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없는교육가회 김기석 대표가 아프리카서 10년 넘게 ‘맨땅 헤딩’하는 까닭

가나안농군학교 설립 김용기 선생 이어 아프리카 빈곤탈출 도와

“한강의 기적 실천이 버킷리스트···정부 관치·간섭 대신 순수 지원을”

[아시아엔=박수진 <서울대총동창신문> 기자] ‘국경없는 의사회’ ‘국경없는 기자회’는 들어봐도 ‘국경없는 교육가회’는 영 낯설기만 하다. 그런데 그런 단체가 있다.

10년 넘게 아프리카 맨땅에서 헤딩하며 빈곤 탈출을 돕고 있는 단체다. 김기석 서울대 교육학과 명예교수가 대표를 맡고 있는 국경없는교육가회는 ‘교육을 통한 빈곤 퇴치’가 설립목표다. 2007년 창립 이후 세계 곳곳의 저개발국에서 교육 원조를 펼쳤다. 그 중에서도 1인당 GDP 649달러에 불과한 서아프리카의 작은 나라 부르키나파소가 주요 거점이다.

김 대표는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로 재직하던 2007년 현지 전문가와 제자 등 100여명과 비영리단체 ‘국경없는교육가회’를 세웠다.

“아프리카에 무지했던 상태에서 세상 말로 ‘맨 땅에 헤딩’했죠. 그래도 그간 같이 일한 청년들과 현지 농촌여성과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찾아낸 게 있어요. 바로 서아프리카 빈곤퇴치 방법입니다. 어느 대륙과 국가든 다 적용되는 해법이라곤 할 수 없지만, 기회가 있고 충분히 준비하면 실천 가능하죠.”

교육가회의 대표 사업 ‘가파(GAPA, Global Alliance for Poverty Alleviation)’가 해법 중 하나다. ‘가파’는 현지 극빈층 문맹여성들에게 읽고 쓰는 법과 창업기술을 가르치고 소액 자금을 융자해 창업할 수 있도록 돕는다. 가난한 이에게 양식을 주는 대신 자립해서 살아갈 기술훈련과 창업의 기회를 주는 것이다. 한 가구당 최대 100달러인 대출금 회수율이 95%에 달할 정도로 성공을 거뒀다.

일례로 부르키나 파소의 문맹 극빈 농촌여성에게 양계와 비누 만드는 법 등을 가르쳤다. 현지 여성들이 생산한 비누는 한국에서도 판매할 계획이다. 현지에서 생산되는 시어버터로 만들어 모양은 투박하지만 품질은 뛰어나다.

공교육 제도가 미비한 현지 교육환경상 아이들을 초등학교에 많이 보내는 데만 치중해서는 미래 경제성장을 기대할 수 없었다. 대신 교육차별을 받던 여성들의 변화에 희망을 걸었다. ‘가파’로 2014년 유네스코 ‘세종대왕 문해상’을 받았다. 부르키나파소 정부는 김 대표를 주한 명예영사로 임명하기도 했다.

김기석 대표의 활동 근간을 이루는 것은 두 은사의 가르침이다. 서울대 재학시절 정범모 교수에게서 “교육은 인간행동의 계획적 변화”임을, 장인이자 가나안농군학교를 설립한 일가 김용기 선생에겐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는 가르침을 받았다.

“교육은 사람의 행동과 생각, 인격까지 변화시킵니다. 제일 어려운 일이 관계 변화입니다. 남녀와 좌우, 위와 아래, 있는 자와 없는 자 사이 관계를 바꿀 때 빈곤에서 벗어납니다. 시간이 걸리고 쉽지 않지만 폭력과 파괴 없이 정의롭게 관계를 바꾸기 위해선 학습과 교육이 최선책입니다.”

김기석 대표 현지 활동 모습 <국경없는 교육가회 제공>

서아프리카 등서 교육원조 활동···유네스코 세종대왕문해상 수상

시작할 때만 해도 주위에서 ‘2, 3년 하다 그만 둘 것’이라고들 했던 교육가회는 10년 이상 살아남았다. 그는 “서울대 동문 가운데 윤희진 다비육종 회장, 이현 우리교육연구소 이사장 등의 후원에 깊이 감사드린다”고 했다.

“글로벌 빈곤퇴치 운동을 하기에 우리 사회는 너무 척박해요. 운동권, 정치권 또는 종교적 인연 없이 순수 전문가 단체를 운영하기가 대단히 어렵습니다. 사재를 털어도 몇 년 못 가죠. 민간단체 개발협력 분야엔 관치와 간섭도 심합니다. 사업비 중 인건비 지출을 인정하지 않으니 소규모 단체는 간사 월급 주기에 급급하죠. 다행히 뜻 있는 분들이 우리의 가장 취약한 부분을 도와주고 계십니다.”

부르키나파소에 건립 예정인 ICC(일가가나안회관)은 일가 김용기 선생의 정신을 계승해 아프리카 농민들을 가르칠 현지인 교육자 양성 연수원이다. 정영일 서울대 경제학과 전 교수와 노정혜 한국연구재단 이사장 등이 본인들이 받은 상금 등을 건립기금으로 보탰다고 한다.

“서아프리카의 깨인 지도자들은 ‘한국이 할 수 있다면 우리도 할 수 있다’는 비전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의 의지에 개발 시대를 살면서 한국인의 몸과 정신에 깃든 정신적 유산을 잘 통합하면 발전의 원동력이 될 겁니다. 은퇴한 분들이 가나안회관에서 지도자를 양성하면서 아름다운 인생 후반을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그는 앞으로 수년간 현지에서 국경없는교육가회를 자력 운영할 수 있는 기초를 닦고 귀국할 예정이다. 오대양 육대주, 오지와 극지 어디든지 나가는 빈곤퇴치운동가를 양성하는 것이 제일의 비전이다. 그는 “‘참여’도 중요하지만 같은 곳을 바라보고 같이 가는 ‘동행’을 권한다”고 했다.

“1967년 서울대 사범대 입학 때 놀라울 정도의 최신 과학시설이 기억에 선명합니다. 미국 피바디 사범대의 기술 원조였죠. 미국 남북전쟁 후 초토화된 남부 교육을 재건한 경험으로 전후 한국의 교육 재건사업을 맡은 겁니다. 현 가치로 약 1500만 달러를 투자한 교원 역량강화 사업을 통해 80여명이 유학하고 그 중 국무총리, 장관, 대학 교수들이 나왔어요. 강렬한 첫 인상 탓인지 1985년 서울대 교수 부임 후 우리도 그런 교육원조를 하면 좋겠다는 꿈을 가졌죠.”

그는 “세계 곳곳에서 ‘한강의 기적’을 실천하는 게 오래 간직한 버킷 리스트”라고 했다.<서울대총동창신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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