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길청 경제칼럼] ‘소확행’과 문재인 정부 8가지 핵심선도사업
[아시아엔=엄길청 글로벌 애널리스트] 용의주도(carefulness)라는 말은 “매사에 일을 꼼꼼히 하여 빈틈이 없고 그르치는 일이 없도록 한다”는 의미의 단어다. 겉으로 보면 빈틈이 많고 무심해 보이는 사람이지만 그 속내를 보면 용의주도한 사람이 더러 있다, 이런 사람들은 인생의 진정한 고수가 아닐 수 없다.
요즘 들어 부쩍 ‘소확행’이란 신조어가 회자되고 있다. 일본의 무라카미 하루끼라는 소설가의 작품에서 소개된 이 말은 “소소하지만 확실한 것을 누리고 챙기며 사는 것이 일상의 행복”이란 의미라고 한다. 얼마 전 우리나라의 한 대학 소비자연구소에서 ‘소비자트렌드의 하나’라면서 소개한 말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도 조촐하고 소소한 소시민의 생활상의 의미를 표현한 작품이 일찍이 있었다, 1925년 춘원 이광수가 쓴 소설을 영화화한 <개척자>의 내용이 바로 조촐한 저항의식과 소소한 애국심으로 살아가는 당시의 한국인의 시대상을 담고 있다. 같은 일상의 소소함이지만 하나는 소비자이고 하나는 개척자라는 것이 다를 뿐이다.
소확행과 유사한 단어들이 삶속에 담겨져 내려온 것은 스웨덴의 ‘라곰’(lagom), 프랑스의 ‘오캄’(au calme), 그리고 덴마크의 ‘휘게’(hygge)란 말이 있다, 일견 이들 나라의 풍속도를 보면 남다른 삶의 여유와 문화가 느껴지기도 한다. 사회가 안정된 것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그 이면을 보면 여러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들 국가들은 일본을 포함해 오랜 동안 왕과 귀족이 통치해온 나라이고 지금도 프랑스를 빼고는 왕실이 통치하고 있다. 신분상의 상류사회가 엄연히 존재하는 나라들이다.
또한 소수 글로벌기업들이 경제를 좌지우지하고 있어서 젊은 기업가의 작은 성공신화를 찾아보기 어려운 나라들이기도 하다. 이런 나라에 오래 살다보면 소시민의 삶의 소소한 행복이란 결국 그들 대부분의 국민들에겐 역사적인 체험에서 나오는 운명적인 축소지향적 절제(self-control)인지도 모른다.
앞에 얘기한 이광수의 소설 <개척자>에 나오는 ‘개척자’(pioneer, frontier)란 단어는 “자신의 운명이나 영역 또는 진로를 스스로 찾아나가는 사람”이란 뜻을 담고 있다.
요즘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보면 언행은 거칠지만 생각은 용의주도하다는 사실을 느낀다. 국가의 힘만 믿고 돌진하는 듯이 보이지만 협상과 거래와 절충의 시도를 이어가면서 결국은 자신만의 마무리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사업가이면서 정치가인 그에게는 탓하기 어려운 용의주도함이다. 올해 들어 미국이 금리도 올리고 관세전쟁도 치르면서 경기회복 속도를 조절하고 있다. 이미 6개월 이상 같이 연동하고 있는 미국이나 독일, 한국의 주가도 크게 보면 조정국면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들 세 나라의 주가가 다소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미국과 독일은 조정 후 서서히 중간 바닥에서 반등을 시도하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확연히 약세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 경제정책의 용의주도함이 필요한 시기라는 것을 말해준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지지자들에게 약속한 공약은 시간을 다투어 지켜할 일이기도 하지만, 글로벌경제에서 불어오는 돌연한 강풍은 정부가 나서서 일단 막아야 한다. 국민들에게 저녁이 있는 삶은 참 좋은 세상이고 그립지만, 새로운 아침은 비장하면서 희망찬 심정으로 열어야 한다.
지금은 기업에게 지워야 할 짐을 잠시 내려놓고 스스로 앞선 삶을 사는 사람들의 등을 밀어주는 시간이어야 한다,
마침 정부가 8가지 핵심선도사업을 지정하고 문재인 정부의 임기종료 직후인 2022년까지 30조원을 투자하겠다고 했다, 이를 위해 대기업도 벤처지주회사(CVC)를 만들 수 있도록 했다, 잘한 일이고 타이밍도 적합하다.
정부는 핵심선도사업으로 스마트 시티, 스마트 공장, 스마트 팜, 초연결지능화, 핀테크, 에너지신산업, 드론, 자율주행자동차를 선정했다. 우리 기업들이 그동안 준비를 많이 해서 잘할 수 있는 분야다. 하지만 반대급부로 이로 인해 장기적·구조적으로는 소시민의 평범한 일자리는 줄어들 수 있다. 소소한 애국심으로 십분 이해하고 후일을 희망 속에 기다리는 지혜와 인내가 필요한 때다. ‘소확행’, 바로 이런 때 적절한 단어가 아닌가 싶다.