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 감춰진 진실들②] 국회 개정안·법무부 대책, 문 대통령 제대로 보고받나?
[아시아엔=윤지영 나눔문화 글로벌평화나눔팀장]?“난민법을 폐지하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70만명이 참여했다. 한국은 2012년 아시아 최초로 난민법을 제정한 나라다. 그러나 난민법 폐지를 요구하는 이들은 난민 신청자의 강제송환 금지, 불인정 시 불복소송기간 동안 체류 허용, 체류 6개월간 매달 43만원 지원, 체류 6개월 후부터 취업허용 등이 “독소조항”이라고 주장한다.
한마디로 “세금 지원받고 일자리 빼앗는 가짜난민을 강제송환하라”는 것이다. 이는 전쟁과 박해의 땅으로 돌아가라는 잔인한 요구일 뿐 아니라, 국제사회와의 약속을 깨라는 것이다. 이들은 난민이 특혜를 누리는 것처럼 현실을 왜곡한다.
한국의 난민 인정률은 4.1%로 세계 평균인 37%에 한참 못 미친다. 생계지원도 미미하다. 지난해 생계비 지원 요청자는 전체 난민 심사자의 7%, 그마저도 까다로운 기준 때문에 일부만이 받았다. 취업과 자립 지원도 부족해 체류 허가를 받고도 한국을 떠나는 난민도 있다.
법무부는 이번 예멘 난민들의 취업을 “한국인이 기피하는 업종”에 한정했다. 난민이면 삶의 선택권도 없다는 심각한 인권유린이자 차별이다. 난민협약 가입국이자 유엔 인권이사회 이사국으로서 부끄러운 일이다. 게다가 정치권은 인도적 체류 금지, 생계비 지원 폐지, 체류 지역 제한 등을 포함한 개정안을 발의했다.
‘국민’과 ‘난민’을 가르며 ‘2등 인간’을 만드는 한국의 태도는 과거 식민지배국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무슬림이 한국을 장악해 이슬람화하려 한다”, “무슬림은 자기들 방식을 고집하고 동화되지 않는다”는 주장이 난무한다. 사실 관계를 따지기도 전에 극단적인 이슬람 무장단체의 폭력적 이미지가 곧바로 연상되고 만다. 그러나 여느 종교처럼 무슬림 또한 다른 종교와의 화합과 공존을 추구한다. 이슬람 경전 <쿠란>에도 “종교에는 강요가 없나니, 이성은 미로에서 스스로 밝혀지느니라”, “그대는 어찌하여 사람들을 강요해서 믿음을 갖게 하려는가”라는 구절이 나온다. 극단은 극단으로부터 비롯한다. 이슬람 극단주의 발생에는 미국과 서구가 중동에서 벌인 석유쟁탈 전쟁의 역사와 팔레스타인을 불법 점령하며 유대인 국가를 세우려는 이스라엘 시온주의가 깔려있다.
무엇보다 우리 땅에 들어온 이방인이라 해서 ‘동화’를 강요할 수는 없다. 공동의 약속인 법만 준수한다면, 고유의 문화와 삶의 방식을 지키며 살아가도록 존중해야 한다. 우리는 세계화시대에 살면서도 분단의 섬과 단일민족이라는 환상 속에 갇혀 있었다.
이제서야 난민이란 존재를 통해 1400년의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가진, 전 세계 18억명이 신앙하는 이슬람에 대해 알아갈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우리는 스스로 고립될 것인가, 아니면 훨씬 더 다양하고 새로운 이웃을 만날 것인가. 지구인류시대의 덕목은 다름을 품고 함께 살아가는 능력이다. 특히, 남북화해 시대에 70년 동안 떨어져 살아온 북한사람들 그리고 이 땅에 찾아올 유라시아 대륙과 그 너머의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미래를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자원도 없는 작은 나라인데 난민을 어떻게 받나”, “유럽은 식민지 수탈의 책임이 있지만 한국은 아니다”라며 난민 수용을 거부하기도 한다. 대대로 작게만 살아온 우리는 어느새 커져 버린 자신을 보지 못하는 건 아닌지? 한국은 더 이상 약자의 방관이 허용되는 나라가 아니다. 한국은 세계 12위의 경제강국으로 세계에서 유일하게 ‘원조 대상국’에서 ‘원조공여국’이 된 나라다.
세계의 민주주의가 위협받는 오늘날 촛불혁명을 이뤄낸 희망의 나라이며, 최근에는 남북평화의 길까지 열어가며 역사상 처음으로 세계사의 한 주역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 빛나던 한국의 자부심은 난민 배척과 혐오로 빛바래고 있다.
잘 사는 나라일수록 그 나라 국민의 품격은 자연 생명과 한정된 자원과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에게 어떤 태도를 취하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난민들을 받고 싶지 않은 100가지 이유가 있더라도, 난민들을 받아야 하는 단 한 가지 이유가 있다.
모든 사람은 자신이 나고 자란 땅에서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는 마땅히 도움을 줘야 한다는 인간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다. 난민은 우리가 살아가는 21세기 지구인류시대의 징표다. 그들은 강대국의 침략전쟁과 글로벌 양극화 체제의 최종 희생자들이다. 여기에 한국 또한 책임이 있다.
한국은 중동의 주요 파병국이자 무기를 파는 나라다. 그리고 한국경제의 무역의존도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68%에 이를 만큼, 지금 우리가 누리는 삶은 다른 나라의 자원과 노동과 부를 가져온 바탕 위에 서 있다. 우리는 이미 75억 인류와 물자와 노동과 정보는 물론 핏줄처럼 한 운명으로 얽혀 있는 세계를 살고 있다.
이제 지구시대의 인간성은 국경을 넘어서만 가능하다. 식민지배와 가난, 전쟁, 독재 등 난민들이 걸어 나온 현실을 과거의 역사로 통과해온 한국이 평화의 나라로 거듭나, 난민들에게 손 내밀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