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설의 아흔살 청춘①] “너무 덥다. 그래도 걸어야 산다”
[아시아엔=박상설 <아시아엔> ‘사람과 자연’ 전문기자, 캠프나비 대표] 올해 아흔 한 살 노인이 견디기에 올 여름 날씨는 너무 덥다. 글을 쓰려고 책상머리에 앉았는데 다시 일어서고 만다. 글이 더 나아갈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 갇혔다. 더 이상 뒤적거려본들 마땅한 생각이 떠오를 것 같지 않다.
이럴 때면 나는 집을 박차고 나선다. 집에 갇히면 생각이 움츠러들고, 세상 밖으로 나가면 날개를 펼치기 때문이다. 참으로 희한한 일이다. 나는 하던 일이 막막해지면 이렇게 길 위로 나선다. 생뚱한 곳에 있다는 ‘느낌’ 하나면 충분하다. 걸어야 길섶의 들풀과 바람을 만난다. 신발을 벗어 들고 맨발로 색시걸음을 한다. 발바닥이 아파 견딜 수 없다.
그래도 살그머니 걷는다. 기진한 몸에 힘이 솟기 시작한다. 가능성은 늘 걷기에 있다. 작열하는 폭양을 피해 바닷가의 숲에 든다. 가끔 걷던 길이다. 오늘은 웬일인지 저만치 붉은 해당화가 활짝 피어 있다. 언젠가 반겨 보았던 가시 돋친 그 꽃, 멀고 먼 길은 너를 만나기 위해서였구나. 산다는 것은 이런 거구나…….
어디서 끝날지도 모르는 길이 굽이굽이 휘감는다. 길은 한 줄기 바람같이 흐트러졌다 모이고 퍼진다. 비선형의 길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삶의 궤적인가. 아스라한 기억이 엎치락뒤치락 뒤엉킨다. 이곳의 모두가 다 같이하던 것들인데 이제 와 모호하다.
저 들꽃들도 피는 대로 보이지만 그 들꽃이 아니다. 지난해도 오고 올해도 왔지만 이제 자운하게 사라져간다. 나는 석양 들녘에 있다. 그대로 버려둔다. 할일 없다. 그냥 있다. 해 떨어져, 밤이 지난다. 어둠, 이대로 좋다. 길 위에서, 늘 깨어난다. 시원의 힘, 소멸의 힘이다.
절망을 딛고 오토캠핑으로 이루어낸 치유, 최후를 각오한 여행! 나는 30년 전 조용한 고별을 예비했었다. 길 위에 나를 버리기 위해 먼 길을 떠났다. 텐트를 걸머지고 비행기에 올랐다.
그 길 이후 나는 눈앞의 유혹에 더 이상 현혹되지 않는다.
정확히 31년 전, 당시 61세였던 나는 뇌졸중으로 쓰러져 1년을 넘기기 어렵다는 진단을 받았다. 한국에서는 어떤 병원도 나의 병인을 찾아내지 못했고 3년 후 결국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북캘리포니아 의과대학 교수로부터 MRI 검진 결과 내 머리 뒤의 왼쪽 대경맥이 막혀 모세혈관이 그 기능을 대신하고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무척 위험한 중병이라 수술은 할 수 없고 환자 스스로 재활운동을 열심히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하루에 아스피린 한 알씩만 먹되 그 외의 약은 일체 먹지 말고 강도 높은 산행을 계속하라는 것이 그의 유일한 처방이었다.
나는 걷지도 못하는 몸으로 병원을 박차고 나왔다. 모든 것을 버려야 여한이 풀릴 것 같았다. 가족에게 기대면 같이 망할 게 뻔했다. 어차피 죽을 바에는 나를 산에 버리기로 했다. 걷는 시간만이 살아 있는 증표라 여기고 스틱에 의지해 한 발 한 발 겨우 뗐다. 그렇게 미국을 위시해 여러 나라를 혼자 떠돌며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을 강도 높게 압축해 여분의 삶을 동냥하기로 했다.
발병 전에도 등산은 꾸준히 해왔지만 의사의 권유로 나는 더욱 고난도의 등산을 쉬지 않고 해냈다. 죽기 전에, 더 늦기 전에 할 일이 있었다. 한 번도 안 가본 죽음, 걷고 또 걸어 기진해 쓰러지는 것, 바로 그것이었다.
죽음앞에 자신을 던지고 비우는 모습에 고개숙여집니다. 박상설 선생님~글에서 풀냄새, 흙냄새, 하늘 냄새가 은은히 풍겨옵니다. 좋은글은 이런것이구나. 수식어없는 건조체의 글짜들이 아골 고짜기에서 마른 뼈들이 일어나 걸어나오듯합니다. 감사하고 존경합니다.
박상설 선생님 존경합니다. 늘 건강하시고 자연과 함께뜻 깊은 글 오래 오래 주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