?8월 첫째 주에 있었고, 8월?7일 입추가 지나면서 첫째 주에 비해 약간 폭염현상이 줄어들었다.?주위 분들 중 몇분이 역시 음력이 정확하다는 표현까지 하는 것을 듣고 정확한 사실을 전달할 필요가 있어?이 글을 쓴다.

결론적으로 입추를 비롯한?24절기는 음력이 아니라 양력이다.?음력은 달이 지구를 한 바퀴 도는 것을 한달로 해서(29일 혹은?30일) 12달의?1년을?354일로 한다.?그렇기 때문에 실제 지구가 태양을 도는?365.2422일과 일년에?11일 정도 차이가 난다.?그래서 음력은 약?3년에 한번 윤달을 둔다.?양력은 지구가 태양을 도는?365일을?12개로 나누어서?1월부터?12월가지 구별해서 사용한다.

현재 우리는 양력을 공식적으로 쓴다.?그래서 음력은 따로 달력을 봐야만 알 수 있다.?설날은 음력으로?1월?1일이고,?추석은 음력으로?8월?15일이다.?설날이 양력으로?1월인 경우도 있고, 2월인 경우도 있다.?추석도 마찬가지다. 9월인 경우도?10월인 경우도 있다.

음력이 태양을 기준으로 하는 양력과 한달 정도 차이가 나다 보니 우리는 음력이 정확하지 않고 비과학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그래서 박정희 정부 시절에는 전통적 명절인 설날마저 양력?1월 1일에 지내도록 하였다.?대부분 국민들에게 양력?1월?1일을 신정이라는 이름으로 지내도록 강요하였고,?실제 설날인 음력?1월?1일은 아예 쉬지도 못하게 하였다.

정부가 바뀌고 음력?1월?1일 설날은 그 후 ‘민속의 날’이라는 어정쩡한 이름으로 불리다 이제 정식 설날로 제 이름을 찾았다. 최소 3일간 쉬는 우리 최대의 명절로 다시 자리잡게 되었다.

전 세계가 양력을 사용하다 보니 양력과?1달 가량 뒤늦고 매년 열흘 이상 다른 음력을 비과학적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실제로 농사에 매년 열흘 이상 다른 음력을 사용할 수는 없다.?하지만 음력은 그 자체에 달의 움직임이 나타난다. 달의 인력에 의해서 나타나는 밀물과 썰물과 같은 바다의 움직임을 반영하기 때문에 어업에는 음력이 필수적이다.

벼농사를 주로 하는 농경사회에서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당연히 매년 기후와 맞는 월력이 필요하다.?그래서 음력에는 태양의 움직임을 반영하기 위해서?24절기를 도입한 것이다. 24절기는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 것(360°)을?15°씩 계산해서?24개로 나눈 것이다.?크게 동지·춘분·하지·추분이 있고, 8월에는 가을의 길목이라고 해서 입추(8월?7-8일)와 처서(8월?23-24일)가 있다.

현대에서 이러한 이름들이 지구온난화로 인해 실제 계절변화와 맞지 않다고 볼 수 있다.?하지만?24절기는 지구의 공전을 그대로 반영하기 때문에 음력이 아니라 양력이라고 할 수 있다.?실제로 우리 조상은 음력이 아니라?24절기를 따라서 농사를 지었던 것이다.

양력이나 음력은 과학적이고 비과학적이고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이다.?양력은 매년 일정한 장점이 있지만 지구의 공전주기를?12달로 나눈 것이기 때문에 달의 움직임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다.?반면에 음력은 달의 움직임이 날짜 그 자체에 있는 장점이 있지만 실제 기후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에 동시에 양력에 준하는?24절기를 함께 사용하는 것이다.

조상들이 사용했던 음력은 결국 달과 해의 움직임을 모두 반영했기 때문에 오히려 의미 없이 지구의 공전주기를?12개로 나누어 사용하는 양력에 비해서 더 과학적이라고도 할 수도 있다.

산업혁명 이후 모든 학문과 산업이 서양 위주로 재편되었다.?우리가 한복을 입지 않고 양복을 입게 되었고,?머리 스타일도 서양식으로 바뀌었다.?우리가 즐기는 축구·야구·농구 모두 서양에서 비롯되었다.?올림픽의?100개가 넘는 종목 중에서 동양에서 비롯된 종목은 태권도와 유도밖에 없다.

일찍 서구화된 일본은 음력을 아예 달력에서 지웠고,?한국과 중국 그리고 동남아시아는 양력을 사용하더라도 전통적 명절을 음력 날짜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이것은 우리가?60년대까지만 해도 단군 건국을 기점으로 하는 단기력을 함께 사용하다 지금은 단기력을 지워버리고 서기력만 사용하는 것과 같다.

효율을 위해서 세계의 표준에 맞출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동양이 산업혁명을 먼저 해서 지구를 지배했다면 아마 지금 세계가 양력이 아니라 음력을 사용했을 지도 모른다.?하지만 우리가 비록 양력을 사용하고 있더라도 전통적인 명절마저 양력을 사용할 수는 없었다.?그래서 양력?1월?1일을 설날로 바꾸려는 정부의 어떤 노력도 국민의 마음을 바꿀 수는 없었던 것이다.

정리하면?24절기는 음력이 아니라 양력이기 때문에 매년 정확하게 기후를 반영하는 것이다.?우리 조상들이 사용했던 음력은 달의 움직임을 그대로 반영하고, 24절기를 통해서 해의 움직임을 동시에 반영했다.?그리고 이를 통해서 농사를 지었다.?우리 조상이 사용했던 달력은 음력 안에?24절기라는 양력을 동시에 포함하고 있었던 것이다.

양력과 음력은 과학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이다.?정부의 어떤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음력?1월?1일을 설날로, 음력?8월?15일을 가장 큰 명절 추석으로 쇠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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