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 감춰진 진실들①] 수용 반대 6가지 주장이 틀린 이유

[아시아엔=윤지영 나눔문화 글로벌평화나눔팀장] 전쟁의 땅 예멘에서 평화의 섬 제주도로 온 500여명의 사람들. 우리는 처음으로 ‘난민과 함께 산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러나 국민 다수의 선택은 난민 수용 반대. 난민 반대 집회가 열리고, 다른 인종과 종교에 대한 극렬한 선입견이 거리낌 없이 표출되고 있다.

이 ‘낯선 존재’에 대한 공통의 정서는 두려움이다. 무엇이 이토록 사람들을 불안하게 하는 걸까? 난민 수용에 반대하는 핵심 주장 6가지를 짚어보며, 우리 삶으로 들어온 난민에 대해 숙고해 본다.

“무슬림 난민 때문에 유럽에서 성범죄가 늘었다”, “아랍인은 강간을 놀이처럼 즐긴다”. 이는 제주에 온 예멘 난민 대부분이 젊은 남성이라는 점, 그리고 이슬람권 여성의 인권이 낮다는 편견을 악용한 주장이다.

실제 여론조사를 보면, 난민 수용 반대의 가장 큰 이유는 ‘범죄 우려’(44.7%)로, 무슬림은 흉악한 범죄자라는 가짜 뉴스가 유포되며 두려움이 증폭되고 있다. 그러나 “무슬림이 늘면 범죄도 늘어난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실례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스웨덴이 2015년 난민 8만 명을 수용한 후 총기 및 성범죄에 시달린다고 주장했으나, 그해 범죄는 오히려 줄었다.

무슬림 난민 범죄의 대표 사례가 된 2015년 독일 쾰른 기차역 성폭행 사건 이후에도 독일 내 외국인 범죄 건수는 오히려 감소했다. 한국에서도 외국인 범죄율(2.14%)은 내국인(3.9%)보다 낮으며, 이슬람권인 인도네시아와 방글라데시의 범죄율은 미국이나 캐나다보다 낮은 최하위권이다.

이처럼 일부 사건의 범인이 무슬림이었던 것이지 ‘무슬림이기 때문에’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다. 이는 불과 반세기 전, 아니 지금까지도 우리가 동양인이기 때문에 서구에서 느끼는 차별과 오해, 무시의 시선에 불과하다. 무엇보다 난민이 처한 가난과 차별 등 범죄를 양산하는 구조를 먼저 돌아봐야 할 것이다.

“무슬림 난민 중에 테러리스트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주장도 두려움을 조장하고 있다. 그러나 테러리스트는 무슬림의 소수일 뿐, 난민은 오히려 이들을 피해 탈출한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공포를 느끼는 건, 무슬림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 때문이다. 특히 9.11사태 이후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과 함께 전개된 “무슬림은 테러리스트”라는 선동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서구의 미디어와 보수 기독교계가 퍼뜨린 ‘총을 든 무슬림 전사’의 모습은 우리 뇌리에 깊이 박혔다. 하지만 미국이 냉전시대에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알카에다 창설을 지원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ISIS 또한 잔인한 행위만 부각될 뿐, 창설 원인이 된 서구의 중동 침략전쟁에 대한 조명은 부족하다. 중동 무슬림은 강대국과 군산복합체가 벌여온 전쟁의 희생자이기도 하다.

그들을 더욱 힘들게 하는 건, 그들을 테러리스트로 낙인찍는 왜곡된 시선이다. 아랍인들이 일상적으로 나누는 인사인 ‘앗 살람 알레이쿰’이 ‘당신에게 평화를’이라는 의미일 만큼 무슬림에게 평화는 소중하다. 또한 이슬람문화는 낯선 이방인도 지극히 환대한다. 편견을 넘어 무슬림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는 서구 중심의 ‘반쪽짜리 글로벌’에서 벗어나 더 넓고 깊은 세상을 만나는 길이며, 강자들의 일방적 해석에서 벗어나 세계의 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길이다.

“비행기를 타고 왔고 휴대폰도 있는데 무슨 난민이냐”, “경제적 이익을 위해 입국하는 이주자들을 차단하라”. ‘가짜 난민’이란 말을 만들어낸 이들은 우리 세금이 생판 모르는 남을 위해 쓰인다며 분노한다. 난민 관련 총예산은 연간 20억원에 불과한데도, 마치 난민들이 무임승차를 할듯 선동하는 것이다.

독일처럼 100만명도 아닌, 겨우 500명의 난민을 두고 한국사회가 무너질 것처럼 호도하는 상황이다. 외신들은 한국이 “국가 수준에 비해 너무 인색하고 이기적”이라며 꼬집는다. 위험한 건, 20대의 난민 수용 반대(66%)가 세대 중 가장 높다는 점이다.

가짜 난민 선동이 서구에서 세력을 확장하고 있는 극우 정치인들의 주장과 매우 닮았다는 점도 우려된다. “암흑기는 흑심이 있는 사람들에겐 최고의 기회다. 그들은 사람들의 절망을 이용한다”는 말처럼, 각국의 극우세력은 불평등한 사회구조와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한 분노의 표적을 난민으로 향하게 하며 지지층을 결집하고 있다.

촛불혁명과 남북화해로 인해 기존 보수의 이념과 지지기반이 무너지고 있는 지금, 이대로라면 난민문제는 우리에게도 큰 도전으로 다가올 것이다. “경제적 이익에 도움이 되는가”라는 우리 시대의 유일 잣대 그리고 인종, 종교, 민족에 기반한 강력한 ‘혐오의 연대’가 신보수 세력의 출현을 예고하기 때문이다.

촛불혁명 이후 적폐청산과 일상의 민주주의를 이뤄가며 세계와 인류의 문제로까지 더 진보하는 것이 아니라 정반대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엄중한 경계가 필요한 때다.

“난민법을 폐지하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70만명이 참여했다. 한국은 2012년 아시아 최초로 난민법을 제정한 나라다. 그러나 난민법 폐지를 요구하는 이들은 난민 신청자의 강제송환 금지, 불인정 시 불복소송기간 동안 체류 허용, 체류 6개월간 매달 43만원 지원, 체류 6개월 후부터 취업허용 등이 “독소조항”이라고 주장한다.

한마디로 “세금 지원받고 일자리 빼앗는 가짜난민을 강제송환하라”는 것이다. 이는 전쟁과 박해의 땅으로 돌아가라는 잔인한 요구일 뿐 아니라, 국제사회와의 약속을 깨라는 것이다. 이들은 난민이 특혜를 누리는 것처럼 현실을 왜곡한다.

한국의 난민 인정률은 4.1%로 세계 평균인 37%에 한참 못 미친다. 생계지원도 미미하다. 지난해 생계비 지원 요청자는 전체 난민 심사자의 7%, 그마저도 까다로운 기준 때문에 일부만이 받았다. 취업과 자립 지원도 부족해 체류 허가를 받고도 한국을 떠나는 난민도 있다.

법무부는 이번 예멘 난민들의 취업을 “한국인이 기피하는 업종”에 한정했다. 난민이면 삶의 선택권도 없다는 심각한 인권유린이자 차별이다. 난민협약 가입국이자 유엔 인권이사회 이사국으로서 부끄러운 일이다. 게다가 정치권은 인도적 체류 금지, 생계비 지원 폐지, 체류 지역 제한 등을 포함한 개정안을 발의했다.

‘국민’과 ‘난민’을 가르며 ‘2등 인간’을 만드는 한국의 태도는 과거 식민지배국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무슬림이 한국을 장악해 이슬람화하려 한다”, “무슬림은 자기들 방식을 고집하고 동화되지 않는다”는 주장이 난무한다. 사실 관계를 따지기도 전에 극단적인 이슬람 무장단체의 폭력적 이미지가 곧바로 연상되고 만다. 그러나 여느 종교처럼 무슬림 또한 다른 종교와의 화합과 공존을 추구한다. 이슬람 경전 <쿠란>에도 “종교에는 강요가 없나니, 이성은 미로에서 스스로 밝혀지느니라”, “그대는 어찌하여 사람들을 강요해서 믿음을 갖게 하려는가”라는 구절이 나온다. 극단은 극단으로부터 비롯한다. 이슬람 극단주의 발생에는 미국과 서구가 중동에서 벌인 석유쟁탈 전쟁의 역사와 팔레스타인을 불법 점령하며 유대인 국가를 세우려는 이스라엘 시온주의가 깔려있다.

무엇보다 우리 땅에 들어온 이방인이라 해서 ‘동화’를 강요할 수는 없다. 공동의 약속인 법만 준수한다면, 고유의 문화와 삶의 방식을 지키며 살아가도록 존중해야 한다. 우리는 세계화시대에 살면서도 분단의 섬과 단일민족이라는 환상 속에 갇혀 있었다.

이제서야 난민이란 존재를 통해 1400년의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가진, 전 세계 18억명이 신앙하는 이슬람에 대해 알아갈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우리는 스스로 고립될 것인가, 아니면 훨씬 더 다양하고 새로운 이웃을 만날 것인가. 지구인류시대의 덕목은 다름을 품고 함께 살아가는 능력이다. 특히, 남북화해 시대에 70년 동안 떨어져 살아온 북한사람들 그리고 이 땅에 찾아올 유라시아 대륙과 그 너머의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미래를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자원도 없는 작은 나라인데 난민을 어떻게 받나”, “유럽은 식민지 수탈의 책임이 있지만 한국은 아니다”라며 난민 수용을 거부하기도 한다. 대대로 작게만 살아온 우리는 어느새 커져 버린 자신을 보지 못하는 건 아닌지? 한국은 더 이상 약자의 방관이 허용되는 나라가 아니다. 한국은 세계 12위의 경제강국으로 세계에서 유일하게 ‘원조 대상국’에서 ‘원조공여국’이 된 나라다.

세계의 민주주의가 위협받는 오늘날 촛불혁명을 이뤄낸 희망의 나라이며, 최근에는 남북평화의 길까지 열어가며 역사상 처음으로 세계사의 한 주역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 빛나던 한국의 자부심은 난민 배척과 혐오로 빛바래고 있다.

잘 사는 나라일수록 그 나라 국민의 품격은 자연 생명과 한정된 자원과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에게 어떤 태도를 취하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난민들을 받고 싶지 않은 100가지 이유가 있더라도, 난민들을 받아야 하는 단 한 가지 이유가 있다.

모든 사람은 자신이 나고 자란 땅에서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는 마땅히 도움을 줘야 한다는 인간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다. 난민은 우리가 살아가는 21세기 지구인류시대의 징표다. 그들은 강대국의 침략전쟁과 글로벌 양극화 체제의 최종 희생자들이다. 여기에 한국 또한 책임이 있다.

한국은 중동의 주요 파병국이자 무기를 파는 나라다. 그리고 한국경제의 무역의존도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68%에 이를 만큼, 지금 우리가 누리는 삶은 다른 나라의 자원과 노동과 부를 가져온 바탕 위에 서 있다. 우리는 이미 75억 인류와 물자와 노동과 정보는 물론 핏줄처럼 한 운명으로 얽혀 있는 세계를 살고 있다.

이제 지구시대의 인간성은 국경을 넘어서만 가능하다. 식민지배와 가난, 전쟁, 독재 등 난민들이 걸어 나온 현실을 과거의 역사로 통과해온 한국이 평화의 나라로 거듭나, 난민들에게 손 내밀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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